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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이라이트, 은하수

by 아라

호주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자 하이라이트. 오늘 밤 드디어 무게라 호수에 은하수를 보러 간다. 나는 별이 좋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반짝한 모습이 예쁘다. 그래서 좋다. 안타깝게도 아주 밝고 공기도 탁한 서울에 사는 나는 별을 볼 기회가 별로 없다. 지방에 놀러 가면 항상 별을 찾는데 기대만큼의 별은 보지 못하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그런데 여기는 호주다. 무게라 호수는 은하수 포인트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하늘도 맑아서 오늘은 별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든다.


호수에 너무 늦지 않기 위해 저녁은 가는 동안 차에서 먹기로 했다. 마트에서 산 냉동 마늘빵을 오븐에 구워 챙겼다. 숙소 앞 식당에서 피시 앤 칩스도 포장해 출발했다. 숙소에선 한 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호주에서 꼭 피시 앤 칩스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별을 보러 가며 먹게 되었다. 언제 먹을지 과장 조금 보태 전전긍긍했는데 완벽한 순간에 먹는구나. 포장 상자를 열었다. 생선 조각이 엄청 크다. 상큼한 타르타르소스에 찍어 한 입 먹었다. 생선 살이 쫄깃했다. 생선이 이렇게 쫄깃할 수가 있구나. 감자튀김은 어떻고. 방금 튀긴 감자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 포장해 온 음식들을 먹으며 기대감에 들뜬 채 호수로 향했다.


도착 40분 전, 벌써 길이 깜깜하다. 길에 가로등 하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도 너무 어둡다. 별은 보고 싶지만 어두운 건 무서운데… 벌써 이렇게 무서우면 별은 어떻게 봐야 하지? 차 불빛도 없다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 걱정되는 한편 창 밖으로 살짝만 고개를 돌려도 은은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별들이 보여 기대가 된다.


건물이 없어 옆으로만 시선을 돌려도 별들이 보인다. 별이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옆에 떠 있다니 그럴 수가 있는 거냐고.. 강이가 도착해서 짠! 하고 봐야 된다며 도착할 때까지 창밖 보기는 금지라고 한다. 앞만 보고 갔지만 눈이 자꾸만 밖을 향하려고 한다. 잠깐 본 하늘에 벌써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어떤 밤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드디어 무게라 호수에 도착했다. 이제 정말 하늘을 볼 시간이 되었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와… 정말 멋지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장면은 처음이다. 별이 정말 밝다.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에 콕콕 박혀있는데 너무 선명해서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옛날 사람들은 별을 보고 길을 찾았다고 했지. 오늘 별을 보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렇게 선명하고 반짝이는데 깜깜한 밤에 별이 아니면 무엇을 보고 길을 찾았을까. 내가 이 하늘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구나.


이런 장면이 실제 할 수 있는 거구나. 눈앞에 있지만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다. 감격은 잠시 넣어두고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너무 어두워서 우리만 있으면 무서울 것 같았는데 별을 보러 온 사람들이 좀 있다. 휴 다행이다. 그래도 덜 무섭겠군. 그럼에도 처음엔 너무 무서워서 고목나무에 매미 매달리듯이 강이 에게 착 붙어 걸었다. 사람들이 종종 핸드폰 플래시를 켰지만 모든 불이 꺼지는 순간엔 눈을 떴는데 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어둡다.


강이 팔에 매달려 겨우겨우 걸어서 사진을 찍을만한 장소로 왔다. 시드니에서 은하수를 본 경험이 있는 강이는 이번엔 나의 인생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이리저리 열심히 사진 포인트를 찾아다녔다. 사진에 잘 나오기 위해선 무조건 야간모드로 설정하고 시간은 가장 길게, 그리고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그래서 핸드폰을 고정하기 위한 삼각대가 필수다.


시험 삼아 찍어본 첫 사진. 사진으로 보니 성운이 더 선명히 보인다. 하늘마다 별빛이 다른 색인데 우리가 본 별빛은 노랗고 회색 빛을 띤다. 일단 별은 잘 나왔는데 내가 흐릿하다.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짝만 움직여도 사진엔 흐릿하게 나온다. 절대 안 움직이겠다 다짐하고 두 번째 사진을 찍었다. 이번엔 더 열심히 30초를 버텼다.


음.. 첫 번째 사진보단 잘 나왔는데 사진 속 형상이 나인지 잘 모르겠다. 강이가 엄지 손가락 아니냐고 그런다. 정말 엄지 손가락 같아서 같이 웃었다. 이후로도 강이는 멋지게 찍어주겠다며 삼각대를 옮겨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줬다. 강이는 내게 멋진 사진을 남겨주고 싶어 했다. 한 번뿐이지만 본인이 나름 호주에 와 본 경험이 있다고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고맙다.


마지막날 돌아가는 길에 나는 브리즈번을 모두 즐긴 것 같다고 후회가 없다고 강이에게 말했다. 강이는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는 함께 호주를 여행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이는 그 마음도 있지만 나에게 멋진 호주의 모습을 경험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강이는 더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너무 즐거웠다고 말하니 마음에 남은 약간의 아쉬움이 풀린 것 같다.


이런 사람과 함께 여행을 했는데 어떻게 안 즐거울 수가 있을까. 언젠가 또 쏟아질듯한 별을 본다고 해도 오늘의 밤하늘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멋진 풍경을 멋진 사람과 함께한 한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이었다. 이런 풍경을 나의 마음에 담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멋진 사진도 찍어주고 늦은 시간 피곤했을 텐데 먼 거리를 운전해 준 강이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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