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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May 22. 2024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조급함과 나태함


진리를 좇아 매진하는 것,
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는 모두 끝이 없는 과정이다.
멈추는 순간 실패가 된다.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나의 발이 바늘이 되어
보이지 않는 실을 달고
쉼 없이 걷는 것과 같다.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 낫다는 믿음 아래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 제1화 내레이션 인용


  <비밀의 숲 시즌1>은 2017년 6월부터 16부작으로 방송된 tvN 토일 드라마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톨이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과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배두나 분)’이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간다.






  처음엔 검찰 조직 내부의 비리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였던 사건은 범인의 의도도, 향방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진다. 작품 주제인 “설계된 진실, 모두가 동기를 가진 용의자다.”라는 말 그대로 주요 인물들 모두 동기를 가질 만한 용의자로 느끼도록 이야기가 설계된 입체적 작품이다.


  한 사건에서 시작된 일이 파헤칠수록 새로운 사건이 파생되고 용의자의 수가 늘어나며, 주요 인물들 대부분 각자의 비밀을 갖고 있다 보니 용의자로 의심할 명분을 갖게 만들어 인물 간 관계 구도도 서로 얽히게 했다.


  덕분에 작중 최종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미궁 속으로 빠져 향후의 이야기가 어떤지 궁금할 정도로 흥미를 유발했고, 마지막 회를 보고서야 장막이 걷히며 비밀이 드러난다.


 <비밀의 숲> 시즌1 주요 등장인물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까지 방영이 완료되었고, 한국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서브주연이었던 ‘서동재(이동재 분)’를 타이틀롤로 내세운 ‘스핀오프’까지 제작 진행 중에 있다.


  시즌2가 다소 호불호가 갈리면서 아쉽다는 반응도 있지만 방영된 지 7년 여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드라마 팬층이 견고하고 꾸준히 시청자들에게 회자된다는 점에서 시즌1이 한국 드라마계의 입지전적인 작품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우리 회사에서 내가 근무하는 부서는 ‘스마트정보과’이다. 이곳에서 난 스마트도시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 정기인사 때 지금 부서로 왔으니 거의 1년 동안 이 업무를 하고 있는 셈인데 안타깝게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 부족하다.


  도시의 경쟁력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스마트도시’ 사업을 추진 중인데, 여러 혁신적인 신기술에 대해 비전문가인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합당한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무엇을 모르는지도 잘 모르겠다.


  스마트도시에 대한 정의는 국가별 여건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보통 4차 산업혁명신기술들을 활용하여, 시민들의 생활 편의성을 향상하고,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며,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스마트도시 개념도

  전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의 무한경쟁 속에서, 민간부문이 주도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 로봇 등의 기술 생태계를 활용해 교통, 에너지 등  다양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공공은 민간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기술들이 안착하여 도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이러한 과정 중의 일부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스스로에 대해 ‘뛰어나다’는 평가를  적이 별로 없다. 학생 시절은 많이 아쉬웠고, 직장 생활을 한지도 20여 년이 지났지만 회사에서는 아예 어림도 없다.


  나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안 나는 불굴의 사명감과 성실함에 더해 각자 그 궁극의 실력들을 보여주는 직원들을 보면서 나는 일찌감치 주제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큰 바위들이 많은 산 중턱에 놓인 작은 '조약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자조적인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 업무를 직접 하는 담당에서 팀장이라는 중간 관리자로 옮긴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나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우리 팀이 해야 할 일을 어느 범위까지, 어느 수준까지 설정해야 할지가 늘 고민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진행하여 마무리 지울지가 주된 관심사이다. 마음이 쓰려도 그렇지 않은 듯 내색하지 않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언제나 상사들의 기대와 팀원들의 고충을 절충시키면서 하루하루 떨어지는 ‘폭탄’을 절묘하게 돌리는 것이 내 역할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선배들을 만났다. 어떤 분은 ‘조급함’에 대해 말씀하셨다. 조급함 뒤에는 지나친 욕심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분은 ‘나태함’에 대해 언급하셨다. 나태함은 소극적인 게으름보다 더 위험한 무력감을 동반한다.


  그래서 나는 조급함과 나태함 사이의 적절한 어느 지점에서 노련하게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얼마 전부터 ‘혹시 내가 이 줄타기에 영원히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나를 상담해 주시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무기력증에 자주 빠지는 이유는 살아오면서 겪은 무수한 경험과 그 대응들이 고착화되면서 부정적인 생각의 패턴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은 그 패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조금이라도 밝고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격려하셨다. 의례적인 칭찬이 아니라 합당한 '진단'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무실에서 내가 느끼는 일이나 사람에 대한 불편함과 자격지심도 근본적으로 나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 정보기술에 대해 비전문가라는 변명은 사실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도구이지만 그래도 도구임에는 변함이 없다. 궁극적으로 모든 도구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하는 일은 신기술을 행정에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나는 수백의 절망 속에서도 한 줌의 희망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다.


나는 수백의 절망 속에서도 한 줌의 희망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다.


  자주 지엽적인 무력감에 빠지겠지만, 결과를 예단하여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낼 것이다. 다시 일어설 거라는 희망을 안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지금보다 유연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긍정적인 내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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