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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조각. 여름의 투쟁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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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조각



여름에 제일 많이 하는 말.

“냄새나.”

이쯤이면 코가 마비됐을 것 같은데도

여름이라 더 짙어지는

고약한 냄새가 끝없이 퍼져 나간다.

코로나가 시들해지자마자

공기를 데우는 담배 연기에

더워서 가동되는 선풍기와 에어컨도 더해

세계가, 지구가 쉬지 않고 오염되는 계절.

차라리 모든 게 오염되어 다행이라고,

삐뚤어진 마음으로

삐딱하게 여는 여름 초입.

모든 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뒤섞여 변질되면

우주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

나라는 사람은 티도 나지 않을 테니까.

나쁜 일 다음에 나쁜 일,

피로 다음에 피로.

슬픔 다음의 기쁨이나

불안 다음의 평안은 대체 언제쯤일까?

도통 순환되지 않는

꽉 막힌 고속도로 같은 삶은

익숙하다가도 영 익숙해지지 않아,

될 대로 되라지 싶다.

며칠째 글도 읽을 수 없어 심란했는데

갑자기 시집은 또 읽힌다.

역시 죽으란 법은 없는지.

좋아하는 시집,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나의 투쟁」에 이런 구절이 있다.

‘주저앉은 뜀틀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그래도 나는 사랑한다’

이제 막 30도를 넘어가는

여름의 시작에서

내가 사랑할 모든 풍경을

어서 만나고 싶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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