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by 정물루

"나 오늘 밤에 급하게 한국가야하는데 오늘 오전에 장본 게 내일 배달 온다고 하거든. 그것 좀 받아줄 수 있어? 청소용품이 대부분이라 상하는 건 없는데 그 안에 우리 강아지 음식도 있어서. 좀 챙겨줘."


아버지가 테니스를 치고 집에 오셔서 샤워를 하신 뒤 가슴이 답답하다고 병원에 가셨는데 끝내 나오지 못하셨다고 했다. 친구의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다.


그때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빙이 필요했다. 비행기표를 급하게 예약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코로나 테스트를 받고 음성이라는 결과를 받아야만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친구는 자신이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혹시라도, 만약이라는 상황을 떠올리며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일도, 이 상황에 두바이에 살고 있는 자신도, 혼자서 딸을 기다리는 엄마도, 그리고 내일 도착할 식료품까지. 그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해외에 살면서 가장 불안하고 두렵고 힘든 순간 중 하나는, 고국에 계신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다. 그럴 때 곁에 있어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이기적인 나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까지 밀려온다.


폭격으로 레바논 베이루트의 집에서 부모 두 분을 한꺼번에 잃고, 이스라엘을 전쟁 범죄로 고소한 프랑스 예술가가 있다. 레바논 출신의 알리 체리 (Ali Cherri).


알리의 부모님은 2024년 11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베이루트 중심부의 주거 밀집 지역에 있던 12층 건물이 피격되면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알리의 부모를 포함해 최소 6명이 사망했다. 알리는 이 건물의 소유주로서, 민간 시설을 고의로 공격한 전쟁 범죄라며 프랑스 법원에 고소했다. 주변에는 군사 목표가 없었고, 사전 대피 경고도 없었다고 한다.


비슷한 일을 겪고도 아무런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가족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이 사건이 더 이상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판단해 고소를 결심했다. 까다로운 절차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책임 없는 전쟁의 반복을 끊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알리 체리는 현대 미술가이자 영화 감독으로, 중동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유물, 흙, 몸을 통해 역사와 폭력의 기억을 탐구하는 개념미술 작가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구겐하임, MoMA, 퐁피두 등에 소장되어 있다.


5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알리 체리 (출처: Hyperallergic)


프랑스로 이주해 살아온 알리는, 조국 레바논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역사 속 상처를 탐구하며 작업해왔다. 유물은 누구의 것인가, 역사는 누가 해석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기존의 시선을 흔드는 의미있는 작업들을 이어왔다. 불안정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모험심을 잃지 않는 이방인 예술가. 그런 그에게 부모님의 죽음, 그것도 이스라엘의 무모한 공격으로 죽음을 당한 소식을 외국에서 들었을 때 심정은 어땠을까.


어제, 그러니까 4월 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2주동안 휴전을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무차별 공격했다.


단 10분 동안 레바논 100여 군데를 폭격하여 약 250명이 죽고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다. 레바논은 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며 헤즈볼라를 타겟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공격한 건 일반 시민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알리의 부모님처럼 무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치고 죽었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먼 나라 이야기, 늘 전쟁 중인 중동 이야기라고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휴전 발표 전까지 이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전 세계, 한국까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보지 않았나.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생애의 한순간 잠시라도 혹은 오래도록 이주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이주를 선택하고 실행한 사람들은, 그만큼 모험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불안정한 삶 안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우리 모두가 이주자이고 이방인의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생각보다 우리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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