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니다

by 정물루

"Where are you from?"


한국에서는 받아본 적 없던 질문이지만 두바이에서는 새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받는다. 아니면,

"니하오!"


요즘은 좀 덜하지만 2010년대 초만해도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꼭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보곤 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니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굳이 말할 상황은 없었다. 두바이는 거주민의 약 90%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다수가 외국인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 출신인지가 자기 소개에 늘 포함이 된다.


여기에선 '나'라는 사람은, 일단은 코리안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몇 살인지를 떠나서 코리안은 똑똑하고 날씬하고 건강식을 먹는 사람이라는 기본 이미지가 곧 내가 된다. 싱가포르 사람인 우리 남편도 한국 사람에 대한 이런 이미지가 맞는 지 항상 나에게 묻곤 했다. 그래서 브런치북 <외국인 오빠>에 연재하기도 했었다. (브런치북은 미완성으로 현재 연재는 멈춤 상태다)


참고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글의 제목은 '왜 한국 남자들은 수염이 없는 거지?'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koreaandkoreans


이집트에 있는 우리 엄마도 K드라마를 항상 챙겨보는데 다 재밌다더라

BTS 너무 좋다. 한국 남자들은 다 그렇게 피부도 좋고 매너도 좋냐

한국 여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다 날씬하냐

한국 음식은 기름도 많지 않고 정말 특이하고 맛있다

한국 스킨케어 제품들 싸고 너무 좋다

등등.


다행히 요즘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서 덩달아 나도 꽤 좋은 사람으로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점점 이게 맞는 건가 싶어졌다. 한국 남자라고 해서 다 BTS처럼 피부도 좋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한국 여자라고 해서 모두 날씬한 것도 아니다. 우리도 튀긴 음식을 좋아하고, 불량 식품을 더 많이 먹는 사람도, 덜 먹는 사람도 다 다르다. 그리고 한국 스킨케어 제품도 당연히 잘 골라 사야 한다. K드라마 역시 다 재미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일반화 시켜서 판단하는 게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 역시 그런 편견 속에서 살고 있었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헬퍼를 구할 때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우간다 등 출신 국가에 따라 어떤 성향일 것이라고 만나기도 전에 기본 이미지를 마음 속에 장착한 채, 그들을 만났다.


아이들 친구들 생일 파티에 갈 때에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보고 그 가족을 만나기도 전에 어떤 분위기일 것이라고 이미 내 나름대로 상상한 채 그 가족을 만났다.


2018년에는 <Crazy Rich Asian>이라는 싱가포르 부유층 가족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두바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때 내가 받은 수많은 질문 중에 하나 역시 우리 남편이 크레이지 리치냐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물론 나라별 소득 수준이나 사회 구조의 차이로 생활 수준과 문화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사람의 사정과 성격이 같을 수 있을까? 한국의 외국인 거주자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 역시 모두 다른데 언제부터 이런 고정관념이 생긴 걸까?


어릴 때 홍콩에서 살던 시절에는 학생 신분이라 와닿지 않았던 이런 편견들을, 이제는 관찰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인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미 1978년에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가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양을 특정 방식으로 규정해왔다는 점을 비판했다. 동양을 신비롭고 감성적이며 비이성적인 공간으로 묘사하고, 서구의 이성적이고 발전된 문화와 대비시키는 시선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특정 집단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는 시선에서 벗어나, 문화의 우열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맥락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슬프게도 여전히 이런 편견은 만연하고 있고, 요즘은 미디어와 콘텐츠,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더 복잡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큰 오해를 받고 있는 지역 중 하나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다. 흔히 ‘중동’이라고 부르는 이 지역. 사실 이 표현 자체도 어디를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구에서 봤을 때의 ‘중동’일 뿐,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곳은 ‘서아시아’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특히 911테러 이후, 미국은 이 중동 사람들을 전부 테러리스트로 만들어 버렸다. 사막, 전쟁, 위험,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오해까지.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공항에서 칸두라를 입은 두바이 로컬 남성들을 보고 조금은 긴장되고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살아봐도 알게 된다. 이곳 문화가 얼마나 여성과 아이를 우선하고 존중하는지.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편견에 기반한 질문이나 의견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사례를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끊임없이 오해되고 설명하고 다시 정의되는 과정인 것 같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 다행이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그 덕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이게 정말 좋은 것일까? 집단으로 묶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 그러니까 개인성, 다양성, 혼종성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우리 아이들이 ‘고정관념 깨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Crazy Rich Asian의 남주. 싱가포르 남자들의 보통 얼굴이 절대 절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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