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6
손마디가 얼어붙는다. 벽돌담은 늘 그늘이 지는 구석이 있다. 그 아래서 나는 뭔가 먹먹하게 주변을 훑는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분명 그이를 만나면서 부터다. 그이는 자주 어린 시절 나고 자란 옛집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곤 했다. 막힌 우물터. 붉은 벽돌을 늘여놓은 자그마한 폐허. 그리고 그 이가 내 안에 흔적만 남기고 떠났을 적에 나는 그 이야기를 토대로 엇비슷한 곳으로 흘러들었다. 자그마한 노인을 간병하는 일을 구했고, 노인은 정신을 놓친 덕에 괴팍한 인물이었지만 그 집의 사진들을 본 순간에 확신했다. 이곳이 그 이가 말한 그곳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 이의 아이를 품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 이가 떠나고서 나는 슬픔으로 손쉽게 아이를 잃었다. 고로 이 일은 분명히 그 순간에서 틀어진 것이었다. 그 이가 오랜 시절 추억을 기억해서 옛집에 그가 들른다면 나는 그를 설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도 지쳤기 때문이었지만, 그에 대한 원망이 나를 막다른 곳까지 몰고 간 탓이 컸으리라 믿는다. 그는 이제 거무죽죽한 웅덩이로 거듭났다.
곧 떨리는 다리가 평정을 찾고, 적당한 걸음을 짚을 수 있게 되고서 웅덩이 근처로 다다랐다. 그것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의 눈은 이제 그 무엇도 담을 수 없을 것처럼 탁하다. 그의 손은 그저 흰 나뭇가지나 다름없다. 몸을 씻어야겠다. 둔덕길을 내려가려는데 무엇인가 티끌만한 것이 굴러 운동화의 발코를 때렸다. 목상의 머리. 분명 그것을 붙이려고 했다. 그 깨알만한 것을 찾으려고 온 집안을 뒤지다가 노인이 손아귀에 움켜쥔 것을 발견했던 그 물건이다. ‘그래, 머리를 붙여야지.’ 그렇게 되뇌었다. 그러나 노인은 진즉에 죽었다. 어울리지 않게 아우성 없이 조용히 저항하다가 심장이 멎어 죽었다. 나는 불단이 망가진 일을 알면 노인이 역정을 낼까 두려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불단을 돌보는 일을 하던 것은 늘 노마님이었던 것 같다. 분명 노마님이 떠나고서 노인이 그 사진을 놓고 겨우 돌보기 시작했으리라.
손바닥에 거머쥐자 그것은 한손에 들어왔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적적하게 손바닥으로 가볍게 거머쥐고 걸었다. 웅크린 2층집이 보였다. 가로등 곁에 다다라서 불이 켜지자 가벼운 기와를 얹은 건물은 다섯 쌍의 창으로 나를 훔쳐보는 것 같았다. 묵정밭이 된 연못가에 개구리 한마리가 알을 까러왔다가 돌아가고, 나는 곧 경칩(驚蟄)이며 봄기운이 생동할 계절임을 떠올렸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묻은 그 이의 온기를 씻어내려 곧장 샤워장으로 향했다.
뜨겁고 거센 물줄기에도 그것은 내 머리칼과 샅에 들러붙어 떠나질 않긴 매한가지이다. 엉긴 피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나는 몸을 씻고서 한참을 불단 앞에 있었다. 머리 없는 부처님 대신 노마님의 영정이 있기에 거기에 용서를 빌어야 했다. 이곳은 노마님의 몸속이나 다름없는 곳이니. 비록 살풍경해지고 거칠어졌지만 한 때는 분명 정갈하며 아름답게 가꿔졌을 정원이나 뛰노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개구리처럼 엎드러져 용서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