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은 그 시절에만 머무른다
스산한 바람이 분다. 이러한 계절이 오면 생각나는 이가 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나... 생각하게 했던 그 사랑이 저물고 나면 우리는 성숙해진다. 이따금 그 사랑을 애도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다만, 고맙고 미안했고 사랑했을 뿐.
내가 가장 흔들렸던 시기에
너를 만나서 나는 참 행복했다
동시에 너무도 불안했다
흔들리던 시기에 있어준 너를
또 한번 추억하는 겨울이 왔다
너를 만났던 계절, 그 달이 왔다
기묘하게도 가끔 생각한다
너와 끝까지 함께했다면 어땠을까
우습게도 전혀 그려지질 않는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에게
그 미래따윈 애초에 없었던 건지도
나는 잘 살아
너도 행복해
스치는 길에 마주한대도
우리, 스치듯 지나가자
돌아서 울자
그러고는 모른 척 잊자
이따금 추억하자, 우리
가끔의 추억 속에서
그날들의 춤을 추자
가끔, 그가 몹시도 그리운 날이 있다. 서글프게도 지금의 그가 그리운 게 아니다. 내가 몹시도 사랑했던 그 시절의 그가 몹시도 그리운 것이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고, 돌아올 수 없기에 더 애틋하다. 과거의 그는 앞으로 영영 더 미화될 것이나 지금의 그를 찾게 되진 않을 것이다.
나는 변했고, 그 역시도 변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그가 너무도 필요했고, 이렇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열렬했다. 모든 게 불확실해서 흔들리던 시절이었다. 그의 단단한 마음과 믿음 덕분에 나는 안정을 찾았다. 그로부터 안정을 배웠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과 같은 바윗돌 같은 사람이어서 언제고 돌아가 안길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준 첫번째 사람이었다. 변치 않는 마음이, 올곧은 신념이 좋았으나, 그 이면에는 역시 감내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때에 나는 어렸고 지금의 나는 그때보단 컸다.
그 시절에 보이지 않았던,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그의 사랑을 이따금 느낀다. 가끔씩 떠오르는 추억 속에서, 그가 줬던 선물들 속에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느껴질 때가 있다. 생각보다 더 깊은 사람이었단 걸 기억한다. 동시에 여전히 느낀다. 다시 돌아간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걸.
그와 함께 라라랜드를 본 적이 있었다. 자동차 극장에서 보고 빠져나오던 길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라디오로 듣고 있었는데, 극장을 벗어나와 도로를 한창 달릴 때까지 그 라디오는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노을 진 하늘이 점차로 어둑해져가고, 도시의 불빛은 찬란하고, 우리는 그 하늘 아래서 감미로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 순간 행복하면서 동시에 기이했다.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행복하던 순간에도 이따금 그와 평생 함께할 수 없을 거 같단 직감 아닌 직감을 느꼈다. 그 직감에서 벗어나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들이 꽤 길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미련 한 톨 남을 것 없을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다 했다. 그리하여 사랑한다가 사랑했다가 된 순간, 나는 몹시도 슬펐다.
여전히 나는 그 시절의 그를 사랑한다. 어쩌면 그는 영원히 내 마음 속에 시절연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따금 그리울 것이다. 그 덕분에 참 많이 컸다. 그에게 배운 게 참 많다. 그도 나와의 연으로 인하여 좋았던 것들이 남아 있길 때론 바라고, 때론 그 역시 욕심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연은 끊어졌고, 이제 우리는 남이 되었으니까. 다만 날이 추워지니 복잡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행복하길,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웃으며 살아가기를, 추운 날 따스하게 지내기를, 그렇게 내가 모르는 시간 동안 정말 멋있게 늙어가기를. 멀리 떨어져 있는 자의 마음으로 바란다. 나 역시 잘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