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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비밀의 화원>

나를 이루고 있는 말들에 대하여.

by 소소담 Apr 16. 2023

1. 뮤지컬 <비밀의 화원>의 줄거리

1950년대 영국 요크셔의 성 안토니오 보육원에서 살아가는 네 명의 아이 '에이미', '비글', '찰리', '데보라'의 이야기이다. 이곳에서는 반년에 한 번, 후원자들이 찾아와 입양할 아이를 물색하는 '오픈데이'가 열린다. 이 네 아이가 19살이 되던 해, 마지막 오픈데이를 하루 앞두고 이들은 설렘과 기대감보다는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낀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에이미'는 어릴 적부터 하고 놀던 '비밀 연극'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이들은 책 '비밀의 화원'의 등장인물이 되어 자신들의 마음 깊이 잔재하던 아픔을 드러내고 서로 위로하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게 된다. 비록 네 명 모두 뿔뿔이 흩어지지만 보육원에서의 추억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2. 드러내고, 비우고, 새로 채우기

"아무도 나한테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더 빨리 할 수 있었어"

뮤지컬 <비밀의 화원>의 비밀 연극에서 '찰리'가 맡은 '콜린'의 대사이다. '콜린'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의사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다리는 쓸 수 없고 몸 또한 매우 약하게 태어났다는 말과 겉뿐인 걱정과 염려를 들으며 자랐다. 그 탓에 10살까지 방 한 켠에 갇혀 살았고 매우 어린 나이임에도 항상 죽음과 허망함에 대해 생각하며 지냈다. 자신 또한 몸이 약한 탓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되뇌며. 그러던 중 집에 새로 들어온 '메리'가 '콜린'을 찾아내고, 그녀가 발견한 '비밀의 화원'에 '콜린'을 데려가게 된다. '콜린'은 '메리'에게 자신은 걸을 수 없고 봄도, 화원도 보러 갈 수 없다며 자책하며 '콜린'을 이루고 있던 말들에 대해 털어놓지만 '메리'는 되려 '할 수 있다'며 '콜린'을 격려한다. 그 덕인지 '콜린'은 화원을 보러 가겠다는 일말의 용기를 내고 화원에서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두 발을 땅에 딛고 직접 걸어서 화원을 만끽한다. 위의 문장은 '콜린'이 마침내 자신의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내뱉은 말이다.

비록 공연에서는 '콜린'이 자신의 역경을 이겨내는 장면을 짧게 보여줬지만 저 한 문장으로 나는 그 과정을 낱낱이 상상해 보게 되었다. 자신을 압박하고 둘러싸고 있던 말들을 내뱉고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그걸 '메리'에게 드러냄으로써 마음이 비워졌고 또 '메리'는 비워진 '콜린'의 마음속에 어떤 새로운 말들을 심어줬을지를 말이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포기하고 할 수 없었던 건 나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마음의 말들로 내가 할 수 없었던 일들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게 들어오는 모든 말을 마음에 심어놓지 않는다. 결국 이제는 누가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내면화가 되어버린 말들은 내가 잡아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또한 내 잘못이 아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그렇게 되어버린 나쁜 상황이었을 뿐이다. 내게 들어오는 수많은 말들 중 내가 붙잡아놓는 말들은 나의 불안과 걱정을 자극하는 말들이니 말이다. 어떻게 알고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말들이니까. 극 중 '콜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몸이 좋지 않은 건 누구보다 '콜린'이 제일 잘 알고 느끼고 있었을 것이니 누구보다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어쩌나. 그러던 와중 들려오는 '앞으로 다리를 못 쓰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어린 '콜린'이 마음에 새겨 넣기에 충분했을 테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 '콜린' 잘못이 아니듯 내가, 또 우리가 마음속에 나를 해치는 말들을 단단히 붙여놓은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일어나 버린, 이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찌해야 할까.

이 공연에서도 나왔듯 비워내고 새로운 말들로 채워야 한다. 안의 말들을 내뱉게 하고 새로운 말과 생각으로 그 안을 다시 채울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 그리고 그 과정. 이들이 필요하다. 이미 고착되어 버린 말들을 토해내고 떼내는 것이 쉬운 과정은 아니겠지만. 많이 고통스럽겠지만. 그래도 비워내고 새로운 것들을 채워야 한다.

'할 수 있다'고. '나는 남들이 심은 기준에 맞추느라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른척할 수 없다'고. '그냥 누군가 해냈듯 나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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