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웃겨진다

라리사 산수르의 지구 탈출

by 정물루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교황과의 의견 충돌 이후 그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AI로 생성한 이미지를 하나 올렸다. 자기가 예수처럼 병자를 치유하는 이미지였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는 그건 예수가 아니라 의사였다며 해명했다.


미국의 정치와 언론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프로그램인 The Daily Show의 진행자인 존 스튜어트(Jon Stewart)는 대통령의 이 황당한 해명과 관련해 강하게 비꼬았고 큰 이슈가 되었다. 존 스튜어트는 예전에는 거짓말도 좀 그럴 듯하게 하더니 이제는 너무 성의없이 거짓말을 한다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의사냐"고 비꼬았다.


그리고 이 AI 이미지 속 병자가 아주 익숙한 얼굴이라며, 자기와 닮았다고 하면서 자기까지 직접 끌어들여 대통령의 어이없는 행동을 더 웃긴 상황으로 만들어버렸다. 공인도 아닌 일반인이 올려도 민망하고 창피할 만한 이런 이미지를 한 나라, 그것도 미국의 대통령이 직접 소셜미디어에 올린 이 사건은 역사에 남을 만큼 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미지 출처: Verity


영상 마지막에 존은 헝가리 총리 빅터르 오르반이 16년 만에 헝가리 총선 패배한 것을 언급하며 헝가리인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We Are The Champion을 함께 부르고 한 정치인이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2년 반 남았다고,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마지막 멘트를 하면서 마무리 했다.


트럼프의 임기가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 미국인들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뉴스와 정보 사이에서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사건을 유머를 통해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흘려버리기 쉬운 장면들을, The Daily Show의 존 스튜어트는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이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건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말이다.


좌든 우든, 대중 매체 속에서
늘 ‘피해자 아니면 테러리스트’로만 그려지는 데 지친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보고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어떻게 재현되는지의 문제를
자기 작업의 중심에 둔다.

동시에 예술가로서, 또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도 함께 고민한다.
그리고 그걸 풀어내는 방식은 유머나 과장, 때로는 미래를 상상하는 이야기들이다.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Nat Muller는 새로운 세대의 팔레스타인 작가들이 정면으로 싸우기보다는 유머로 비틀고, 과장으로 밀어붙이고, 때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건너가듯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들은 정체성을 설명하는 대신, 프레임 자체를 흔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서구 미디어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을 피해자 혹은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로만 비춰왔다. 복잡한 현실은 지워지고 단순한 캐릭터만 남겨진 것이다. 이런 세계의 시선을 바꾸려는 작가들 중 하나가 라리사 산수르(Larissa Sansour)이다.


1973년 예루살렘에서 러시아인 어머니와 팔레스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라리사 산수르는 첫 번째 인티파다, 즉 1987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해 일어난 대중 봉기를 겪었다.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공부를 시작했고, 그 경험을 예술로 바꾸기 시작했다.


라리사는 주로 비디오 아트와 사진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상황을 다루지만, 이를 슬픈 비극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SF, 유머, 대중문화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비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A Space Exodus(우주탈출)>가 있다.


이 작품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패러디해 팔레스타인인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라리사는 ‘최초의 팔레스타인 우주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차용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문장을 재해석한다.


https://youtu.be/oR_e9y-bka0?si=wy8bUjpZPQOgxSRa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트레일러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진 라리사는 자신의 의상 소매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수놓고 등장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천문학과 같은 과학 분야를 포함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분위기를 지닌다. 동시에 현재 팔레스타인 국가의 가능성 자체를 잠식하고 있는 수많은 현실적 문제들과 강한 대비를 이루는, 다소 순진할 정도로 낙관적인 미래상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이 던지는 시선은 1948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엑소더스’ - 추방과 이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라리사의 에서 그녀는 결국 달에 도착하지만, 현실에서는 팔레스타인인이 꿈꾸는 수도 예루살렘에조차 입국이 거부된다.


달 위에 서서 지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이 작품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적 ‘엑소더스’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지구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 없다면,
괜찮다. 우리는 달에 가서 살아갈 테니까."


라리사의 작업은 장대하고 유머러스한 설정이 많아 중동과 아랍 문화를 다루는 다른 작품들의 무거움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슬픔과 비극 대신, 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하고 결합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시선과 질문을 끌어낸다.


어렵고 힘들고 무서울 때, 더 웃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라리사 산수르처럼, 그리고 존 스튜어트처럼


탁닛한 스님도 <Fear>이라는 책에서 말했다. 두려워지면 웃으라고. 웃을 때마다 두려움의 힘은 조금씩 작아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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