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에 맞서 저항하기

정강자 (Jung Kangja, 1942-2017)

by 정물루

2011년 11월 17일 오전 10시,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이후로 13년 넘게 ‘엄마’라는 소리를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들으며 살아간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은 문자 메시지도 영어로 보내는데, 거기서도 나는 ‘Oma’다. 엄마라는 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되어버렸다. 엄마가 되고 싶긴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나 타임라인, 목표나 비전 같은 건 전혀 없이 갑작스럽게 엄마가 되었고, 심지어 나는 쌍둥이의 엄마다. 하루아침에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조종석에 앉은 느낌이라고 할까?


일단은 비행은 했다. 이쪽저쪽에서 보고 들은 것도 있고, 드라마에서도 본 적 있지만, 현실은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그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먹고, 똥오줌을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까지 내 기분과 머릿속은 그냥 ‘카오스’였다고밖에 할 수 없다.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경력직이었다면, 내 기분도 좀 더 살피며 더 잘 해낼 수 있었을 것 같긴 하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마로서 할 일은 많다. 밥이나 똥오줌을 대신해줄 필요는 없지만, 아이들 기분도 살펴야 하고, 친구 관계, 학교 공부, 건강 상태 등 더 복잡한 책무들이 생겼다. 그리고 이 태스크들도 역시 처음 해보는 일이다. 그래서 매번 어렵다.


이 와중에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게 많다. 어릴 때부터 욕심 많은 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학교 공부도, 방송부 활동도, 친구 관계도, 영어도 다 잘하고 싶었고,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도, 연봉, 회사 이름값, 업무, 출장, 휴가, 연애, 외모 등 뭐든 멋지게 해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공부 욕심까지 생기던 시점에, 나는 엄마가 되었고, 그 수많은 관심사와 열정들 중 우선순위가 하나로 좁혀졌다. ‘엄마’라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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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85.jpeg ‘한강변의 타살’에 관한 경향신문 보도. 모래에 파묻힌 이가 정강자다.


정강자 작가는 1942년생으로, 1960-70년대에 활약한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아방가르드 예술가이다. 새로운 것, 뭔가 다른 것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그녀는 홍익대 학부생 시절에도 한국의 기존 예술 문법을 깨는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교수 밑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여성성과 사회적 억압에 반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퍼포먼스와 전위예술을 시도하며,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참 별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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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가던 정강자는 결혼 후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주해 십여 년간 머물렀다. 그곳에서 바틱 기법이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활용하며 모성과 여성의 불안정한 삶에 대한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렇게 한국 예술계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 후에는 다문화적 시각과 여성, 엄마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작업들을 이어갔다. 특히 싱가포르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엄마예술가로서 작업하기 힘들었던 상황과 그 당시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공감가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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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많고 열정 넘치던 소녀가 엄마가 되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동시에 밀려드는 모성애. 30-4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주변의 엄마 예술가들과 약속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아이들 하교 시간이다. 전시 역시 아이들 방학 일정에 맞춰야 하고, 부당한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까 조심스러워진다.

2023년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열린 장강자 개인전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Dear Dream, Fantasy, and Challenge)>의 전시 서문에는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에서 인용한 구절이 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하오.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자아, 예술가, 그리고 엄마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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