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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었으니 이해해달라구요?

서브웨이 매장에서 꼰대된 썰

by 페트라


※ 이 글은 전작 ‘꼰대의 탄생’ 두 편 중 한 편이 주소를 잘못 찾아들어 저의 브런치북 발행 일정이 꼬인 김에 번외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미 출시된 지 오래됐지만, 남녀노소 불문하고 좋아하는 패스트 푸드 중에 ‘SUBWAY’가 있습니다.

저희 가족도 수시로 시켜 먹기도 하지요.

비록 패스트 푸드일지라도, 채소가 많이 들어 있어 왠지 죄책감을 중화시키는 음식이지요.




며칠 전 일요일 서브웨이에서 겪었던 저의 꼰대성 때문에 전작 ‘꼰대의 탄생’ 1,2편에 이어 3편격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점심 시간이 되었던 때라 “지하철 어때?”(저희 집은 서브웨이 주문시 ‘점심은 지하철로 하자’ 정도로 얘기합니다)라며 아내와 상의하여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습니다.

저는 운동도 할 겸,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매장에 가서 주문을 하려는데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매장에는 키오스크 2대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줄지어 있었기 때문에 매대 앞으로 가 주문을 하려 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저에게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빵은 뭘로 하실까요?”라고 물었고, 저는 그간 저희 집 아이들이 주문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기만 했기에 우물쭈물하다가 창피하게도 “부드러운 빵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이 “플랫 브레드요? 화이트 브레드요?”라고 해도 저는 뭔지 모르고 매대에서 앞 주문자의 빵을 보고 “저거예요”라고 했구요.

아내는 화이트 브레드를 좋아했기에 저는 플랫과 화이트를 각각 하나씩 주문했지요.

다음으로 이어지는 난관이었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두 가지 빵(각 30cm)을 굽기에 그게 아니라며 “2인분예요”라고 세네 번 시비를 겪은 끝에(저는 15cm 두 개를 말했는데 빵 굽기로 볼 때 30cm 두 개가 나올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두 가지 빵을 구워 반으로 자르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시비가 멈췄죠.

서브웨이.jpg


또 이어지는 도전!

이쯤되면 무슨 난관인 줄 모두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갖가지 재료부터 채소를 넣는데 계속되는 아르바이트생의 질문에 미안한 마음에 저는

싫어하는 채소 없어요. 올리브만 조금 많이 넣어 주시구요
라고 논란을 서둘러 마무리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저의 진땀나는 서브웨이 주문은 끝이 났습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기에 매장의 손님이 무척 많았고 딜리버리 주문도 매우 많아 아르바이트생 모두가 피곤하고 힘들어 보였는데 저를 담당(?)한 점원은 친절하게 저의 민원(?)을 해결해주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그간 아이들이 주문해 온 것을 먹기만 했기 때문에 서투르다”며 미안하다는 한 마디는 했지만, 저의 머리를 순간 스친 생각 ‘아재니까 이해해주겠지’라는 마음도 가졌습니다.

창피했습니다.

왜 제 머리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서브웨이 주문 공부를 하자는 결심부터 앞으로 많은 것은 내가 직접 처리하자는 것까지 여러 가지를...




“나이들었으니 이해해주세요

이 말은 때때로 나의 실수나 우둔함을 이해받으려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나는 가끔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은 매일같이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해야 하고,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정보도 많고, 제 아이들의 말투와 유행은 눈 깜짝할 새 바뀌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해 좀 해줘요. 나이들었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도 느낍니다.

내 실수나 느림을 이해해 달라는 말은 ‘봐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마는 결국에는 이 말은 핑계일뿐입니다.




제 생각엔 ‘나이들었으니 이해해달라구요?’라는 말 뒤에는 뭔가가 숨어있는 듯합니다.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혹시 또 변화를 거부하고 꼰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버벅거리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고 익어가는 과정입니다.




요즘 어디 가더라도 키오스크 정도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브웨이 주문도 조금만 알아두면 비교적 쉽습니다.

그리하여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세대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새로운 배움을 즐기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이게 바로 장년의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삶의 한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과정에서 얻는 깊이와 지혜도 있지만, 잃어가는 젊음의 활력과 유연성도 있고 순발력과 민첩성 같은 것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에 갇히지 않고 계속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배우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결국 ‘나이들었으니 이해해달라구요’라는 말은 타인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나이 듦이라는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제 나이 60!

국제적 기준으로는 장년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UN은 태어나서 17세까지가 ‘미성년’(Underage), 18~65세까지가 ‘청년’(Youth or Young People), 66~79세가 ‘중년’(Middle Aged), 80세를 넘어서야 겨우 ‘노인’(Elderly or Senior) 축에 들고, 100세를 넘겨야 ‘장수 노인’(Long-lived Elderly)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기준에 맞추려면 건강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요, 공부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요건입니다.




이쯤해서 김형석 교수님께서 제 나이대인 60대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됩니다.

인생에서 열매를 맺은 기간은 60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60대엔 제2의 출발을 해야 합니다. 독서로 대변되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놀지 말고 일해야 합니다. 과거에 못 했던 취미 활동도 시작하세요

저는 60을 맞은 해의 첫 출발은 비교적 잘 한듯한데(공로연수에 들어 온 올 해의 첫 외출로 1월 2일 수지도서관 카드를 만든 것은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와서 보니 다시 한 번 성찰을 해야겠군요.




다시 돌아와 서브웨이 매장에서 문득 발견한 저의 꼰대성을 누르기 위해 몇 가지 다짐을 합니다.

“나이들었으니 이해해달라구욧?”

“음! 음! 아니죠”




그럼 권위를 내세우거나 변명처럼 들리는 이 표현을 어떻게 바꿀까요?

첫째, “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데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라며 나이보다 익숙함을 내세우면 어떨지요.

둘째, “요즘 방식이 더 좋아보이던데...”라며 변화와 젊은 감각을 인정하는 표현을 써보면 어떨지요.

셋째, “요즘 방식에는 서투른데 저도 배워가는 중이예요”라며 겸손하게 후세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어떨지요.

넷째, (이 것은 완고한 나이든 자들에게 중요한 표현입니다) “혹시 이렇게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라는 표현으로 자기의 것을 고집하고 싶더라도 권위보다는 후세대의 의견을 묻는 자세는 반드시 있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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