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각 Apr 12. 2024

캐나다 생활이 준 선물, 아이 가질 결심

부모가 된다

  삶이 가장 크게 변할 때는 언제일까? 아마 부모가 될 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혼 후 아이 생각 없이 5년의 신혼 생활을 보내고 캐나다에 와서 경험한 적 없던 삶을 살았다. 하루 10시간 이상 자리에 앉아 공부해서 대학에 갔고, 생산적으로 살아 24살에 원하는 곳에서 일하게 된 나는 그 후 8년을 성실하게 일하고 유학을 나왔다. 캐나다에 와서 지난 1년 반 동안 브런치에 글을 썼는데 그 글 속의 나는 경쟁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며 지친 몸과 마음으로 이 곳에 와서 보게 된 다른 삶에 언제나 놀란다. 브런치 자기소개에 나는 스스로를 '불안을 원동력으로 성실하게 산 90년생 직장인. 밴쿠버에 유학 나와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중입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편안하게 잘 살고 싶어서요.'라 소개했다.

  이 소개처럼 캐나다에서의 내 삶은 완전히 새로운 삶이었다. 캠핑을 다니고, 차박 캠핑으로 미서부 로드트립을 하고, 걷고 뛰고 하이킹하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었다. 주체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을 성취하고자 정해진 루트를 잘 달려온 생활을 하다 캐나다에서 로드트립 하며 지낸 시간은 내게 큰 가치관의 변화를 선물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떤 것이든 할 수 있고, 그에 따르는 어려움들도 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나는 걱정과 불안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일어날 수도 있는 나쁜 경우의 수를 모조리 헤아려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살아왔다. 불안 때문에 계획형 인간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면서 내가 미리부터 준비한 모든 것이 모두 어그러졌다. 집 구하는데 문제가 생겨 이사를 네 번 했다. 부동산 상황의 급변으로 한국 집의 처리에도 애를 먹었다. 캐나다에 오자마자 은행에 가서 계좌와 카드를 만들었는데 신용카드를 도난당했다. 반도체 수급 문제로 중고차 매물이 갑자기 씨가 말랐다. 캐나다에 도착해서는 이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을 잃을 뻔 했는데, 다 지나가고 생각한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닐 수 있고, 나쁜 일인줄 알았던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사를 네 번 다니며 좁은 집에 정착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체득한 덕에 우리는 가벼운 짐과 여유 있는 돈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살아갈 생활이 믿을 수 없이 홀가분하게 느껴진다. 집을 구하지 못해 민박집에 묵을 때 좋은 주인분을 만나서 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힘든 상황에서도 조건이 괜찮은 차를 구할 수 있었고, 카드 도난 문제 등을 주인 가족분들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사를 다니며 한적한 곳에 위치한 밴쿠버의 전원주택에도 한 달 살아보고, 편의시설이 모두 가까이에 있는 콘도에도 살아보면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주거 형태가 어떤 것일지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한국에 가서는 은퇴를 해야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꿈꿨던 전원주택에서의 삶도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짧은 캐나다 생활 동안 많은 변화를 한꺼번에 겪으면서 오래 나를 괴롭혀왔던 불안이 어느새 내게서 멀어졌다. 일어나지 않은 일로 불안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들이 나를 이끄는 곳은, 엄마가 될 결심이었다. 우리 부부의 성향 상 아이가 있는 삶이 그려지지 않아서인지 양가 부모님도 5년 동안 우리에게 2세 계획을 물은 적이 없다. 친구들도 너희는 둘이서 오래 오래 잘 살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있는 삶이 너무나 충분했고, 아이가 있는 삶이 너무나 힙겹게 느껴졌기에 이대로 둘이 함께 늙어갈 미래를 자주 생각했다. 그런데 캐나다에 살면서 우리의 마음이 유연해지고,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뛰고 캠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호수에서 수영하는 캐나다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매일 보면서 아이가 있는 삶을 그려보게 되었다. 아이가 생기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지겠지만, 그 삶도 궁금하고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던 많은 이유들, 이를테면 매일 녹초가 되서 퇴근을 하니 아이를 돌볼 수가 없고, 어릴 때부터 경쟁해야하는 한국에서 자랄 아이가 과거의 나처럼 안쓰럽고, 아이를 키우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나보다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면 그 많은 불안과 걱정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이 이제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한국 사회에서의 정답이 모든 삶의 정답이 아니라는걸 이제 아니까. 우리 가족이 행복한 방향을 선택하며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마음에 자리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를 가졌다. 외국에서 임신하고 나서 가장 큰 어려움은 병원을 자주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임산부들은 믿을 수 없겠지만, 캐나다에서는 임신 기간 10달 중 초음파를 딱 2번 본다. 8주차와 20주차.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임신을 확인해도 날짜를 계산해서 8주가 되지 않았으면 초음파 검사 예약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어쩌나. 불안과 걱정을 다스리고,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다 잘 될 것이라고 스스로 되내이며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그렇게 거의 한 달을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처음으로 배 속 아기의 모습을 만났다. 진짜 우리와 함께 있었구나, 하고 우리 부부는 안도하며 그제서야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몇 주, 입덧으로 고생하면서 내 몸의 증상들로만 아기의 존재를 느낀다. 한국의 나였다면 모든 증상이 다 불안해서 매주 산부인과로 달려갔을, 불안과 걱정으로 잠 못 들었을 나는 열심히 평온한 마음을 연습한다. 그리고 대체로 고요한 내 마음을 인식하면서 미래를 낙관한다. 불안이 내게서 이렇게나 멀어졌으니, 아이와 함께 하는 우리 가족의 생활도 괜찮을거라고. 단단해진 마음으로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기쁨과 슬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꼼꼼히 누리며 생을 느낄 거라고.


  지난 로드트립 여행기의 프롤로그는 '어떤 여행은 인생을 바꾼다는 말'로 시작한다. 캐나다에서의 여행 같은 삶은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우리는 부모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