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고디(Lee Godie, 1908-1994)
작업을 안 할 수가 없어서 해요.
일을 안 하면 무서워요.
작업을 못해도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떠나지가 않아요.
주변 예술가들에게 두루두루 듣는 말이다.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은 절대 이길 수 없다."라고 한다. 그저 노력으로만은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러니까, 재미있어서 일하는 예술가들을 이길 방법은, 더 재미있게 일하는 수밖에 없을 수도.
밥 안 먹으면 생존이 힘들고, 샤워를 안 하면 찝찝하듯, 작업을 안 하면 살아가는 게 어렵다는 이들. 임신, 이민, 가족의 죽음, 이별, 가난... 그런 순간에도 끼니를 챙기듯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 제리 샬츠(Jerry Saltz,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 평론가. 뉴욕 매거진 소속으로, 2018년 퓰리처상 수상)의 책 제목처럼, Art is Life. 예술은 그들의 생존 방식이자 삶 그 자체다.
예술을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삶. 그 삶을 살아낸 이들이 있다. 사회 정의, 기후 위기, 여성 인권, LGBTQ+ 같은 빅메시지를 전하려는 작가들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 '살고 싶어서' 작업한 작가들에게선 말로 다 담기 힘든 진심이 느껴진다. 그들의 작품에는 애틋한 상실과 애절함이 녹아 있다.
"Art is more important than food."
예술은 밥보다 중요하다.
시카고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리고디(Lee Godie, 1908-1994)가 남긴 말이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앞 계단에서 작품을 팔고,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실천했던 그녀. 제도권 미술계에서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진정성과 독창성만으로 관객과 마주한 예술가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전통적인 미술 교육이나 제도에서 벗어난 이들의 작업을 말한다. 미술계의 트렌드나 평가 기준과는 무관하게, 내면의 충동이 영감이 되어 자유롭게 작업한다. 리고디 역시 그랬다. 그림을 팔기 위한 계산도, 미술사적 흐름에 편입되려는 욕망이나 의도도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자기를 표현하고 살아내기 위한 작업을 했을 뿐.
리고디의 작업은 순수히 자기중심이었다. 화려한 메이크업, 과장된 의상, 직접 찍은 포트레이트에 그림을 덧대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지웠다. 자신의 얼굴을 캔버스 삶아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를 모델로 삼아 사진을 찍고, 그것을 다시 그려 팔았다. 일종의 자기 연출이자 자화상의 퍼포먼스였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혹은 자신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매일 예술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행위와 창조의 배경에는 깊은 상실과 고독이 있었다. 자식의 죽음, 가족과의 단절,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자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고독이, 자아가, 웃기지도 않은 인생에서 삐죽 튀어나온 유머가 리고디의 작품 곳곳에 랜덤으로 피어있다.
결핍은 집착을 낳는다고 하지 않았나. 상실, 트라우마, 강박으로부터 자신을 지킨 여러 여성 예술가들은 '살고 싶어서' 작업을 했다. "나는 복수심으로 작업을 한다."라고 했던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거미를 형상화한 마망(Maman) 시리즈를 통해 모성애와 여성성 보고, 생존 본능을 표현했다. 일본의 야요이 쿠사마 역시, 환각과 강박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반복되는 물방울무늬와 거울 방을 그리고 있다. 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평생을 거기서 살면서도, 매일같이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예술은 누군가에게는 해방이고, 누군가에게는 생존인, '살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또 인생의 한 수를 배운다, 리고디의 작품을 통해서 -
인생은 하염없이 슬프기만도, 또 즐겁기만도 할 수 없다는 걸.
희노애락, 그 복잡한 기분을 품은 예술.
리고디는 살아내듯이, 그런 예술을 했고
그녀의 인생은 지금도 우리를 느닷없이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