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아버님이 건강검진에서 대장에 여전히 용종이 많다는 진단을 받으셨다. 10년 전 즈음 대장암 초기 확진에 수술을 하셨고, 그 뒤 몇 년 뒤 완치판정을 받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매년 검진에서 매번 수 없이 많은 용종이 생겨 떼어냈다는 이야길 듣고 있는 거다.
- 어떻게 이 양반은 올 때마다 용종이 많아요?
하나도 안 생기는 사람도 있는데, 참 신기하고 불안한 일이다. 지인의 어머니가 답답함에 의사에게 물었다.
- 밭이 원래도 기름진데 자꾸 거름을 주니까 작물이 자꾸 생길 수밖에요.
타고난 체질도 안팎에 유분이 많고, 종기도 잘 생기는데, 육류 위주의 식습관이 이를 부추긴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고기를 좋아하는 걸, 어떡해 라고 어머님은 볼멘소리를 하셨다.
채소반찬 여러 개가 있어도 고기가 없으면 ‘뭘 먹으라고!’ 역정을 내시는 아버님을 나도 본 적이 있다. 단 한 그릇이 상 위에 놓여도 그게 고기라면 “잘 먹었다”고 천진하게 짓는 미소도 보았다.
같은 고기가 물리지도 않으시는지 매일 아침, 저녁 일주일을 먹어도 맛있다고 하시는 못 말리는 미트러버셨다.
어디선가 영양만점이라고 오리알을 얻게 돼 전해드렸을 때도 몸에 좋은 거라며 잘 드시던 분이셨고, 고기라면 비린 맛도 못 느끼시는 완전한 사랑, 무조건적인 고기 외길 취향을 가진 분이셨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지인의 아버님과 같은 분들이 많이 계신다.
소문난 효녀였던 지인의 누나는 콩고기를 샀다.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지방, 콜레스테롤 함유량도 적다는 콩고기! 심지어 육고기의 단점인 식이섬유마저 함유하고 있단다. 대장 질환자에게 이보다 좋은 대체식품이 있을까 싶었다.
고기의 식감과도 비슷해 콩고기가 베지터리안과 비건 식단을 선호하는 이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는 이야긴 익히 들었는데 실물로 본 건 처음이었다. 커다란 츄파춥스 통에 옮겨 담은 콩고기의 생김새는 뭐랄까. 바삭바삭 동그란 어포? 그 정도 사이즈에, 딱 그 정도 비주얼이었다.
그걸 마늘, 간장, 고추장, 파 등을 넣고 조리한 콩고기 제육볶음은 얼핏 그럴 듯해 보였다.
과연 그 맛은? 조리를 주도한 지인의 누나 표정이 영 그렇다. 미간에 살짝 잡힌 주름이 그 증거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불현듯 스친다.
- 어때, 어때요? 비슷해? 진짜 제육볶음 같아?
- 음, 한번 먹어봐.
- 나도 한번 먹어보자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후라이팬에서 세 명의 여인이 한 젓가락씩 고기를 건져 긴장한 혀 위에 올려놓았다. 조리가 잘못된 걸까? 제품을 잘못 산걸까? 다른 브랜드를 다시 사봐야 하는 걸까? 유부를 몇 겹을 뭉쳐 고추장에 볶은 그런 느낌? 이대로는 실패다. 진짜 고기랑은 다르다.
- 아, 몰라몰라. 그냥 올려봐.
- 그래, 어쩜 모를지도 몰라.
- 에이, 설마 이렇게 티나는 걸?
어차피 배꼽시계가 예민한 오늘의 주인공을 위해 새로 요리하긴 글렀다. 다들 모르쇠로 일관하고 조용히 밥상에 앉았다. 그의 효자 아들들까지 모두 공범이다. 단지 그들은 오늘 문제의 제육에 손도 대지 않는다.
드디어 그가 첫 젓가락을 들었다. 타깃은 너무도 뻔하게 제육의 탈을 쓴 콩고기다.
두근두근.
어라? 그가 아무 말 없이 두 번째 젓가락질로 콩고기를 선택했다. 고기를 먹는데, 고기맛이 나지요, 라는 의연한 표정(?)을 한 그가 그날의 식사를 마쳤다. 세 명의 여인은 다시 주방에 모였다.
- 뭐지? 왜 아무 말도 없으시지?
- 그냥 고기가 좀 질기다고 생각하는 건가?
- 그치, 고기는 질겨도 고기니까.
대단한 플라시보 효과이고, 원효대사의 해골물 같은 깨우침이다. 고기라는 믿음이 굳건하니, 뇌와 미뢰는 콩을 고기라고 믿게 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늘의 밥시간이 이렇게 순순히 흘러갔을리 없었다.
그 후로도 아직 잘 드세요?라고 물으면 응, 잘 먹어,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걸 그렇게 모르실까? 라고 되물으면 고기도 부위는 워낙 다양하니까 그런 줄 아나봐. 고기만 주면 까다롭지는 않은 양반이니까, 라는 나름의 분석이 덧붙여졌다.
콩고기가 중심이 된 비건 시장은 날마다 커지고 있다. 콩고기도 점점 더 맛있게 개발되어 새로이 출시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대체식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콩 돼지고기, 콩 소고기, 콩 닭고기에 이어 게살이 없는 게살요리, 연어가 없는 연어 샐러드가 이미 판매 중이다. 일본은 이미 2019년에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성게알도 만들었다.
국내 시장의 흐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기업도 시장에 진입하며 새로운 제품을 다양하게 개발, 출시해 일반 소비자도 마트에서 쉽게 대체 식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2019년에서 2020년 출시된 국내 식물성 식품을 살펴보면 이미 오뚜기가 ‘소이마요’라는 소스류를, 동원F&B와 롯데푸드가 각각 ‘비욘드미트’, ‘제로미트’라는 대체육 제품을 출시했다. 이후 미라클버거(패티), 나뚜루(빙과), 두부면 등을 출시했다.
기타 많은 제품이 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더 좋은 맛, 대체육 이상의 그 자체로 좋은 맛과 풍미, 영양성분을 살린 제품이 개발, 마트에 진열되고 있다.
최근 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비건 빵, 비건 요거트, 비건 치즈, 비건 쿠키 등이 젊은 층에서부터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다. 밀가루와 계란 등 유제품을 쓰지 않았다는 비건 디저트의 맛에 대한 의혹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비건 = 건강하고 맛있는’이란 공식이 생긴 듯 수요가 많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글루텐 알러지, 혹은 밀가루를 기피하는 사람들로 인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진 탓이다. 동물성 제품에 대한 회의감도 비건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중심축이다. 콜라겐조차도 식물성 콜라겐 제품이 출시되고 있으니까.
시장 초반에는 외면을 받았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대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됐다. 꼭 고기를 먹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중 일부 오로지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탐미, 맛으로 선택한 고기를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경우 몸에도 좋고 더 맛있는 걸 두고, 굳이 고기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고기를 완전히 끊지는 못해도, 횟수와 양이 줄이는 데는 대체 식품의 발전이 한몫했을 것이다.
업계의 노력으로 다양해진 먹거리로 소비자의 선택권이 강화된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트렌드는 한쪽 시장을 죽이고, 한쪽 시장을 키우는 쪽으로 치우쳐지기 십상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다이어터, 채식주의자, 비건인의 먹거리 중심에는 두유, 두부가 있다. 원재료가 콩이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콩은 옥수수, 면화와 함께 표토를 파괴해 사막화시키는 대표적인 작물이다.
표토는 보통 약 5~30cm 정도의 토양, 지구의 피부, 껍질과 같은 지층을 말하는데, 식물 등 생물들에 영양소를 공급하고 물과 탄소를 저장한다. 그런데 어떤 작물은 종의 특성상 많은 수분과 영양분을 토양으로 빨아들인다. 이런 작물이 장기간 경작되면 토양의 사막화를 촉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규모 집약적 경작이 이뤄지면 다른 작물 역시 지구의 표토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콩 역시 여기에 해당된다. 사실 콩은 질소 고정 작물이라 사막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사막화 작물로 첫째, 둘째가 된 이유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집약적으로 대량 재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콩, 특히 대두는 사료, 비건, 기름 등 생산에 다양하게 활용되며 세계적으로 수요가 가장 많은 작물 중 하나다. 어떤 산업도 소비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급격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콩은 대규모 집약적으로 재배되며 사막화 작물로 꼽히게 됐다. 특히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은 콩 재배를 위해 개간되기도 했다.
옥수수와 대두는 대표적인 유전자 변형(GM) 작물이기도 하다. 과도한 게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됐다.
동물도 식물도 균형과 순환이 중요하다.
다양한 종이 서로 부족한 부분, 모자란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 공생, 밀고 당겨야 생태계의 균형이 맞고, 식물도 다양한 종이 교차, 순환되어 재배되어야 지구도 숨을 쉴 수 있다. 하나를 때려잡으면 다른 한쪽이 비성장적으로 증식되고, 비대한 증식은 다른 쪽을 다시 죽인다. 결국 모두 죽는다.
뭐든지 골고루 먹어, 라는 말을 아이에게 할 게 아니다. 뭐든 적당해야지, 라는 말도 아이에게만 할 게 아니다. 어른이 아이의 말을 함께 배워야 한다. 우린 지금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가며 다시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