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무기가 될 때
나는 그 사람이 좋았다. 어른스러워서 좋았고, 새로움에 매몰되지 않아 좋았고, 한결같아 좋았고, 진중해서 좋았다. 그러니까, 나와 달라서 좋았다. 철썩같이 좋고 말았다.
말은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다. 나의 달라서 좋다는 말은, 그 사람 입에서는 달라서 싫다는 말로 번역되었다. 어른스럽지 못해서 싫고, 자극을 쫓는 것 같아 불안하고, 변화무쌍해서 어렵고, 너에게 가벼운 관계일까 무서워.
그와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나는 모국어로 말하는데 그에게는 외국어였다. 그가 살아온 세계는 내게 타국이었다. 결코 여행하는 기분으로 도착한 게 아니었는데. 나는 여기 발을 묶고 싶었는데. 그의 세계는 너무나 습하고 두터워서, 속속들이 이끼가 피어났다.
가방 맨 밑에 숨기듯이 깔아둔 모국어들. 어딘가 엉성하고, 나사가 풀려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던 말들. 낯선 세계에 들어가려고 급하게 풀어헤쳤더니, 들이마시던 그의 목에 턱 하고 걸렸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외국어인 거 아는데, 너무 아파서 못 넘기겠어.
나는 부끄러워졌다. 뾰족한 부분은 뽁뽁이로 둘둘 감아서 넣을걸. 신중하게, 그것도 아니면 아예 꺼내지 말걸. 한참을 자책하다가, 나는 내 짐이 뾰족한 줄도 몰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하는 이들은 왜 기꺼이 서로의 짐을 내보일까. 분명 누군가는 실망하고, 실망시킨 누군가는 아파할 텐데. 어떻게 기꺼이 서로에게 투항하고, 마음들을 끌어안을까. 기꺼이가 어떻게 가능한 걸까. 나는 아직도 기꺼이가 무섭다. 내 짐에 뭐가 든지 나도 몰라서, 꽁꽁 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