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7
시간이 흐른다. 돌담 아래로 진득한 것들이 몰려있다. 그곳엔 거무죽죽한 웅덩이가 맺혀있다. 서늘하게 식은 공기사이로 음험한 무엇인가가 풍긴다. 벌레를 이끌어내고 티끌만한 것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이제 그것을 깊숙이 바라보고 있다. 오솔길의 그것을 치워야한다. 폐허의 벽돌담이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핏물이 야트막한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없는 산골에 가로등만 껌뻑댄다. 나는 다시 당신의 흔적이 묻었다. 나는 벽돌담 근처로 그것을 옮겨 놓고 그만두어야 한다고 몇 번을 되뇌었다. 벽돌담 아래로 무른 땅이 있다. 그곳으로 옮겨놓고 약한 삽질 몇 번에 당신을 담을 그릇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곳에 당신을 묻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다시 더러워진 몸으로 이전보다 조금 판판해진 당신 위로 나는 언젠간 내게 이야기해주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사랑스런 아이들의 장난과 당신의 비밀기지였던 그곳에 이젠 당신이 있다. 어려서 키운 개가 노쇠하여 죽자 당신은 몸소 흙을 덮어주었더랬다. 그 적적한 곳에 이제 당신이 뒤틀린 채로 누워있다. 나는 나의 방이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조용히 다른 누군가가 오길 기다렸다. 죄에 대해 실토하기 전에 변명을 추스르는 것처럼 내 가슴은 옹졸하게 죄어든다. 다시 몸을 씻고 그 냄새가 가시길 기다렸지만 그 주일이 지나서야 누군가가 들이 닥쳤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느릿한 것인지 시간이 더디게 간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무표정한 사내가 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어물거리다가 몇 마디 묻는다. “왜 그랬냐고 묻진 않을게요.” 죄를 책망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혹스럽다. 목소리를 들으니 알 것 같다. 그는 집의 맏이이다. 집을 벗어나고자 조용하게 아우성을 피우며 이윽고 꽃잎처럼 탈락해낸 사람. 표면적으론 모르는 채 굴지만 실은 내면이 시끄러운 사람이다. “내 동생이지만 어떤 인간인진 알아요. 그런데 저렇게 두면 산짐승들이 파먹으러 올 거예요.” 이 인간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경찰엔 연락했어요?” “…아뇨.” “숙원 했던 걸 이뤘네요.” 이 사람은 처음부터 알았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그럼 이 집은 왜 수소문 했데요. 저는 당신이 진작부터 벌레들을 처리하려고 온 줄 알았어요.” “벌레요?” “그래요. 벌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곳이 몸서리치게 싫었어요. 가식적이잖아요.” 아니다. 나는 그러한 심산으로 온 것이 아니다. “선택지를 줄 게요.”
“첫 번째는 제가 친가에 들렀다가 이 꼴을 다 목격한 거죠. 경찰을 부르고 당신은 징역을 살 거예요. 두 번째는 제가 공범이 되는 거예요.…” “어째서요?” “말 아직 안 끝났어요, 대신 저랑 훌쩍 떠나는 거죠.” 나는 이 대목에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이 악마는 무슨 말을 하는가. “그래서 당신이 얻는 게 뭐에요?” “진솔 됨이죠. 솔직히 당신한테는 조금 감동했어요. 마지막 선택지도 있어요.” 그는 내게 날을 세운 끌을 가져다 던져놓으며 말했다. “이 자리서 당신이 내 목을 긋거나 스스로 죽는 거죠. 이건 택하지 말길 바라요.” “…왜 이러는 건질 모르겠어요.” “당신이 내 소원을 이뤘거든요.”
곧 진동을 닮은 현기증이 몰려왔다. 나는 저항해야 했다. 점등하는 가로등 사이로 보았던 것과 같은 형태이다. 나는 말없이 끌을 잡았다. 날을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