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는 냈지만, 날 보고 싶은건 결국 그대죠

그래. 할 수 있다. 안될 건 없으니까.

by 천유

"와줄 수 있겠어요?"

"꼭 한번 보고 싶었어요"

"언제가 돼도 상관없어요. 기다릴게요."


연애가 아니다. 면접을 보러 가서 혹은 보고 와서 들어본 이야기다. 이런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기한 일이다.





episode 01.

요리 전문 출판사 월간지 에디터



이력서. 쓰는 건 자신 있었다. 관련 직종에 이력서는 넣는데 레시피로 유명한 한 출판사가 요리 관련 월간지를 만들었고, 관련 에디터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회사도 걸어서 가도 30분 남짓, 가까운 거리였다. 미끼를 던지듯 이력서를 넣고, 입질이 오길 기다렸다.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긴 뒤라 될만한 게임을 했고, 게임 참가 후에는 여유가 생긴 때였다.


"000입니다. 지원하신 전형 통과되어 면접일정차 연락드렸습니다. 00일 0요일 00시 시간 괜찮으세요?"


"네, 가능합니다. 시간 맞춰서 늦지 않도록 도착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 당일이 되었고, 면접을 봤다. 내 앞에는 시범 런칭한 잡지가 한 권 놓였고,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면접 질문이 이어졌다.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 잡지를 들고 상황 재연까지 해가며. 요즘 신입도 그렇지만, 경력자라면 솔직하고 적극적인 의견 제시가 그 어떤 경력이나 스펙보다 매력이 있다.


"기존 <0000으로 00000>로 인지도가 높아서 저 또한 기대가 많이 됩니다. 너무 팬이라 제가 합격이 되든 안되든 두 가지 의견을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판형이 너무 큽니다. (A4 사이즈 정도) 레시피를 잡지 보듯이 보기도 하지만, 실제 요리를 하며 보고 따라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크면 걸리적 거립니다. 먼저 출간한 월간 <00000> 아시죠? 제가 그 잡지도 즐겨보는데, 딱 그 정도 사이즈가 적당합니다. 반 접어서 주방 한편에 놓고 흘깃흘깃 보면서 하기에 좋습니다.


두 번째로 000님 책이라고 할 정도로 000님에 대한 언급이 너무 많고, 레시피 의존도가 높네요. 한 명에게 해당 월이 아닌 월간지 자체가 매달린 느낌이고. 개인에게 100% 의존하는 것은 너무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있습니다."


결과? "합격"


그런데 집으로 가는데 전화가 왔다. 택시비를 줄 테니 택시를 타고 다시 와달라고. 너무나 흥미롭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나도 궁금해서 갔다. 우아하고 선해 보이는 안경을 쓴 대표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내가 지원한 파트 말고, 영업지원을 본인과 함께 직접 뛰자고 말했다. 연봉은 기본급 외 매달 월간지 판매 수익의 *%.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두 생략하고 당시 숫자에 약하고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 큰 기회를 버린다. 나는 너무 어렸다. 아.... 그 후에도 이런 어리석은 날이 많았다.)





episode 02.

명상 관련 비영리단체 홍보 전문 간사



세상의 가치, 삶의 가치는 저마다 다르다.


그 가치가 입사지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럴듯한'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신입 때의 마음가짐이었다면, 경력부터는 '내가 잘할 수 있을 일', '재미있어 보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급여는 조금 적어도 좋으니, '가치가 있거나 조금 몸이 편한 (충분한 내 시간이 보장되는)일'을 찾았다. 몸이 고되며 오래 일할 수 없는 저질체력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주 5일 근무와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양보할 수 없는 입사지원의 기준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한눈에도 독특해 보이는 회사가 한 곳 눈에 들어왔다. 명상 관련 비영리 단체인데 주 5일 근무, 6-9 출퇴근은 물론이거니와 12개월 중 10개월 근무, 2개월은 자기 계발이란다. (1개월이었나. 가물가물하네)


그런데 조금 걸리는 것이 연봉이 적어도 너무 적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중 2개월을 일을 안 한다고?) 그래도 연봉이 하ᆢ쫌 (뭐야 그래도 이렇게 휴가가 보장되는 회사가 어딨니???) 이렇게 갈팡질팡 하던 나는 결국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한번 가서 보고 얘기나 해보지 뭐, 어차피 떨어질 수도 있는 걸 뭘 앞서 고민해?'라는 마음이었다.

안국동? 경복궁역? 지하철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서니 한옥 한 채가 보였다. 들어서니 앞마당을 두고 ㄷ자 구조의 단층 본채가 보였다.


"들어오세요."


안내에 따라 들어가는데 웃으며 말한다.


"조금 있으면 한 분 더 오실 거예요. 얼굴을 보면 아실 만한 분이실 겁니다. 같이 보고 싶다고 하셔서 오시라고 했어요."


1:다수 면접인가? 정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먼저 면접을 보고 있는데, 후광이 비치는 너무나 태가 다른 아름다운 여자분이 들어와, 내 맞은편에 살포시 앉았다. 둥근 테이블에 면접관, 나, 그분. 이렇게 세분이 앉았다.

'어라, 진짜. 어디서 많이 봤는데. 봤는데.'


분명. 아는 얼굴인데 기억인 날듯 나지 않을 듯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면접을 그렇게 코로 본 것처럼 집중하지 못한 적도 처음이었다. 대놓고 "누구세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알만한 분이라는데 그것도 너무 실례되는 질문인 것 같고, 그걸 물어볼만한 자리도 아니고 해서 못 물어봤다. (아직 너무 아쉽다.) 흘깃흘깃 보는 시선을 느껴서 일까. 면접이 끝나고 그녀가 말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우연히 봤는데, 한 번 뵙고 싶어서 제가 부탁드렸어요."


'절요? 왜요? 어떤 점이? 영광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망할 놈의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아, 네"

"어떻게 오셨어요? 골목 안쪽이라 찾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지하철요. 회사가 지하철역과 가까워서 어렵지 않았어요."


"골목 앞까지 배웅해 드릴게요."라고 배웅까지 해준 그녀는 "잘 생각해보세요. 좋은 인연이 되어 꼭 다시 뵙고 싶어요. 오늘 반갑고 감사했어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딱 생각이 났다.


'아!! 000. 바보.'

결국 연봉이라는 삶의 족쇄가 너무나 무거워 나는 그녀와 다시 보지 못했다. 알만한 분이라고 했으니 내가 생각한 그녀가 맞으리라.


그렇지 않다고 한들 내가 보고 싶어서 알만한 분이 일부러 오셨다는 경험은 흔치 않으리라.





episode 03.

에스테틱 전문 화장품 홍보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믿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 역시 믿는다.


경험상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도 있지만, 열 번 찍고 문 두드리는 게 어렵지 않다면 해봐서 나쁠 것 없다. 그중 한 곳은 분명히 열리니까.

경력이 되고부터는 주식을 사듯 주로 내가 입고 쓰고, 눈에 익은 곳을 지원하는 일이 많아졌다. 한마디로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기업! (내 너희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리라! 아님 말고, 안 뽑음 너네 손해지. 이런 마음으로 ㅎㅎ)


지금은 내가 없이도 (당연히) 잘 성장한 기업인데, 당시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알았느냐. 피부과 에스테딕을 들락거리며 BB크림을 바르다가 알았다. 2006년 즈음은 BB크림이 한창 나오기 시작할, 정말 초창기였다. 사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BB크림은 피부과 레이저 시술을 받은 이들이 붉은 기를 감추려고 쓰는 병원 유통 화장품이었다.


채용공고를 볼 때마다 눈에 띄었다.

그래서? 지원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입사를 하고 다른 회사를 갔다. 아닌 것 같아 바로 퇴사했다. 구직을 하는데 또 채용공고가 눈에 띈다, 그래서? 또 지원한다. 그리고?또 떨어졌다.


해가 바뀌는 동안 보일 때마다 지원했다. 그렇게 지원할 때마다 꺽쇠를 활용해 이메일 제목을 썼다.


[이번에 벌써 0번째 지원] 경력_홍보_000


그러길 여러차례. 결국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지원하신 000입니다. 서류전형 통과하셔서 면접 일정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정말 000 꼭 들어가고 싶었거든요. (진짜였다. 자꾸 떨어지니 오기가 생겨서인지 정말 여기 가고 싶었다.)
저 벌써 n번째 지원하는 거였어요."

"(살짝 미소 짓는 소리)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꼭 한번 뵙고 싶어서요."


그런데 결국 못 갔다. 정말 운명처럼, 아니 운명의 장난처럼 진짜 가고 싶은 다른 회사랑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였고, 둘 중 어느 곳도 시간조정도 안된다고 했다. 눈물을 머금고 연락했다.


"죄송해요. 다른 면접 일정이 있어서
참석 힘듭니다."


나는 그렇게 웃기는 짬뽕, 실없는, 뻥쟁이가 되었다. 세상 일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포기한 보람이 있어 그날 면접을 본 다른 회사에 합격했고, 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은 오래도록 나의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굵직한 사건 외에도 흘러가는 얘기처럼, '지원서를 보고 어떤 분인지 뵙고 싶어서 불렀습니다'라는 얘기를 종종 자주 들었다. 비슷한 채용공고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정확한 파트가 없을 때는 역으로 없는 곳을 지원하기도 했고 면접을 봤다.


당연히 떨어진 곳도 많았다. 팬이 많고, 호가 많으면 그만큼 안티도 많고 불호가 많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치다. 아마 같은 이유로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일으켰겠지. "재수 없어." "지가 뭔데." "별것도 아닌 게 잘난 척은" (잘난 척 한 적은 없다. 내가 잘난 척을 꺼리는 이유는 철저한 이기심이다. 뒷장에서 새 주제로 다시 설명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면접을 보러 온 나의 팬이 되어준 회사 대표와 팀장들.


그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처음에는 독특함과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얘는 뭐지? 뭔가 다른거 같아. 흥미로운데??" 그리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다음에는 (잡동사니, 다양한 업종) "아니, 이걸 다 했다고? 우와! 대단한데? 다 시켜볼까?"라는 마음과 궁금증,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안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스펙으로.
안된다고 했다. 그 짧은 경력으로.
안된다고 했다. 나이가 있어서
안된다고 했다. 결혼을 했으니까
안된다고 했다. 지방에 사니까.


모두들 때때마다 안된다고, 이제는 힘들 거라고 했다. 정말 이제는 힘들어 거야. 쉽지 않아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눈을 높이지도 않았지만, 눈을 낮추지도 않았다. 그냥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해오고 봐 왔던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 줄 것이라는, 인연이 있는 곳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됐다."


그래. 할 수 있다. 반드시.
안될 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