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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

제발 밥 좀 먹자

by 쿠리

현재 육아 휴직 중인 저는 아내가 출근을 하면서 아이의 아침과 점심을 챙겨주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미역국하나 끓이지 못하는 ‘요알못(요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젠 아이의 밥을 차려주어야 하다 보니 요리 실력도 쑥쑥 늘어가는 중입니다. 요즘은 유튜브나 블로그에도 좋은 레시피들이 많이 소개가 되어 있고, 도서관에 가면 아이 육아식에 대한 책들도 많이 있어 공부하기도 참 편하더라고요.


오늘 아침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고민을 하다가 괜찮아 보이는 레시피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황금 계란 볶음밥.


준비물: 식용유, 대파, 계란 노른자, 밥, 소금 한 꼬집 + 추가(애호박, 당근, 차돌박이)

1. 프라이팬에 식용유에 대파를 볶다가 애호박과 당근을 넣어 함께 볶아줍니다.

2. 그 위에 계란 노른자와 밥을 섞은 것을 함께 넣어 볶아줍니다.

3.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하고, 볶음밥 위에는 냉장고에 있던 차돌박이를 볶아 위에 올려주면 완성입니다.


한입 먹어보니 나름 맛이 괜찮습니다. 아이가 잘 먹었으면 하는 바람에 한껏 기대를 했건만 먹여보지도 못하고 퇴짜를 맞았습니다.


첫째: 왜 볶음밥이야? 따로 해줘.

아빠: 볶음밥 먹어보니까 진짜 맛있어 한 번만 먹어봐. 먹어보고 맛없으면 따로 해줄게

첫째: 아니야 따로 해줘.


평소 밥을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아 주다 보니 한 그릇 음식은 잘 안 먹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첫째는 처음 보는 음식들은 잘 안 먹어보려고 하거든요. 먹어봐야 맛이 있는지 입맛에 맞는지 알겠지만 먹어보려 하지를 않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안 먹어도 계속 식판에 놔두면 언젠가 마음이 변해 한 번씩 먹어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음식을 늘려갔지만, 오늘은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없나 봅니다. 결국 절대로 먹지 않겠다는 첫째의 고집에 백기를 들고 한숨을 쉬면서 다시 밥을 합니다.

다시 요리를 하기엔 시간이 걸리니 있는 걸로 해결합니다.


아까 전에 볶음밥 위에 올려두었던 차돌박이

계란 노른자를 사용하고 남은 계란 흰자로 만든 프라이

냉장고에 있는 보리새우볶음

볶음밥 안에 있던 애호박과 당근


그렇게 식판에 따로 담아주니 다행히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합니다. 짭조름한 보리새우가 입맛에 맞았는지 밥과 함께 꽤 많이 먹었습니다. 김에 계란과 차돌박이 애호박, 밥을 함께 싸서 입에도 넣어줍니다. 다행히 안 먹겠다는 말없이 잘 먹습니다.


이 상황을 보니 문뜩 ‘조삼모사’란 사자성어가 생각났습니다.

전국시대 송나라의 저공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좋아해 원숭이를 많이 길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원숭이의 밥값이 만만치 않아 밥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원숭이에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줘도 괜찮겠니? ‘라고 하니 원숭이는 아침이 저녁보다 하나 적어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지요.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먹어도 괜찮겠니?’라고 하니 아침에 한 개를 더 먹으니 좋다면서 만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식판에 있는 걸 싸서 먹는 거랑 계란 볶음밥이랑 뭐가 다른 걸까요. 재료도 똑같고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은데 말입니다. 아직도 첫째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먹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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