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림(Kim Lim, 1936-1997)
'인샬라'
두바이나 중동 지역에 방문해 본 사람은 한 번쯤은 분명히 들어봤을 단어이다. ‘신이 원하시는 대로’ ‘신의 뜻대로’는 직역이고, ‘뭐 한번 두고 보자.’ ‘개런티 할 수는 없지. 두고 보자’ ‘Let’s see!’ 정도의 뉘앙스로 쓰인다.
확실, 신용, 정확을 추구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을 단어일 수도 있다. 시간 약속, 실행 일정, 결과 예측, 성공 보장, 이 모든 것이 인샬라인 것이 이 나라와 보편적 아랍 문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허허벌판인 사막에 살아야 했던 아랍인들은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못하는 노매드 생활을 해야 했고, 예측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미래를 보장하기보다는 현재를 살아내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러니까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먼, 완벽하게 정반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사막에 있는 모래언덕, 듄을 보다 잠시 다른 곳을 다녀오면 다시 그 언덕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바람과 빛, 공기의 흐름에 따라 모양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예측불가, 변화무쌍, 무상(無常).
그러니까 이런 비완벽주의자들이 쌓은 삶과 도시가 바로, 두바이다.
코로나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인구,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 하나가 된 두바이 국제공항에, 전체 거주민의 85% 이상은 외국인이다. 주변 전쟁국과 러시아 출신의 사람들, 경제 발전이 느린 유럽인들, 불안정한 정부와 경제를 피해 기회를 찾아온 인도 및 동남아 사람들, 높은 세금을 피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온 중국인들까지, '두바이 드림'을 위해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독일이나 영국 등 홈타운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지인들도 많았다.
비완벽의 승리다.
지속가능성의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13년 이상 살아본 입장에서 체감한 결론이다. 신이 아니기에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은 여전히 완벽을 추구한다. 그래서 불완전함은 드러내기가 싫다. 그렇지만 불완전함을 드려내는 사람에게는 정이 간다. 어쩌면,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도 완벽하지 않았기에, 그를 통해 '인샬라 정신'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른다. 헐렁헐렁하면서도 반복하고, 작고 드러나지 않았지만 영향력은 깊은.
김림(Kim Lim, 1936-1997)은 싱가포르 출신의 조각가이자 판화가로, 영국에서 활동한 여성 예술가였다. 18세 때 런던으로 건너가 조각을 공부했고, 이후 서구 아트씬에서 보기 드문, 아시아 여성 작가로 유명해졌다.
"나는 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조용하지만 깊은 영향력, 가벼워 보이지만 무게감 있는 존재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이어나갔다. 철과 나무, 대리석 같은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흐르는 리듬과 반복은 마치 숨결처럼 조용하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형태를 최소화하는 방식은 마치 동양의 선화나 서예에서 보이는 절제미, 그리고 여백과 닮아 있다.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는, 클레이 작업을 통해서 김림은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한 - 마치 바람처럼, 흔적 없이 지나가는 듯 하지만 나무를 흔들고, 마음을 흔드는 그런 존재의 - 동양 철학의 미학을 표현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위자연, 불교의 비움과 무상, 그리고 유교의 겸손한 군자의 태도처럼, 김림은 화려하거나 소리 높여 외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흔들고 마음을 움직인다.
유연함, 흐름에 몸을 맡기는 그 인샬라 정신이 동양 철학과 김림의 예술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계획은 계획일 뿐, 완벽을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오래 잔잔히 남는다. 말보다 더 길게 이어지는 잔향처럼, 그녀의 작품은 볼 수록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인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