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담근 김치는 매워도 안 매워!

김장을 담그고 동지를 지내는 일

by 코알라

겨울은 추워야 맛이다. 춥지 않으면 왠지 시시하다. 눈도 안 오고, 얼음도 얼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그래서 많이 시시한 겨울이었다. 올해는 어떤 겨울이 될지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니 조금 기대가 된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목도리를 짠다. 준비물이 썩 많이 필요하지 않다. 실과 내 손가락만 있으면 된다. 손가락에 실을 감아 한 코씩 빼고, 다시 감았다 빼고를 반복하면 어느새 목에 두를 만큼 길게 뜨개질이 완성된다. 간단하고 금방 끝나는 일이라 추운 겨울 동안 교실에서 노는 시간에 목도리를 만드는 아이들이 많다. 맨 처음 뜨는 것은 내 것이고, 두 번째로 뜨는 것은 동생들 것이고, 세 번째로 뜨는 것은 엄마, 아빠 것이다. 무얼 만들기만 하면 뭐든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규칙이다. 아직 손뜨개질을 할 수 없는 동생들 것을 다 만들어야 집에 있는 엄마, 아빠 것도 만들어 드릴 수 있다고 해야 그나마 목도리가 공평하게 모두에게 돌아간다. 따뜻한 목도리 덕분에 겨울을 맞닥뜨릴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김장 대작전

겨울을 맞이하는 진짜 준비는 사실 김장이다. 김장이 가까워져 오면 햇살가득은 매일이 분주하다. 부지런히 마늘도 까고, 양파도 까고, 길 가다가 갓이 자라고 있으면 꺾어오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김장을 준비한다. 김장은 우리 터전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이다. 전 조합원이 3일에 걸쳐 김장을 한다. 배추를 갈라 염장하는 날, 배추를 뒤집고 물 빼고 양념거리 준비하는 날, 마지막에 양념을 버무리는 날을 잡아서 정해놓은 3일 중 하루는 꼭 참석을 해야 하는 의무사항이다. 1년 내내 아이들이 먹을 김치를 만드는 날이니 빠지면 아이들이 되려 섭섭하다. 우리 엄마, 아빠가 만들었다는 자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김장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배추를 나르고, 양념거리를 준비하는 일이 바로 아이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일은 마늘 까기다. 많을 땐 200포기도 했던 터라 까야하는 마늘이 어마어마하다. 교사들이 틈틈이 까고 있지만 아이들이 같이 해주지 않으면 그마저도 속도가 붙지 않는다. 작은 고사리손들이지만 함께 하면 금방 끝이 나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더러는 양파도 같이 까는데 마늘보다는 난이도가 있어 오래 하지는 못한다. 그렇게 양념거리가 준비가 되면 아이들과 배추를 뽑으러 가야 하는데 양이 많아 배추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행히 동네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분들을 알음알음으로 만나서 대량으로 구매를 하는데 어린이집이라고 하면 배추를 덤으로 더 많이 주셔서 항상 계획했던 것보다 김장의 규모가 커지기 일쑤다. 그럴 땐 아이들이 집에 갈 때 알배추 하나씩 챙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가져간 배추는 무엇을 해놔도 잘 먹는 아이들 반찬이 된다. 배추를 뽑는 일은 주로 7살 아이들과 한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라 7살 아이들을 한껏 추켜세워줄 수 있어 일부러 함께 한다. 배추를 뽑아 오면 트럭에서 내려 배추를 나르고 쌓는 일은 작은 아이들도 함께 한다. 배추가 하도 커서 아이들만 한데도 그것을 낑낑거리며 들고 나른다. ‘아이고, 힘도 세네~’하는 교사들의 추임새는 아이들을 슈퍼맨으로 만들 수도 있다.

김장을 할 땐 배추 몇 포기를 남겨놓는다. 그것으로 우리 아이들도 김치를 버무려보게 하기 위해서다. 점심 먹기 직전 7살 아이들에게 한 포기씩 주며 양념을 발라보게 하는데 그것을 하는 아이도, 그것을 보고 있는 아이들도 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완전하게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서 먹어보는 김치는 최고의 맛이다. 1년 중 김치를 가장 많이 먹는 날이기도 한데, 돼지수육을 삶아 함께 곁들여서 먹으면 아이들은 돼지고기가 다 떨어져야지만 숟가락을 놓을 만큼 매우 잘 먹는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아이들은 김치 한 조각 먹고 얼굴이 빨개져 한참 동안 씁씁거린다. 그러면 매운 김치쯤은 아무것도 아닌 7살 형님들은 옆에서 그런 동생들을 보며 ‘얼른 밥 먹어~’ 하며 김치 먹는 팁을 살짝 알려준다. 매운 김치에는 물보다는 따순 밥이 더 진정이 빨리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잘 삭은 김치도 맛있지만 막 버무려 신선한 양념 맛이 강한 김치도 그에 못지않게 맛있는 것을 알아 가끔 ‘김장김치 먹고 싶다’는 진정한 미각의 소유자가 나오기도 한다. 교사가 가끔 “너희는 어쩜 그렇게 매운 것도 잘 먹니?” 하면, “매운데, 안 매워요.”라는 아주 철학적인 답을 내놓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매운 것도 참 잘 먹는다.

가끔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부모들 이야기에 안타까울 때가 있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햇살가득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매일 뛰어놀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은 때가 없고,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경험해보기 때문에 음식이란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크다. 우리 아이들이 밥을 매우 잘 먹는 이유이다. 밥을 잘 먹기를 원한다면 아이들이 배가 고픈 걸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고, 음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을 느끼도록 경험하게 해 주며, 음식을 조리된 결과물로만 마주하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과정, 즉 모든 과정의 노동을 함께 경험한다면 음식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먹는 것은 귀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얼마 있으면 동지가 다가온다. 옛날에는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하며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밤이 가장 길기도 하지만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함께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햇살가득에서는 동지가 가장 큰 명절이다. 온 조합원이 모여서 1년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지켜보고, 부모들도 함께 성장하느라 고생했다 서로 다독여주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만들어 먹으며 동지제를 지낸다. 밥을 함께 먹는 이들을 식구라고 한다. 동짓날 함께 밥을 먹으며 조합원들은 모두 같은 식구임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는 아주 힘든 일을 서로가 함께 하기 때문에 의미 있고 즐거울 수 있다고 새삼 느끼게 된다. 동지제가 있어서 공동육아는 계속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