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시에 도착했다

다수이면서도 아웃사이더인 우리들

by 정물루

2013년 3월, 중동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아 물론 그 전에 출장으로 한 번 와봤다. 잠시 일주일 정도 머물렀고, 두바이에서 겨울이라고 부르는 1월이어서 날씨도 시원하고 비도 왔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중동’, ‘사막’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튼 두 번째 방문은 여기에 직장을 구했고 일주일이 아닌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살 계획으로 왔다. 그러니 두바이의 집들, 도로, 라이프스타일을 비로소 관심 있게 지켜보기 시작한 건 겨우 그때였다. 한 달간은 회사에서 마련해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 주메이라 라는 동네의 빌라촌이었고 모든 빌라가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길 이름도 없이 빌라 넘버만 있었고 집 앞에 따로 표기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외출하고 돌아갈 때면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집 앞에 나와 손을 흔들어주셔야만, 그걸 보고 택시 아저씨가 그 앞에 내려주곤 했다.


도시를 가르는 도시고속도로 같은 셰이크 자이드 로드는 제한 속도가 100이라고 쓰여 있지만 20 정도는 봐주는 편이라, 그러니까 사실상 120이 속도 제한처럼 느껴졌다. 양 방향으로 10차선이 훌쩍 넘는 큰 도로에 교통체증은 거의 없었다. 그 도로 통행료가 자동으로 청구되는 Salik이라는 시스템 때문인지, 도로는 늘 여유로웠다.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라는 두바이몰도 너무 커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말에도 전혀 복잡하지 않았다. 몰의 일부는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광이 충분히 들어왔고, 에어컨이 빵빵한 곳에 앉아 마치 외부에 있는 것처럼 햇빛을 즐길 수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지 않았고, 테이블 간 간격도 어찌나 넓은지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만한 공간이 아주 충분했다.


언어. 회사에서도 그렇고 어디를 가나 영어가 아주 잘 통했다. 어릴 때 살던 홍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홍콩에서는 영어 아니면 광동어를 썼다면,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아랍어를 썼다. 아니면 인도말? 알고 보니 두바이 거주민의 약 85-90%가 외국인이라고 했다. (그래, 당시 이런 것도 모른채 두바이로 이주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 나라는 시민권을 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간다.


팀원 중 한 명은 심지어 여기서 태어났는데도 여전히 파키스탄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평생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가족과 친척은 모두 파키스탄 사람들이다. 방학이나 휴가 때마다 친척을 만나러 자주 파키스탄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자주 가본 곳. 참고로 파키스탄은 두바이에서 비행기로 약 3시간 거리다. 그래서 그의 고향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파키스탄이다.


동료 중 한 명은 시리아 출신이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두바이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2013년 당시 시리아는 내전이 시작되어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는 시리아 정부에 대한 의견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그것이 검열되어 시리아로 입국이 금지되었다고 했다. 만약 입국하면 바로 잡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일하던 광고계에는 레바논 출신 사람들이 많았다. 몇몇은 이미 캐나다나 호주 등의 시민권을 취득했고, 몇몇은 레바논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레바논을 떠난 지는 오래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두바이에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두바이, 정확히 말하면 아랍에미리트 국적의 사람들은 약 10% 정도에 불과해 실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전부 외국인인 우리는 그 누구의 나라도 아닌 곳에서 만나 함께 일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자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낯선 곳에서 섞여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고 연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다수이면서도 아웃사이더인 집단, 그것이 두바이의 외국인들이다.


콜라주처럼, 이미 있는 정체성을 자르고 찢고 이리저리 배치해 붙여 나가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느낌이었다. 불안정과 불확실이 기본 상태였지만, 두바이의 이방인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롭고 이상한 정체성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왔다. 전쟁 중인 러시아 사람들, 새로운 기회를 찾는 중국 사람들, 경제난을 피해 온 영국 사람들, 자유를 찾아온 이란 사람들, 그리고 이후 관계 변화로 유입된 이스라엘 사람들까지.


이런 하이브리드하고 혼종적인, 어딘가 이상한 정체성이 어떤 문화와 소울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이번 브런치북에서 하나둘씩 풀어보려고 한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지만 또 어느 곳에나 속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