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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ug 14. 2023

너에게 내 힘을 보낸다.

뒤처진 새

#표지 그림: 이영학, <솟대이야기>,  2009.




     뒤처진 새

                                               라이너 쿤체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시집  「나와 마주하는 시간」 에는 온전히 자신과 마주한 그 성찰의 시간에 시인의 마음에 남은 세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 더위와 가뭄이 유난했던 지난여름, 시인은 타들어가는 풀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어디에서든 역사의 상처들을 본다.

 이 시('뒤처진 새')는 독일 피셔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에는 들어 있지 않다. 한국어 번역본을 위해 시인이 추가해 준 시이다. 시인은 그런 ‘뒤처진 새’를 눈여겨보는 사람이다. 그 자신이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많은 핍박을 견뎠던 사람이다.

- 「나와 마주하는 시간」 중 <옮긴이의 말> 중에서.






  어딘가 부족하여 무리에서 뒤처진 새를 만나는 일은 가슴 아린 일일 게다. 그것을 어릴 적부터 안다는 것은 또한 항상 가슴에 품는 애처로움일 게다. 위로하고 지키며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밖에.


  뒤처진 새를 바라보며, 그 새를 기다리며 마지막까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인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힘겹게 대열에 합류하는 뒤처진 새에게 마지막 힘을 보태는 시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세상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보살피고 있는 자의 진지한 자세를 읽을 수 있겠다.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자의 특별함을 가만히 지켜주는 자의 자세를 읽을 수 있겠다.


어디론가 무리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 저 중에 뒤처신 새는 없어야 할텐데.



  나도 심하게 뒤처진 새였다. 태어나고 자랄 무렵 내 곁엔 뒤처진 새들이 참 많았다. 뒤처진 ‘나’와 주위의 풍경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도 겉으론 불행하지 않은 듯 살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만이 아는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다. 살면서 부끄러운 시간들은 더 쌓여 갔다. 삶이란 부끄러움을 쌓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세월이 흘러 내 안의 부끄러움을 조금씩 닦아 가는 것이 삶이라고 느끼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작은 위안을 가지게 되었다. 깨어진 무릎을 다시 싸매고 걸어갈 수 있게 해주었던 중한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내 맘에 담았다.






  뒤처진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모두 어디론가 급히 떠나고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발자취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요즘 깨닫는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것임을. 그런데 세상은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때문에 우리가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급함을 느낀다면, 자신이 너무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닌가 겁이 난다면,   순간 에게 힘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떠올리자. 그리고 뒤처진 새에게 내 힘을 보내자. 우리는 그들에게 힘을 보내고 또한 그 힘으로 우리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고 난 다음  저녁 하늘


  태풍이 지나가고 나자 아침저녁으로 미세하게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저녁에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면 매미소리보다는 귀뚜라미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가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이다. 전신을 휘감아 도는 후텁지근한 열기는 아직 여름이라 말을 하지만 입추 절기도 지났고 이젠 가을을 맞이할 준비만 남았다.


  오늘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철새들이 비행 연습을 하는 듯 힘차게 날갯짓하며 무리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수천 킬로미터를, 지도도 없이 머나먼 길을 날아온 철새를 보니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좋은 먹이를 찾아 여기까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또다시 힘을 내서 머나먼 곳으로 날아갈 텐데. 그때까지 무한반복 날갯짓 연습을 하겠지. 서로 하나가 되어 힘을 모아 힘차게 날아가는 철새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유달리 힘들어하는 내 안의 '뒤처진 새'에게도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내일은 더 좋은 날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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