공짜
11월이 끝나고 12월의 추위가 찾아왔다. 언니와의 '함께하는 운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맴돌았다. 어떻게 하면 의지 없는 사람이 운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나는 PT 수업을 받는다. 트레이너와 함께 해 온 시간이 꽤 길었고, 선생님은 내가 언니를 가르치면서부터 들떠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니가 진짜 몸이 타고났어요. 음, 아마 저처럼은 못해도 노력 대비 반 이상은 따라 올 걸요. 잘 키워놓고 '스쿼트 보조 들어와!' 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와 회원님보다 더 타고났다고요? 무시무시한 자매가 되겠네.'
'회원님 언니 가르치러 가시느라 너무 바빠지는 거 아니에요? 아 나랑 수업해야 되는데.'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안 가요.ㅋㅋ'
'근데 뭐 받아요?'
'에이 아니요.'
'흠...'
언니와의 운동 시간을 갖느라 주 3회의 PT수업을 주 2회로 줄였던 것만큼, 누군가에게 내가 운동을 통한 행복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컸다.
"쌤, 질문 있어요."
"어떤?"
"사람들이 무언가를 꾸준히 하게 만드는 조건이 있을까요? 쌤은 뭐라고 보세요?"
트레이너 선생님은 별 것을 다 묻는다는 듯 피식 웃었다.
"돈이요."
"돈이요?"
"네, 일단 돈을 쓰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지속하게 됩니다. 헬스장도 일단 등록해야 되고요, PT도 일단 값을 내야죠. 헬스장은 본인의 의지지만 일단 등록을 했으니 나가게 되는 거고, 그 조차 안된다? 그럼 PT등록을 했을 때 트레이너가 관리를 해주니까 지속하게 되는 거죠."
그 말이 묘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사람은 공짜로 얻은 것의 가치를 잘 모른다. 반면에 직접 돈을 지불하고 얻은 것은 '아깝다'는 마음 때문에라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시작했던 운동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게 맞았다.
나는 내가 안 할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일단 건강해지고 싶었던 의지가 강했던 만큼, 제대로 확실하게 배우기 위해서 헬스장과 PT를 함께 등록했던 사람이었다. PT수업은 주에 2회가 전부였지만, 빨리 적응하고 빨리 배우기 위해서 스스로 복습시간을 2배, 3배를 가져갔다. 나는 무언가 의지박약이 되는 순간이 운동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뱃살이 짜증 난다고 하는 언니에게 트레이너와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언니, 트쌤이 그러더라. 뭔가 잘 못할 것 같고 중도하차할 것 같을 때는 돈을 쓰는 게 제일이래. 돈을 내면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라도 계속하게 된다는 거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언니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 거면 난 안 해. 돈 낼 바에는 그냥 안 하고 말지."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농담처럼 가볍게 넘겼지만,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언니와의 카톡창을 종료하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돈 낼 바에는 안 한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고, 살을 빼고 싶다고 했던 걸까?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언니에게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지식은 '돈'보다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공짜로 얻은 것이기에, 그 진정한 가치를 몰랐던 것이다.
매주 금요일, 퇴근 후 한 시간을 달려 언니를 만나 운동을 가르쳐주던 그 시간들. 내게는 정말 소중했던 그 시간들이, 언니에게는 그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었던 걸까?
트레이너의 말이 맞았다. 사람은 돈을 지불한 것에 더 가치를 둔다. 그리고 공짜로 얻은 것은, 아무리 그 내용이 소중하더라도 쉽게 흘려보낸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씁쓸함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허탈감이 아니었다. 내가 진심으로 베풀었던 시간과 노력이, 그저 '공짜'라는 이유로 가치 절하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생각은 언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가치관을 가질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