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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조각
다 있다는 곳에 갔는데
필요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물어보고 싶은데, 직원은 보이지 않고
큐알을 인식해 검색해 봐도
엉뚱한 매장으로만 연결되었다.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채로 다시 나왔다.
가끔은 아는 것에 배신당하곤 한다.
갑자기 몸이 아프기도 하고,
별일 아닐 줄 알았더니
3차 병원 가라며 소견서를 받고,
재고가 있다더니 가보면 없고,
티케팅은 나만 실패하는 것 같고,
새우튀김은 품절이고,
아보카도는 곪은 것만 있고,
믿었던 친구는 나를 기만한다.
우측통행에서 좌측통행하는 사람,
대중교통에서 빵빵한 백팩을 뒤로 매는 사람,
빨간불에 신호를 건너는 사람,
약속 시간에 꼭 늦는 사람,
매뉴얼을 읽지 않는 사람,
범죄를 저지르고도 풀려나고 잘 먹고 잘사는 사람.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에서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착잡하다.
가는 데는 순서 없다지만, 너무 길다.
크림 새우를 먹으면서,
망고를 쌓아놓고 먹으면서,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작을 품에 넣고,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고,
출퇴근길 우연히 자리가 나고,
그럴 때는 정말 오래 살고 볼 일 같지만, 이게 맞나.
다 있는 곳에서도 품절이 있는 것처럼
내게도 번뇌와 우울은 종종 자취를 감추지만,
지금처럼 아닐 때는 사는 게 곱절은 어렵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은 번뇌와 우울.
그러나 내게는 그뿐이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
이를테면, 회복 탄력성 같은 것.
우울을 도움닫기 삼아 앞으로 달려가는 힘.
오늘 내게 뭐가 있든 없든
그것을 내일과 무관하게 만드는 힘.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