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하는데 백 년 걸림

케이티 패터슨(Katie Paterson, b. 1981)

by 정물루

책을 써서 100년 동안 아무도 읽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문학일까, 예술일까, 아니면 일종의 기도일까?


스코틀랜드 출신의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Katie Paterson)은 그런 상상을 실현했다. 그녀의 프로젝트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는 2014년부터 2114년까지 매년 한 명의 작가가 비공개 원고를 제출하고, 100년 후에 종이책으로 출간되도록 설계된 예술 프로젝트다. 작가는 노르웨이 오슬로 근처 숲에 심어진 1,000그루의 나무 중 일부가 100년 후 종이가 되어, 그제야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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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도 2019년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녀는 'Dear Son, My Beloved'라는 제목의 작품을 미래도서관에 남겼고, 100년 후에나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원고들은 오슬로 신중앙도서관 최상층에 위치한 '고요의 밤(Silent Room)'애 보관된다. 이 방은 단지 원고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기다림과 상상을 위한 장소다. 16,000개의 목재 블록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거대한 나무의 나이테같이 생겼다. 100개의 유리 패널 서랍이 원형의 벽면에 따라 군데군데 있고, 그 안에 원고가 각각 하나씩 들어간다. 100년 뒤에 출간된 책들을 상상하며 머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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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서관은 직접적인 환경 운동은 아니지만, 생태와 만물의 연결성을 담고 있어요. 지금 살아 있는 우리만을 위한 짧은 시간의 결정을 반복하는 시대의 흐름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죠.
(Future Library is not a directly environmental statement but involves ecology, the interconnectedness of things. It questions the present tendency to think in short bursts of time, making decisions only for us living now.
- Katie Paterson, the Scottish artist who conceived the Future Library project)"


이 프로젝트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긴 호흡의 상징이다. 작가들은 지금, 현재의 명성과 보상을 포기하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글을 남긴다. 이는 마치 타임캡슐을 만드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 베스트 프렌드와 함께 타임캡슐을 만든 기억이 있다. 함께 찍은 사진 중, 가장 맘에 드는 사진을 고르고, 서로에게 편지를 써서 넣고, 20년 후에 열어보기로 했지만 상자는 사라졌고, 내용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 메모를 쓰던 기분은 아직 생생하다. 친구가 상자를 열었을 때의 모습,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마침표 하나 정성스럽게 썼던 기억이 난다. 그건 어쩌면, 미래의 나에게 스스로 쓴 편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케이티 패터슨의 미래도서관 프로젝트를 보면서 남편과 함께 타임캡슐을 만들어볼까 한다. 결혼기념일마다 손편지를 써서 넣고, 2050년, 25년 후에 열어보는 것이다. 25년어치의 편지가 한 상자에 쌓여 있을 테고, 그걸 70 가까운 얼굴로 마주하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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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숨으로 인생을 산다는 건, 지금보다 더 먼 시간을 생각하며 오늘을 조금은 가볍게 덜어내는 일이다. 숨을 깊게, 크게 쉬는 것도 연습을 해야지만, 습관이 되고 가능해진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확실하게가 당연한 하루들 사이에서, '언젠가' 먼 시간을 상상하며 지금 당장 보상받지 않는다고 해도 불안해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다.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내가 100년 이후를 생각하고 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상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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