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빗방울이 뚝뚝뚝뚝 떨어지는 날에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엄마 찾아 음매 아빠 찾아 음매 울상을 짓다가
- 아기 염소! 울지 마!!
깊은 밤, 아이의 절규가 온 방에 울려퍼진다. 오늘 밤도 글렀다.
‘도전, 동요 100곡’을 매일 부르던 때가 있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나란히 누워 자장가를 불러주던 천사 엄마 시절의 이야기다. 아이를 재우려고 부른 노래인데 가사를 음미하는 아이는 매일 밤 엄마 노래 감상에 쉽게 잠들지 않았다.
특히 <아기 염소>를 부르면 꼭 ‘엄마 찾아 음매 아빠 찾아 음매 울상을 짓다가’에서 벌떡 일어나 “아기 염소, 울지 마!”라며 소리쳤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해가 번쩍 곧게 피어나면 너무나 기다렸나봐, 홀짝홀짝 콩콩콩 흔들흔들 콩콩콩 신나는 아기 염소들”을 이어 불렀다. “아기 염소 이제 신난대”라며 토닥토닥 하면 아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자리에 다시 누웠다.
어린 것은 늘 어린 것들에 측은지심을 느꼈다. 하긴 전쟁에도 애들과 노인은 살려둔다는데, 주방이란 전쟁터에선 어린 것들이 고급 요리에 자주 쓰인다.
비텔로 토나토 (Vitello Tonnato), 비엘 에스칼로프 (Veal Escalope), 비엘 블랑케트 (Blanquette de Veau) 아, 이름도 어려운 송아지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린 송아지를 도축해야 한다. 매우 어린 나이에 엄마 젖만 먹고 자란 송아지는 고급 요리가 되기 위해어려서부터 근육이 발달되지 않도록 활동을 제한해서 키운다.
양꼬치, 양갈비, 양대창 등 국내에서 양고기 수요도 많아졌는데, 이국에선 어린 양 요리는 오래 전부터 고급 요리로 각광받아왔다. 로스트 램 (Roast Lamb), 램 커틀렛 (Lamb Cutlet). 사람의 표현으로 하자면 엄마 젖도 안 뗀 어린 양들(Baby Lamb, Spring Lamb)이 주방에 가야 한다.
문제의 어린 염소 요리도 있다. 로스트 키드 (Roast Kid), 키드 렉 (Kid Rack). 모두 요리 이름부터 kid다. 역시 어린 나이에 도축장에 끌려와 식탁 위에선 “고기가 부드럽고 풍미가 좋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어린 돼지 요리는 부르는 명칭도 따로 있다. 돼지 유산자(Suckling Pig), 아직 모유를 떼지 않은 돼지를 도축한 요리로는 대표적으로 코치니요 아사도 (Cochinillo Asado), 레촌 (Lechon)이 있다.
닭도 노계보단 영계가 연하고 맛있다는 게 일반적이다.
어리고 활동량이 작으니 육질이 부드럽고, 누린내가 안 나서 슬픈 짐승의 새끼들, 젖도 빨리 떼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 송아지는 태어난 후 6개월이 지나야 젖을 뗀다. 하지만 축산환경에서는 3개월가량 되면 어미와 분리를 시키고 사료를 먹인다. 송아지의 빠른 성장, 사료 효율성, 육질 및 어미 소의 다음 번식 및 다른 작업에 투입하기 위해서다. 인간과 같은 포유류인 소도 단유를 하면 육아가 아닌, 임신이 가능한 몸으로 돌아선다.
인간과 포유류는 모든 면에서 유사하다. 억지로 떼어내면 어미, 송아지 모두 스트레스를 받는다. 송아지를 키우는 이는 엄마 소는 엄마 소대로, 아기 소는 아기 소 대로 며칠을 목이 쉬도록 운다고 한다. 구슬프게 목이 터져라 오래오래 우는 이유가 더 많은 고기를 원하는 인간의 욕심 때문인 것이다.
소만 그런 게 아니다. 돼지, 말, 염소도 번식 주기를 당기기 위해서,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육질을 위해 젖을 강제로 떼고 사료를 먹인다. 엄마 품이 그리운 어린 것을 떼어내는 일, 모성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모질게 끊어내는 일이 모든 인간에게 경제적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싸의 외침이 들린다. “나도 내 아기를 안아보고 싶어.”
동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인간의 음식(고기)와 되고, 강제 임신을 하고, 생이별을 해야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내 앞에 놓은 고기를 두고 육질과 풍미를 음미하기 전, 식탁에 오르기 전 그들이 겪어야 했을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한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임신기간과 도축되는 시기도 비교해 봤다. 품종, 건강 상태, 환경 등에 따라 다르지만 양의 임신 기간은 평균 150일 전후임을 감안하면, 베이비 램은 생후 6~10주 사이의 어린양은 그야말로 핏덩이다.
엄마 배에 있던 시간이 어린양이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셈이다. 양고기는 지방질과 피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강한 호불호의 원인인데, 어린양은 냄새가 덜하고 육질이 부드럽다고 미식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윤리적으로도 가슴이 뜨끔한 일이지만 인위적인 번식을 이처럼 적극 강요하니, 매순간 곱절로 늘어나는 동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 수생태계 악화 등 환경오염도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매년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증가로 억지스레 살을 뺄 거라면 애초에 덜 먹고,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순간의 미각, 포만감, 기분을 내기 위한 대가가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너무 가혹하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게 아니다, 라는 평소 생각이 갑자기 이번 챕터에서 스쳤다. 먹어본 적이 없는 요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이 많았다. 괜히 이론만 늘어놓고 아는 척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해도 되는 이야기다. 이건 맛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의 생애와 고통에 관한 부분이었다. 당연히 쓸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나는 갑자기 먹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했던 걸까. 의문스러웠다.
떠오른 생각, 쓰고 있는 이야기를 곰곰이 짚어보니 조심스럽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생명에 관한 문제이고, 윤리에 관한 문제이지만 아무리 에둘러 조심스레 이야기해도 아직 공감에 이르지 못한 이들,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채찍질하는 듯한 글이란 걸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극단과 극단에선 자기방어 기제에 반발심이 일어난다.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핀잔을 들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글을 쓴 목적 자체가 더 흐려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하나의 공감을 얻기 위함인데, 세 개의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면 이건 무용한 글이 아니라, 불용한 글이 아닌가.
그래서 유독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더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면서도 생각의 흐름은 짚어볼 수 있는 모든 영역을 두드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건 ‘어린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조금 덜 씹고 맛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그래서 얼마나 맛있는 지, 어떻게 생겼는지, 키워보지도 않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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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도 못하는 요리에 대해서
1. 송아지 요리 (Veal)
- 비텔로 토나토 (Vitello Tonnato):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송아지 요리로, 차가운 송아지 고기에 참치소스를 얹어 먹는 음식입니다.
- 비엘 에스칼로프 (Veal Escalope): 얇게 썬 송아지 고기를 튀기거나 구워 먹는 요리입니다.
- 비엘 블랑케트 (Blanquette de Veau): 프랑스식 송아지 고기 스튜로, 고기를 부드럽게 익혀 크리미한 소스와 함께 먹습니다.
2. 어린 양 요리 (Lamb)
- 로스트 램 (Roast Lamb):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어린 양고기 요리로, 구운 양고기가 대표적입니다.
- 램 커틀렛 (Lamb Cutlet): 어린 양의 갈비 부위를 이용해 굽거나 튀긴 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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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령별 양 구분
베이비 램(BABY LAMB): 생후 6~10주 사이의 어린양
스프링 램(SPRING LAMB): 생후 4개월~6개월 전후의 어린 양
램(LAMB): 생후 1년 미만
호깃(HOGGET): 생후 1년~1년 7개월 미만
머튼(MUTTON): 생후 1년 7개월 이상의 성체
3. 돼지 유산자 (Suckling Pig)
- 코치니요 아사도 (Cochinillo Asado): 스페인의 전통 요리로, 어린 돼지를 통째로 구운 음식입니다.
- 레촌 (Lechon): 필리핀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명한 돼지를 통째로 구워 만드는 요리입니다.
4. 새끼 염소 (Kid Goat)
- 로스트 키드 (Roast Kid): 어린 염소를 구워내는 요리로, 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지에서 즐겨 먹습니다.
- 키드 렉 (Kid Rack): 어린 염소의 갈비를 이용한 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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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에 따라 다소간의 개월수, 주수의 차이는 있음을 명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