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예요!

한가위를 보내는 아이들

by 코알라

오늘 나들이 길은 양손이 무겁다. 마을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명절 선물을 돌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매년 명절 때면 터전 근처의 마을마다 작은 선물도 드리고, 세배도 해왔다. 매일 나들이로 온 마을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이라 시끄럽고 조금은 말썽도 피워서 잘 봐주십사 하는 인사다. 하지만 나들이길에서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도 잘 받아주시고, 가끔 먹을 것도 나눠주셔서 이런 때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본량은 시골이라서 젊은 분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시다. 그래서 경로당으로 바로 찾아가면 되니 그리 번거로운 일도 아니다. 그냥 선물만 드리고 오기 뭐해서 ‘달 달 무슨 달’ 노래도 부르고, 절도 하고 온다. 그러면 뭘 이런 걸 들고 오냐며 아이들 손도 잡아주시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며 매우 예뻐해 주신다. 우리 아이들 또래의 손주들도 있으실 터라 곧 있으면 만날 손주들 생각에 또 아이들이 마냥 이쁘기도 하신 듯하다.


모시송편

추석이 가까워 오면 나들이 가는 길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느 마을에 모싯잎이 많은 지 찾는 일이다. 모싯잎을 찾으면 잎이 벌레 먹지는 않았는지, 이파리가 넓적해서 꽤 쓸만한지도 꼼꼼히 살펴본다. 이렇게 찾은 모싯잎을 날을 잡아 뜯으러 간다. 아이들은 봄에 쑥을 뜯던 가위를 챙기고, 교사는 모싯잎을 들고 올 소쿠리며 손수레를 챙긴다. 터전 뒷산에 있는 모싯잎은 언제든 뜯을 수 있으니 마을에서 찾은 모싯잎을 먼저 뜯으러 간다. 매년 이렇게 모싯잎을 뜯어 송편을 빚고 있다 보니 6살, 7살 아이들은 이제 모싯잎쯤은 구별할 줄 안다. 큰아이들이 모시풀 줄기를 가위로 잘라내면 작은 아이들이 줄기에 달린 잎들을 뜯어낸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모두 먹으려면 많은 양을 뜯어야 하는지라 한참을 뜯어야 하는데 처음에만 조금 뜯고는 자기들끼리 어울려 노느라 바쁜 아이들도 있다. 그러다 보면 하는 애들만 하고 있어 그럴 땐 모두가 공평하게 일을 하도록 ‘모싯잎을 뜯지 않으면 송편을 주지 않겠노라’고 살짝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게 말해도 속없는 아이들은 ‘안 먹을 거예요’ 하며 가버리는데 큰아이들은 그래도 조금 철이 들어 다시 와서 일손을 거든다. 그렇게 잎을 뜯고 나면 수레를 미는 일도 돕는다. 어른에게는 노동인 일이 아이들에겐 놀이처럼 보이는지 서로 끌겠다고 하는 통에 교사는 아이들이 싸우기 전 순서를 매겨준다. 수레의 중심을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아이들은 한 번도 수레를 엎지 않고 터전까지 잘도 끌고 간다. 동생들도 매우 끌고 싶은 마음이지만 언젠가 자신이 형님이 될 때를 기다리며 뒤를 졸졸 따른다.


모싯잎을 뜯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송편을 빚는 일이다. 한가위가 가까워오면 송편을 어떻게 빚을 것인지, 얼마나 빚을 것인지 자주 이야기한다.


“동글동글 둥글려, 조몰락조몰락 굴파고~”


아이들과 손 모양도 흉내 내며 송편 빚는 얘기를 몇 번 하고 나면 실제로 송편을 빚을 때 주문처럼 옹알옹알 말과 행동을 맞춘다. 송편에 넣을 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하고 고소한 깨설탕으로 듬뿍 준비해둔다. 아직 손의 협응 능력이 부족해 아이들은 소를 자꾸 흘려서 교사가 조금씩 도와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예쁜 반달 모양으로 잘 빚던 아이들이 차츰 모양이 우주선이 되고, 별이 되기도 한다. 옆구리가 터져 소가 다 빠져나온 송편들은 교사가 다시 꾹꾹 눌러 맛있는 깨설탕이 전부 흘러버리지 않게 잘 봉합을 한다. 서너 개 만들고 나면 작은 아이들부터 슬슬 흥미를 잃고 손을 씻고 다른 놀이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큰아이들은 반죽이 다 떨어지고 나도 더 만들고 싶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않는다. 슬슬 마무리를 하며 교사가 어질러진 책상을 치우는 동안 아쉬운 아이들은 떨어진 깨설탕을 손가락으로 찍어먹으며 맛있다고 매우 좋아한다. 치우는 게 무엇이 중요한가. 함박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치우던 손을 멈추고 아이들과 따라 웃는다. 부엌에서는 아이들이 미리 따다 놓은 솔잎을 깔고 맛단지 교사가 맛있게 송편을 쪄낸다. 터전에 온통 고소한 냄새가 난다. 다 쪄진 송편을 들고 자리에 와서 아이들마다 나눠주면 다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송편을 먹는다. 교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옆구리 터진 송편조차도 소가 다 빠져 맹맹한 찹쌀떡 맛만 나는 그것을 아이들은 그마저도 행복하게 웃으며 잘 먹는다. 요즘은 집에서 송편 빚는 집이 드물어 송편을 많이 만든 날은 각자 집에 한 두 개씩 싸주기도 한다. 집에 도착해 가방부터 열어 보이며 의기양양해질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송편을 빚다 보니 어릴 적 기억이 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추석이라는 단어에 본래의 의미처럼 겹쳐 떠오른다. 송편을 잘 빚으니 예쁜 딸을 낳을 것이라느니, 엄마가 송편을 잘 빚어서 내가 이렇게 예쁘다느니 하던 이야기들까지 생생히 기억이 난다. 지금은 우리 집도 송편을 빚지 않은지가 꽤 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인 명절날 가장 명절다운 음식은 바로 송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사람의 수고로움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두 함께 만드는 음식이니까 말이다. 명절이라는 의미가 조금씩 퇴색해져 가는 요즈음이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사는 이야기도 나누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갖길 소망해본다.


이전 08화바지를 적시는 이슬처럼 가을이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