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뽑기

by 페트라

2021년 일본에서 유행한 아주 좋지 않은 단어가 있습니다.

‘오야가차’. 이른바 부모뽑기입니다.

코인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어느 부모를 뽑느냐에 따라 자기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에는 ‘간섭’, ‘방치’, ‘학대’, ‘빈곤’만 있을뿐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불행을 환경과 사회 탓으로 돌리고 노력하기를 포기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학대하여 자녀들이 보호시설에 가거나 사망에까지 이르는 일이 간혹 생깁니다.



그러나, 극히 드문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부모님들이 “나는 부모님 복이 없어”, “우리 부모님을 잘못 뽑았어”, “부모님을 잘못 뽑은 결과 지금 내 인생이 요모양 요꼴이야”라는 말을 들으신다면 얼마나 비참할까요



부모뽑기의 결과가 인생을 결정한다구요?

그럼, 부모들도 자식뽑기에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나요?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리적인 여건에서인지는 몰라도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많은 점에서 공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갔을 수도 있겠네요.

2010년대쯤에 탄생한 것으로 기억되는 우리의 수저론 말입니다.



그럼, 도대체 나의 운명을 개척할 노력이나 합니까.

아니면 ‘노오력’이라고 폄훼하며 멈추실겁니까.

금수저냐, 흙수저냐. 또 그 뒤에 다이아몬드 수저, 철수저, 플라스틱 수저 같은 많은 수저계급론 얘기가 나오다가 급기야는 무수저까지 나왔지요.

하지만, 금이냐 흙이냐의 재질이 중요한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잘 쓰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흙수저라 칩시다.

열심히 구우세요.

도자기 수저가 됩니다.

이 과정에는 이루 말 못할 피와 땀이 새겨져 있겠지만, 그 성취감 또한 찬란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러한 수저론과 때를 비슷하게 하여 태동된 단어가 ‘헬조선’입니다.

예. 우리나라에서 산다는 것, 참 어렵지요.

자원이 얼마나 있습니까, 국제적 지리환경이 녹록하기나 합니까.

믿을 것이라고는 부지런한 국민성과 교육,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 위한 무한경쟁, 그리고 세계 최강의 나라들 사이에서의 줄타기 외교.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지요.

그래도 ‘헬조선’이라고 우리 스스로가 자학해서는 뭐가 득이 될까요.



오래 전 신문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 이미지를 비교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외국인들은 80.3%인데 반해, 한국인들은 54.4%에 불과했습니다.

그 기사를 본 적이 K-팝, K-푸드, K-드라마 같은 K-시리즈가 그리 확산되지 않은 때였으니 지금은 외국인들의 긍정평가는 더 올랐겠지요.

‘헬조선’은 커녕 ‘헤븐 조선’입니다.



이러한 저의 평가에 대해, 본시 저란 놈은 큰 어려움 없이 양지에서 살았기때문이라고 나무라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이 정도의 비난일랑 달게 받겠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만 해도 대박 아닙니까.

지구촌 여행을 위한 여권파워 2-3위를 오가는 국가.

세계인들이 우리한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배우려는 국가.

한국어 배우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우수한 대한민국.

카페에 휴대폰으로 자리 맡는 국민성을 가진 국가.



그러고 보니, 제가 오래 전 필리핀인과 화상영어를 하며 들은 경험담을 얘기하겠습니다.

필리핀인 화상통화자 티나는 우리나라의 ‘휴대폰으로 자리맡기’ 문화를 들었기는 했지만, 직접 경험하고 나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답니다.

우리나라 한 수강생이 강남 한 커피숍에서 화상영여를 하는 중에, 휴대폰으로 온 전화를 받고는 바로 노트북을 자리에 놓고 나가더랍니다.

그래서 “길동! 길동!(가명) 어디 가?”라는 말을 뒤로한채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온 길동이 “차 빼주고 왔다”며 신기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자기 친구들에게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나라입니다.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한 것도 아니고, 간접 경험한 것 마저도 친구들에게 자랑꺼리가 되는...



우리 어렸을 때 ‘아메리칸 드림’ 정도나 될까요.

<한국, 한국인>의 저자로 우리나라에서 40여년간 활동한 전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 마이클 브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마땅한 나라”라고, “후손들은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고난을 겪은 이들에게 감사해야”한다고, “한국은 위대한 나라이며 이 나라의 노년층은 한국역사의 진정한 영웅세대”라고 말입니다.



제가 태어난 1965년 새해 첫 굿 뉴스는 1인당 국민소득 세 자리 돌파였답니다.

105달러로 방글라데시 107달러, 파키스탄 111달러, 우간다 112달러를 겨우 제친 정도였답니다.

저는 실로 100달러대 나라에서 태어나 4만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초고속 또는 광속의 성장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모순도 있습니다마는, 지금의 현실은 이를 이끈 세대들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비판을 너머 비난과 부정마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사회통합에 저해가 되고 있습니다.



새벽에도 마음대로 나가고 배가 고프거나 집이 없거나 약 못 먹어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 그리고 누구나 의료혜택을 받는 나라!

물론 아직도 간간히 소외계층의 극단적 선택같은 우울한 뉴스가 등장하곤 합니다마는, 이 중에도 다수가 사회안전망에서 누락되어 발생하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인식이나 자조적 마인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저는 1990년대 중반 한 대학교 총장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추천 도서 이야기가 나온지라, 당시 제가 읽었던 한 신문에서 펴 낸 <한국의 힘> 같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부심과 의지를 줄 수 있는 도서를 ‘신입생 총장 추천도서’로 지정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 총장님은 저의 말에 매우 공감하였고, 선정하신 결과야 모르겠지만 그 뒤에도 총장님을 만날 때마다 우리나라 발전사에 대한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점보다 안좋은 점에 집착하는 부정적인 사람들!

그들 앞에 놓인 암울한 현실을 이해는 합니다만, 열심히 해도 안 될것이라며 자포자기해버리는 세태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언론매체나 SNS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나으며 ‘벼락거지’ 같은 아주 부정적인 단어를 만들어내고 상대적 불행을 낳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볼때입니다.



자존(自尊)!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스스로를 존중하고,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현실을 개척하려는 마음이 중요한 때입니다.



자존!

잘 써야 합니다.

나 이외의 다른 것과 비교하여 ‘자존심’에 상처받지 말고 오로지 ‘자존감’이 충만할 때 많은 것을 이룰수 있습니다.

충만한 자존감만이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는 치료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헬조선? 아니, 헤븐조선입니다.

흑수저? 아니, 뼈골빠지게 나를 가르치다 돌아가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듣고 계십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자신의 행복을 가꿔가십시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27화펄 벅-박진주 여사가 한국을 사랑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