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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보다 비싼 자전거

예상치 못한 상황은 즐기는 것이 여행

by 아라

동물 친구들을 보며 감탄하느라 체력을 다 썼다.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에서 먹기로 했다. 호주의 이마트라고 할 수 있는 울월스를 검색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마트가 있다. 해외여행의 묘미 중 하나인 마트 구경. 기대되는 마음으로 마트로 향했다.


꽤 많이 걸은 것 같은데 마트가 보일 생각을 안 한다. 호주 사람들은 키가 크던데 호주 사람 걸음으로 15분인 건가. 우버를 타야 했나 생각이 들 때쯤 도착했다. 울월스라는 글자가 보이니 걸어오느라 힘들었던 마음 대신 기대감이 생긴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것들을 사야 한다. 우선 오렌지 주스를 하나 담고, 우유도 하나 담았다. 저녁으로 먹으면 좋을 것 같은 로스트 치킨, 아침용 시리얼도 챙겼다. 호주에 살았다면 담고 싶은 식재료가 한 둘이 아니다. 왜 유독 해외 마트들은 채소가 싱싱해 보이는 거야? 평소엔 눈길도 안 주던 토마토도 맛있어 보이잖아! 해외 마트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색다른 식자재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과라도 한국에선 안 보이는 검붉은 껍질의 새로운 사과가 있고 가지도 한국의 가지보다 엄청 크다. 특히나 서양엔 요거트나 치즈 종류가 굉장히 많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유제품을 사랑하는 나는 이 아이들을 눈으로 밖에 다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요거트를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숙소에서 식사를 할 시간이 없는 날에도 요거트 하나는 먹을 수 있지 하며 하나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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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선 꼼꼼히 둘러보고 싶지만 체력이 다했다. 오늘은 힘드니 다음에 또 와서 더 둘러보기로 하고 장보기를 마쳤다.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짐이 많다. 이 상태로 숙소까지 걸어가기엔 무리다. 호주에는 라임이나 빔즈 같은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가 길에 많다. 어떻게 돌아갈지 잠깐 고민하다가 전기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어플을 깔고 확인하니 마트 바로 앞에 전기 자전거가 몇 대 있다.


바구니 가득 짐을 싣고 헬멧을 썼다. 출발 준비 완료다. 호주에서 전기자전거를 탈 줄이야! 한국에서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자주 돌아다녔다. 강이가 자전거를 좋아해서 덕분에 나도 자전거에 익숙했다. 돌아가는 길에 긴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전기 자전거로 쉽게 오르니 좋다.


전기 자전거를 타고 가며 시원하게 가르는 밤바람이 선선하다. 정말 행복하다. 걸어갔으면 힘들어서 대화 한마디 없이 숙소에 도착했을 텐데. 나는 우버를 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우버는 비쌀 테니 자전거가 익숙한 강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해서 그래 타보자 했다. 호주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역시나 타길 잘했다.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길이 생생히 떠오른다. 여행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하는 것은 짜릿하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잘 해냈다는 성취감이 든다. 덕분에 기분 좋게 숙소에 도착했다. 자전거 반납을 무사히 마치자 핸드폰에 알림이 온다. 전기자전거 이용료 안내 알림이다. 핸드폰 화면을 봤다. 어? 이게 맞나? 당황스럽다. 둘의 결제 내역을 합치니 한화로 13,000원이다. 이 정도면 우버가 더 저렴하다. 우버가 더 저렴하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잠시 멍했지만 이내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우버를 타면 더 편하게 오긴 했을 거다. 그렇지만 호주의 시원한 밤바람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는 경험을 못 했겠지. 전기자전거도 충분히 힘 안 들이고 숙소까지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버보다 비쌌다는 것이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치 잔잔한 영화 끝의 반전 같은 느낌이랄까. 예상치 못한 상황을 즐기는 것. 이것이 여행이다.




호주에서 자전거도 타보고 너무 즐거웠잖아.

밤바람도 맞으면서 말이야.

나중에 이 순간이 분명 떠오를 거야.

그때 우버 보다도 비쌌는데 그래도 너무 즐거웠지?라고 말하면서

웃으면서 오늘을 추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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