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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함을 말할 때는

내일부터는 꼭 한다

by 비빔계란

11월의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헬스장 라커룸에서 운동복을 갈아입으며 슬며시 언니를 바라봤다. 오늘이 1+1 이벤트로 등록한 마지막 날이었다.


"언니, 다음 달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나는 언니가 운동을 지속하기를 바랐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알려줬다. 내가 4주간 알려주었던 그 동작만으로 3개월 혹은 6개월 동안 꾸준히 하기만 해도 체형의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언니는 대답이 없었다. 한참의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언니는 운동화 끈을 매만지며 대답을 망설였다.


"음... 아직 잘 모르겠어. 다음 달은 바쁠 것 같기도 하고, 헬스장 나오기 좀 힘들어."


그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언니의 집에서 헬스장까지는 걸어서 고작 10분 거리였다. 반면 나는 퇴근 후 한 시간을 달려와 이곳에 온다.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한 달 동안 언니는 고작 6번 헬스장을 찾았다. 그중 4번은 나와 함께한 금요일이었고, 혼자 온 것은 단 2번. 그마저도 20분 정도 유산소 운동만 하고 돌아갔다. 걸어서 10분 거리를, 한 달 동안 단 두 번밖에 오지 않았다는 게 더 현실적인 표현일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답답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토록 살을 빼고 싶다고 했으면서,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어째서 '운동'이 우선순위가 되지 않는 걸까?

내가 건강해지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퇴근 후는 반드시 운동시간으로 정해두었다. 내가 살아온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던 몸일진대 고작 하루에 한 시간 운동하는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도 않았다. 매일 한 시간을 해야만 '겨우' 바뀔 수도 있는 확률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매일매일 헬스장을 가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 것이다.

바뀌고 싶다는 갈망을 갖고 있으면서, 아주 작은 노력 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나 또한 의욕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한 번도 없었다. "고마워"라는 말도,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했어"라는 말도. 그저 모든 게 당연한 듯이 흘러갔다. 마치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다음에 또 가르쳐줘."


떠나는 발걸음도 가볍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은 그저 '다음에' 다시 얻을 수 있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한 시간의 버스 안에서 한 달을 되돌아봤다. 인바디 측정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던 건 나 하나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진짜 살찌는 게 스트레스야. 뱃살 때문에 짜증 나."


다음 날 카톡으로 온 언니의 메시지였다. 이제는 그 말조차 공허하게 들렸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헬스장도 가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나 역시 그 먼 헬스장을 연장 등록할 이유가 없었다. 한 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정작 10분 거리에 사는 본인보다 내가 더 열심인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 그리고 자꾸만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언니의 태도를 굳이, 내가 뭐라고 재촉하거나 다그칠 수 없음을 알았다.


"언니, 언니가 나랑 운동하면서 몸이 많이 좋아지는 걸 직접 체감했잖아. 운동은 정말 좋은 거야. 근데 진심으로 원할 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였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신 일주일 뒤, 언니의 인스타그램에는 또다시 다이어트 다짐 글이 올라왔다.


라커에 붙어있던 11월 달력을 떼어내며 생각했다.


때로는 당연한 것을 말할 때가 가장 아프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당연함 속에 진심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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