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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an 01. 2024

아빠가 딸에게

양희은 <엄마가 딸에게>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중략)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 양희은 작사, 김창기 작곡, 가수 양희은이 노래한 《엄마가 딸에게》 중 일부



  이 곡은 양희은의 2015년 싱글 프로젝트 「<뜻밖의 만남> 네 번째」에 수록된 노래로 양희은과 학생 김규리의 듀엣 버전과, 그에 더하여 래퍼 Tymee까지 참여한 Rap버전이 있다.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말하는 내용 속에 가족의 사랑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2019년 「추석맞이 <불후의 명곡> 가족특집」에서 그룹 N.Flying의 유회승과 그 아버지 유동규 부자가 이 노래를 불러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 주었다. 노래를 부르던 부자도 울었고 듣는 청중도 울었다. 나중에 우연히 ‘너튜브’를 통해 보게 된 나도 가족 모르게 흐느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최고의 입담꾼인 사회자 ‘신동엽’마저 노래가 다 끝나고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두 번이나 진행을 이어가지 못했고 세 번째가 되어서야 겨우 울먹이는 목소리로 청중평가단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불후의 명곡> 진행 중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신동엽'




  연말이 되자 그간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직장 동료들과의 여러 모임들이 만들어졌다. 오랜만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반가우면서도 예전에는 미처 말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으며 조금은 멋쩍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였던가 하는 어색함과 부끄러움.


  그렇게 또 다른 모임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예전에 같은 팀에서 근무했던 동료들로 나까지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이 모였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까 옛 생각도 나고 그 당시의 힘들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까 옛 생각도 나고...


  그러던 중에 누가 꺼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대화 주제가 떠올랐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와 결혼할 것인가?’ 어찌 보면 너무도 식상하고 지루한 화제였지만 모두가 기혼자들이라 자연스럽게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여자 동료 한 명이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했다. “다시 태어나야 돼요?” 한마디로  생각하기도 싫다는 의미였다. 또 한 명의 여자 동료는 어정쩡한 태도였다. “지금 오빠가 좋아서 다시 태어나도 같이 살고 싶긴 한데, 그래도 그건 좀 고민해 봐야겠네.”


  난 생각이 조금 달랐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 아내와 결혼하겠어. 왜냐하면 나 같이 지랄 맞은 성격의 남자를 이 정도 맞춰가면서 살아줄 여자가 과연 있을까 싶어서 말이야. 결혼은 생활이거든. 그랬더니 나머지 동료들이 맞다고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리고 난 한 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지금 딸애를 잃어버리게 되잖아. 그건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당신들도 자녀를 고려하면 생각이 달라질걸.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박했다.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더 예쁜 아이를 낳을 수도 있잖아.”


  ‘더 예쁜 아이’라. 더 예쁜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내 딸보다 더 예쁘고 예의 바르며 참한 아이는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나에게 내 딸애가 주는 애착과 괴롭고 힘들었던 심정의 연대감을 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나와 딸애의 추억을 대체할 수 있는 더 예쁜 아이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오직 딸애만이 나에게 곧 무너질 것 같은 불길 속을 뛰어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일러스트 '시네자나수시'의 가슴 따뜻한 그림.  딸 앞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평생 묶어보지 못한 머리 묶기도 도전하는 게 아빠의 사랑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아가 오늘 하루,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따뜻하게 전해주는 영화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영화가 되었던 영화 <어바웃타임, 2013>. 얼마 전 개봉 10주년을 맞이해 재개봉하기도 하였다고 한다.(*참고로 내 인생영화는 "콘스탄틴"이다.)


영화  <어바웃타임>의 포스터


  남주인공인 '팀'은 변호사이다. 21살 모태솔로로 영화 초반에는 남들에게 제대로 말도 못 거는 등 찌질함(?)의 정점을 찍지만, 집안 남자들의 내력인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으로 '메리'와 만나고 결혼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며 점점 내적으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자녀를 낳고 살게 된 팀과 메리 부부. 새로운 생활과 양육, 경제적 문제 같은 것들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조금씩 스스로의 삶에 만족해 가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 여동생 '킷캣'은 연인 '지미'와의 싸움 이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중상을 입는 등, 점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를 안타까워 한 팀은 킷캣이 불행의 시작인 지미를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지미를 만난 밤으로 가서 과거를 수정하고 돌아오는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자녀를 낳은 후엔 자녀를 낳기 전으로 이동하면 자녀가 바뀌어버린다는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를 안으면서 팀은 이 일로 처음으로 과거를 수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방안을 찾게 된다.


메리와 팀의 행복한 가족.


  그렇게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아버지가 폐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 시절부터 피워온 담배가 원인이었지만, 아버지는 팀과 킷캣의 존재를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담배를 피운 과거를 수정하는  포기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팀은 셋째 아이의 출산 직전,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돌아가 이별을 고백한다. 아버지와 어린 시절 놀던 해변으로 잠시 돌아가 작별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팀은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으며,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인생 역시 나날이 새롭게 변화해 간다.


팀은 아버지와 어린 시절 놀던 해변으로 잠시 돌아가 작별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저께 새벽, 잠을 자고 있는데 딸애가 춥다며 내 품에 폭 들어왔다. 난 갑자기 쳐들어온 딸애 때문에 잠도 깨고 우연히 팔베개로 내어준 팔이 점점 아파와 그 새벽을 그냥 날려 버렸다.


  그러나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자고 있는 딸애를 보면서 마음 가득 부성애와 설렘을 느꼈다. 다시는 이런 감정을 느낄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아쉬움과 함께.


  사실 내 인생에서 딸애만큼 날 피곤하게 하는 존재가 없다. 숙제하기 싫다고 뒤로 미루다 결국 울면서 어떻게 하냐고 나에게 오히려 따진다. 수 천 번을 말해도 변함없이 양말과 옷가지를 온 집안에 흩뜨려 놓는다. 씻기는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떡진 머리로 세수도 안 한 채 학교에 간다.


  돌봐주시는 장모님을 종 부리듯이 마구 대하는 걸 나무라면 아빠는 참견하지 말라고 눈을 부라린다. 그러다 내 입에서 한소리 나오려 하면 벌써 장모님이 말린다. 참으로 인간이라는 종(種)은 사람이 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함에도 만일 우리 집에 지금의 딸애가 없다면, 아니 다른 더 예쁜 아이로 바뀐다면 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단연코 그럴 수 없다. 


  나도 영화 <어바웃타임>의 아버지들처럼 딸애를 위해 나의 여러가지 선택지를 포기할 것이다. 그건 내가 의롭거나 성인의 기품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 딸애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느 눈이 많이 내린 날 눈사람을 만들던 아빠와 딸


  오늘 아침에도 딸애는 자기가 평소 쓰고 다니는 '토끼머리띠'를 찾느라고 온 집을 헤매다 결국 나에게 짜증 섞인 어투로 찾아달라고 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러니까 항상 물건을 제자리에 두라고 했잖아!" 말은 했지만, 할 수 없이 같이 찾기 시작했다. 결국 오늘은 찾지 못해서 울면서 친구 만나러 나갔다.


  그런 딸애를 보면서 한숨을 쉬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래야 내 딸이지, 안 그러면 남의 자식이게.'


  우리 집은 한시도 조용한 날 없이 '고함'과 '울음'과 '한숨'이 계속되지만 그것이 바로 나의 가족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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