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4
층계는 삐걱거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오랫동안 발을 딛지 못한 바닥재는 푸석푸석하다. 벽면으로는 투명한 거미줄이 빗장처럼 얽었다. 먼지 쌓인 방이다. 형의 짐은 이제 없다. 그러나 어머니는 방을 그대로 비워두길 원하셨다. 언제라도 형이 돌아오면 그곳에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위함이었다. 이 집은 아버지와 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고 형은 진즉에 탈락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형은 구태여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 집의 생활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분명해 보였다. 느슨하게 긴장을 풀 적에 형의 표정은 분명해졌고 그것이 울분을 닮은 무엇으로 번져있는 장면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아직 어렸던 시절의 내가 그것을 엿보고 혼란스러워했던 일도.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방은 검고 누렇게 변색된 것처럼 보였다. 초봄임에도 습한 곰팡내가 났다. 천정에 난 다락을 열자 그 안으로 비로소 공구함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서성거리는 보드랍고 작은 공 같은 물체들이 몰려있다. 그것들은 노르스름하고 형형한 눈을 가지고 일순 나를 바라보더니 사방으로 달아나 버렸다. 쥐들의 소굴이다.
공구함의 접착제는 굳었다. 따라서 떨어진 목상을 붙일 것이라곤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아버지가 떠났으니 이 집은 형의 소유로 들어갈 것이며, 형은 아내를 따라서 개신교로 개종한 지 오래다. 불단 같은 것은 돌보지 않을 것이다. 집을 밀어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층계를 삐걱거리면서 1층의 불단 앞으로 내려왔을 적에 여자는 완전히 무너져서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멀뚱히 있다가 말을 골랐다. “…접착제가 없어. 굳었어. 낭패라고.”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이 왜 우는 질 모르겠어. 아버지에게 정이라도 든 거야?” “그럴 리가요. 정신 놓기 전에 그 인간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그 인간은 내게 역겨운 놈이었어요.” “…” “그런데, 나도 왜 울음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해괴한 대화다. 나는 왠지 여자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스쳤다. 집안의 공기에 서늘한 위화감이 깃들어있다. 광증일 수도 있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뜨기로 했다. 신을 구겨 신고 울음소리가 멀어지도록 걸었다.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고서야 나는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 눈에 그 집은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쥔 손바닥에 뭔가가 들려있기에 살폈더니 붙이려했던 목상의 머리가 염주 알처럼 들려 있었다.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곤 묻는 듯 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어쩌면 나는 여자가 목을 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집이 그녀를 집어삼키는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담배나 태우고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여전히 거실에서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촛농처럼 녹아내릴 것 같아 두려웠다. 내가 여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을 적엔 꼭 언어를 잃은 것처럼 굴고 있었다. “이봐, 정신 차려. 당장 이집에서 나가자고. 그래, 벽돌담을 보러가자. 내가 이야기한 그곳 말이야.” 비로소 여자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로등과 막힌 우물가와 팽나무가 눈에 들었다. 그것은 사소하게 준동(蠢動)하는 것처럼 시야 안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반쯤 허물어진 벽돌담은 담요처럼 나를 반긴다. 가로등에 다다라서 그것이 점멸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둔덕길 위에서 돌아본 집은 난장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돌아보는 순간에 나는 목 언저리로 번뜩이는 감각이 찾아들었다. 두터운 날붙이는 아니다. 송곳처럼 날선 물체이다. 시야가 누렇고 붉게 물들다 이윽고 컴컴해졌다. 따스한 무엇인가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가을의 낙엽을 닮은 것들이 내 주변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숨이 막히자 정신을 놓칠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머리가 떨어지는 듯했다. 손바닥에 쥐었던 목상의 온화한 얼굴이 더럽혀졌다. 여자는 울음을 그쳤다. 놀란 기색도 없이 내 눈빛이 꺼져가는 장면을 구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