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위로
해외에 살면,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인생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다만 외국인의 신분으로 한 장소에 정착해 살게 되면, 그 빈도수가 더 잦아지는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감정적으로 가장 불안해지는 순간은 아무래도 아플 때인 것 같다. 두바이로 이주한 후, 크게 아팠던 기억이 몇 번 있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출장을 많이 다녔고, 이것저것 먹어본 경험도 많아서 음식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 사는 곳이니, 다들 먹고사는 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게 기본적인 내 마음가짐이었다. 두바이에 이주한 뒤에도 아랍 음식은 잘 고르면 괜찮았고, 워낙 외국인이 많은 곳이라 선택지는 다양했다.
한국 음식만 빼고.
한국은 너무 멀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도 몰랐지만 한국 음식이 돼지고기 베이스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건지, 도통 마음에 드는 한국 음식을 먹기가 힘들었다. 이곳에서는 호텔조차도 돼지고기 취급 라이센스가 없으면 돼지고기 요리가 여전히 불법이다.
그래도 한국 음식과 가장 가까운 건 중국 음식이나 일본 음식이다. 예전에 미국 출장을 갔을 때도 한국 음식이나 아시안 푸드가 그리워지면 팬다 익스프레스(Panda Express)에 가곤 했다. 두바이에도 중국 음식이나 일본 음식 프랜차이즈는 꽤 많다. 그러고 보니 왜 한국 레스토랑은 지금까지도 떠오를 만한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없는 걸까.
여튼 많은 곳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직접 운영하기보다는,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중국·일본 ‘식’의 어메리칸 퀴진에 가깝다. 아니면 이탈리안이나 아랍 음식을 먹어야 하니 선택지가 아주 넓다고 보긴 어려웠다.
어느 날, 한 일식 프랜차이즈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몸이 근질근질하면서 어질어질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어딘가 몸이 비정상일 때는 늘 초기에 이런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음식 알레르기를 포함해 어떤 알레르기도 없는 나는 바로 병원을 찾았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외부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나타나는 반응일 수 있다며 약을 처방받았다. 아무래도 외부 음식 때문일 가능성이 크니 당분간은 집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으라는 권유도 덧붙였다. 가끔은 위생이 완벽하지 않거나 재사용한 기름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일도 해야 했고, 이주 초기라 아직 집도 차도 계약하지 못한 채 모두 렌트 생활을 하던 때였다. 새로운 업무와 직책에 적응하느라 이미 벅찬데, 밥까지 스스로 해 먹고 얼굴로 알레르기가 번지지 않게 혼자 간호까지 해야 하니 참 서러웠다.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한국이었으면 엄마가 음식을 챙겨주고 간호도 해줬을 텐데. 애초에 이런 이상한 음식을 먹고 아플 일도 없었을 거라며 상상이 점점 커졌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두바이까지 왔을까, 그런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작년 말 11월에도 음식 때문에 급성 위장염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다. 지금은 남편이 있어서 혼자 운전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집밥은 또 다른 문제다. 위장염 역시 배달 음식이 원인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래서 의사는 당분간 집에서 깨끗하고 심플한 음식을 해 먹으라고 했다.
싱가포르인인 우리 남편은 다른 집안일은 해도 음식은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결국 내가 직접 죽을 끓이고 누룽지를 끓여 먹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정도가 무슨 고생인가 싶지만, 그 당시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게, 맞는 말 같다.
그리고 몸이 아프면 긍정적이고 밝은 사고를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걷기와 러닝, 운동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는 게 아닐까. 뇌는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움직인다고 했다. 몸에 힘이 없고 아프면, 뇌가 힘차게 작동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가장 아프고 힘들 때, 가장 외로울 때 필요한 건 결국 ‘집밥’이라는 생각.
누군가 나 하나를 위해 따뜻한 음식을 차려주는 것,
그게 힐링이고 최고의 위로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