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기억한다.

구정아 (Koo Jeong A, b. 1967)의 <오도라마 시티>

by 정물루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두바이몰을 걷다 보면 유난히도 향수를 파는 매대나 샵이 많다는 걸 발견한다. 우리가 익숙한 스프레이 형태의 향수뿐 아니라, 연기를 피우는 전통 향도 흔히 볼 수 있다. 50년 남짓의 역사를 가진 아랍에미리트는 박물관도 그리 많지 않은데(십 년 전까지만 해도 두바이엔 ‘두바이 박물관’ 하나뿐이었다), 그런 도시에서 향수 박물관이 있다는 건, 향에 대한 로컬 사람들의 애착이 얼마나 깊은지도 짐작할 수 있다.


이슬람 문화에서 향은 청결과 경건함의 상징이며, 좋은 향기를 풍기는 것은 타인에 대한 예의이자 배려라고 한다. 지리적으로도 사막의 더운 기후에서는 향이 빠르게 날아가기 때문에, 지속력이 강한 향수와 향료 문화가 발달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바친 세 가지 선물 중 하나인 유향, 즉 프랑킨센스(Frankincense)의 원산지도 바로 옆 나라 오만이다. 2021년 두바이 엑스포 당시 오만 파빌리온은 프랑킨센스가 자생하는 보스웰리아 나무(Boswellia tree)를 활용해 신비롭고 고요한 공간을 구성했다. 오만관 전체에 퍼지는 프랑킨센스 향은 흙내음 섞인 자연적이면서도 어딘가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며, 공간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시각적으로 저장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면, 의외로 그 순간의 향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 친정집에 가면 나는 친정엄마의 냄새, 우리 아이들이 ‘엄마한테 나는 냄새’라고 말하는 그것, 아들 방에서 나는 중학생 특유의 남자아이 향, 싱가포르 공항에서 나는 동남아 도시의 특유한 향, 파리 길거리에서 나는 묘한 프랑스 냄새, 호텔 로비에서의 잔향들. 살면서 지나쳤던 공간에서 떠오르는 냄새들에 대한 이야기만 써도 책 한 권은 나올 듯.


tempImagedZ6Wdk.heic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의 구정아 작가


구정아 작가는 이런 후각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였던 <오도라마 시티 (Odorama Cities)>. “당신이 기억하는 한국의 냄새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600여 개의 향기 메모리를 수집해 17가지 향으로 구성된 전시로 이어졌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에 사는 한인들,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 해외 입양인 등 세계 속의 다양한 한국의 향기를 담고 있었다. 심지어 1920년부터 2023년까지 100여 년의 기억이 향으로 녹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기억을 내어준 그 스토리 하나하나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때의 향을 기억한다는 건, 그 시간 속 나만의 감정, 상태, 기분까지 함께 떠올리는 일이다.


tempImageEnO0ds.heic 아르코미술관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시 전경


<오도라마 시티>는 시각이나 문자로는 포착되지 않는, 비물질적인 마음을 담고 있었다.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전시였다. 앤디 워홀은 특정한 시기를 기억하기 위해 일정 시간 동안 한가지 향수를 썼고, 시간이 지나면 그 향수를 멈췄다고 한다. 그래야 그 시기의 기억이 다른 시기와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훗날 그 향기를 다시 맡으면, 가장 빠르게 그 장소로 ‘텔레포트’할 수 자기만의 방법이라며, 그는 말했다. 그렇게 보면, 오감 중 가장 깊은 감각은 후각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코로나 시기,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도 후각의 상실이었다. 향을 잃으면 맛도 잃고, 입맛도 없고, 삶에 대한 의욕조차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기로 잠시 후각이 마비되었던 날들을 떠올려보면 그 기억은 꽤 평평하다. 엄마가 끓여준 죽을 본 기억은 있어도, 향기 없는 죽은 마치 소리없는 영상처럼 어딘가 생기가 없다.


앞으로는 핸드폰으로 사진만 저장하지 말고, 향기도 함께 기록해두어야겠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가장 오래 남고, 가장 은밀한 그 기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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