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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박진주 여사가 한국을 사랑한 이유

by 페트라
대부분의 시골집에는 계절이 깊어감을 알리는 대형 야외 시계인 감나무가 하나쯤은 있습니다.


저는 매년 감을 따며 까치밥을 남겨놓곤 합니다.


물론 따기 힘들어서 남기기도 합니다마는, 올해도 저는 많은 양의 까치밥을 남겨놓았습니다.


까치밥을 남길때마다 우리나라와 상당히 깊은 인연을 가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펄 벅(Pearl S. Buck, 1872~1973)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녀가 그만큼 한국을 사랑했기에 우리나라 이름까지 가지게 된 것이지요.

그녀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우리나라에 입국해서 전쟁고아나 미혼모들을 돕기 위해 펄벅재단을 만들기까지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박진주 여사!

그녀는 자신의 이름 속에 진짜 자신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어느 가을날, 이름 모를 우리나라 시골을 걷다가 붉게 물든 감나무 아래에서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감을 따면서 몇 개를 굳이 남겨두고 있었죠.

그녀가 이유를 묻자 노인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건 까치밥이에요. 겨울에 까치가 와서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두는 거죠”


까치밥2.jpg


박진주여사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답니다.

한 알의 감 속에 담긴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토록 가난한 나라에서, 자신보다 작은 생명을 위해 감 한 알을 남겨두는 마음이라니… 이 민족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다”

박진주 여사에게 한국은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까치밥처럼 나누는 마음, 감 한 알에도 사랑을 담을 줄 아는 민족이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한국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지금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 붉게 익은 감나무 아래에서,

까치 한 마리가 고요히 감 하나를 쪼아먹을 때처럼 말이지요.



저희 집에는 높은 곳의 감을 나무에 오르지 않고 딸 수 있는 ‘감망’이 있었지만, 저는 한 나무마다 10여 개 정도씩의 까치밥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상품인 감만을 골라 우체국에 달려가서 친구에게 택배를 부쳤습니다.

마음이 풍만해졌습니다.

흐뭇함은 더 말할 나위 없구요.

까치밥1.jpg


김형석교수님이 말씀하셨지요.

최고의 기쁨은 남을 위해 헌신하고 나누는 것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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