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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궐리버 Jan 18. 2024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곧 서울살이를 앞둔 친구를 만나 되살아난 회고록, 221006

나는 며칠 전 덜컥 서울이라는 도시에 떨어지게 되었다. 계획하지 않은 여정에서 보통 나는 설레는 감정을 가득 안고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아무런 감정 없이 지하철에 오르게 되었다.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7호선 어딘가에서, 나는 치열한 삶을 사는 서울인들 속에서 그다지 없는 내 존재감을 묻어가고 있었다. 누구는 가득 찬 희망을 품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을 것이고, 누구는 이미 지나친 노동에 찌든 채 이 사회의 부품으로써 다른 이들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삶의 의미를 잃은 채, 붙어있는 숨이라도 쉬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홀로 유영하고 있었다.


이내 나는 숨이 턱 막혔다. 힘차게 닫히는 지하철 자동문은 애타는 그들의 마음도 모른 채 냉정하게 앞길을 막아섰고, 겨우 들어온 사람들은 없는 자리를 만들어가며 그들의 자리에 우뚝 서서 흔들리는 몸을 서로에게 부대끼고 맡기며 흘러가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굳건히 의지하며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괜히 누군가의 위태로운 출근길에 이방인인 나는 그들이 설 자리를 빼앗은 것만 같았다.


힘차게 달리는 전철 속 사람들은 내 눈에 보이기에 그다지 힘차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삶이 힘에 부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사실 요즘 내 마음이 그러해서 보이는 시야가 왜곡되었나 싶다. 그들의 열정을 왜곡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 한강을 따라 헤엄치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었나 보다. 삶이 끝이 어떠하든 지금 주어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뤄야만 하는 모두의 숙제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놀기 좋아하던 학생 마냥, 그 숙제를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지만 말이다.


서울의 여기저기를 다니다 문득 앞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나 혼자만 그들의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전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들은 힘차게 흘러갔다. 그렇게 문득 밤의 한강을 보고 싶어 뚝섬역에 내렸을 때도 모두들 집으로 향하는 전철을 타기 위해 우르르 역사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 모퉁이에서 나는 고향을 찾아 회귀하는 연어처럼 홀로 그들을 거슬러 올랐다.


한강을 가로지르며 두 땅을 연결하는 수많은 다리들과, 한강을 따라 거니는 사람들, 한강을 따라 빽빽하게 줄지어 서있는 빌딩들, 그 서울의 중심에서 나는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채 유유히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 이 서울의 삶에 미련이 없기 때문에 어디든 내 마음대로 흘러갈 수 있었다. 그렇게 반짝이는 한강의 밤을 찍어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에게 생경한 이 서울을 보여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한강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향을 떠나와 잠깐 머무는 이 거대한 곳에서 나는 지금 여기 강변에 서 있는 내 존재의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이전에 나와 상관없는 정반대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는다니, 조금은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지만, 한 번쯤은 서울의 한 조각으로 채워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것이 아닌 이 한 조각을 떼어 그녀에게 보여주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설렘을 안겨줄 수 있었다.


서울의 삶을 영위하는 서울인들은 사실 그들이 꿈꾸는 이상을 거스르며 자신의 자리를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몇몇 서울에 사는 지인들은 나에게 서울로 올라오라고 말한다. 모든 삶의 해답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꿈꿀 수 있는 삶을 서울에서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설렘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내가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지 않을까. 나도 그들이 누리는 한강의 따스함과, 한낱 부품일지언정 이 사회 속에서 나의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차게 나의 집에서 이곳 서울까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와야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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