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다. -7

2026/01/25

by 나무느을보

그것은 낙엽처럼 모가질 떨구곤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파르스름한 안광이 번들거리고 있다. 목덜미의 언저리로 검붉고 뜨거운 것들이 후둑후둑 떨어졌다. 왼쪽으로 파고들었다. 곧 그것의 허파가 틀어 막히고, 왼쪽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는지 그것이 숨을 꺼뜨려가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희게 질렸다. 뭔가 익숙지 않은 것들이 숨어들었다. 순간 가로등이 핏발을 따라 점등하는 것을 보았다. 그 너머로 벽돌담이 있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 나는 걷는다. 곧장 아래로 향한다. 그 주검을 까마귀처럼 관조하다가. 그것이 이제 거무죽죽하고 따스한 늪이 되는 모습을 보았다. 차가운 초봄의 공기가 그것을 식히고 있다. 서늘하고도 약동하는 것이 깃들어있다.


나는 걷는다. 피로가 낯가죽 깊숙한 곳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린다. 어디로 향할 지 안다. 분명 집을 더럽히진 않을 것이다. 나는 벽담으로 향했다. 기껏해야 그곳엔 미처 철거되지 못한 잔해들이 뒹구는 곳이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다. 밤이 올 때까지 누군가 자신이 저지른 악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대로 있기로 했다. 인적 드문 곳으로 사람이 몰리는 일없이 그것의 부패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틈 없이 산짐승들이나 내려왔을 뿐이었다. 벌레들이 꿰었다. 날벌레들이 알을 깠다. 날이 서늘하다. 한기가 돌았다.


나는 그 남자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충직한 개처럼 기다렸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늑대의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나는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분명하게 나는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의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지 않은가. 그가 설령 악마 같은 성품의 인물일지언정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아니니까. 그래서 그의 정신이 흐려진 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자처했다. 그러나 나는 지쳤다. 서서히 나는 내가 나사못처럼 정신이 뒤틀린 것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혹은 나사길이 나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체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 완전히 부수지 않는 이상 결말이 지어지지 않는 막다른 길이었다.


나는 달아나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향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벽돌담 아래서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 누군가 그 끔찍한 말로를 지켜보고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여태껏 그래왔던 순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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