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장기하의 책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다가 마음이 동하는 부분이 있었다. 홀로 음반을 녹음하러 사막에 갔는데 달이 진 후 살면서 처음 보는 무수한 별을 마주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옷을 다 벗고 사막에 혼자 누워 있었다고 적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행도 주로 관광지로 다닌 나는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표현을 몰랐고 늘 궁금했다. 언젠간 별을 보러 가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던 내게 인공적인 빛 하나 없는 사막의 부드러운 모래 위에 인공적인 것을 다 걷어내고 누워 별을 바라보는 사람의 인상이 깊게 박혔다.
책을 읽은지 2년 반 후(2020년 9월에 나온 책이다), 미국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문제가 생겼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미서부 여행을 할 때 LA-라스베가스-그랜드캐년 순서로 다닌다. 동선 상 동쪽으로 세네시간씩 이동하며 제일 유명한 도시와 캐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유니버셜스튜디오에 새로 생긴 닌텐도 월드를 꼭 가고싶다고 해서 LA일정을 넣고, 그 뒤 라스베가스 호텔을 검색해보니 1박에 50만원정도였다. 여행 계획 상 주말에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는데 주말의 그 도시는 너무나 비쌌다. 평일엔 4~5만원이면 되는데 50만원이나 주고 라스베가스를 들르고 싶은가를 고민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라스베가스에 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 많은 데에선 기가 빨리고, 쇼핑에 관심 없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 우리. 라스베가스에 가서 카지노를 들르려나? 전혀 가고 싶지가 않았다. 남들 다 가니까 가자기엔 50만원의 숙박비가 비쌌기에 다른 대안은 없는지 구글 지도를 이리 저리 옮기며 살펴보았다.
그 때 LA 옆에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들어본 이름이었다. 미국 땅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고 대자연 여행을 꿈꿔본 적이 없기에 아는게 많지 않았지만 저 이름은 스치듯 들어본 것 같았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첫 페이지에 나온 특이하게 생긴 나무와 사막의 모습,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싶다면 이곳'이라는 첫 문장. 바로 여기다 싶었다. 좀 더 살펴보니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방문한 이후로 한인 투어도 생기고 인지도가 올라간 곳이었다. 전에 읽었던 장기하의 책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는 사막이라니, 몽골이나 두바이 같은 사막 지역을 가야하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로망을 실현할 기회가 온 것이다. 이 곳을 발견한 내게 마음속으로 칭찬을 하며 미국 국립공원 캠핑 예약 사이트와 구글 평점을 찾아보고 점보록 캠핑장(Jumbo Rock Campground)을 서둘러 예약했다.
미국 캠핑 여행을 준비하며 어려운 점은 캠핑장 예약 자체라서, 자리가 있으면 일단 잡아야 하기에 이것 저것 재지 않고 얼른 예약부터 했는데 그 이후 살펴보니 이곳은 사막이고 푸세식 화장실에 음수대도 없는 캠핑장이었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입구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다른 캠핑장도 있는데 점보록 캠핑장은 위치 때문인지 별을 보기에 가장 좋은 캠핑장이라고 했다. 30도를 훌쩍 넘는 사막에서 낮부터 시간을 보내다 씻지 못하고 1박을 하는 것은 정말 찝찝할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예약 변경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런데 점보록 캠핑장에서 찍은 은하수가 선명하게 보이는 밤하늘의 사진들이 마음을 붙잡았다. 구글 지도의 리뷰에는 주로 밤하늘의 사진이 있는걸 보면 정말 별 보는 명소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가보기로 했다. 1박 못씻는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한번 해보자 싶었다. 몇년 전 친구가 스페인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샤워장이 있는 캠핑장에 가서야만 씼을 수 있어서 며칠 못씻기도 한다고 하는 얘길 듣고 나는 절대 못한다고 고개를 절레 저레 저었던 나는, '절대'라는 말의 무게를 몰랐던 것이다.
그 이후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가장 기대되는 것은 사막에서의 별 밤이었다. 한달 남짓 많은 곳을 방문하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설레는 것은 은하수가 선명한 밤하늘이었다. 마침 운좋게도 그 날 달이 아주 가늘어서 별을 많이 볼 수 있을 듯 했다.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었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첫 캠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캠핑 옆 자리 노부부에게서 '계속해서 캠핑을 하고 자연을 걷고 모험을 하라'는 응원을 듣고 LA에서 하루종일 놀이공원에서 놀다가 3시간 거리에 있는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은 우리가 머물 곳 중 가장 더운 곳이었다. 35도의 무더위를 예상했다. LA에서 나와 가는 길에도 해는 점점 뜨거워지고 식생이 덤불나무나 선인장처럼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것들로 바뀌었다. 도시에서 얼마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사막이 나타나는 것을 신기해하며 도착할 무렵 하늘 가득 구름이 꼈다. 매일 맑고 건조한 사막의 하늘이 어떻게 먹구름으로 가득 차는 것인지, 오늘 아침까지 확인한 일기예보엔 맑음이 떠 있었는데 다시 일기예보를 보니 지금부터 흐릴 뿐만 아니라 뇌우주의보가 떠있었다. 단 하루 사막에서 별을 보며 캠핑을 하는 날인데 흔치 않은 먹구름이라니 당황하며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도 없고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자연 속으로 들어서는데 굵은 빗방울이 창문에 퍽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건물 하나 없는, 조슈아 트리만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은 먹구름과 비바람에 무척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화성에 온 것 같았다. 기대했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역시 처음 보는, 인상 깊은 풍경이었다. 얼마간 달리다 멋진 조슈아트리가 많은 곳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건물이 없기에 온통 하늘뿐이었는데, 검은 하늘이 번쩍 번쩍 하자 조금 무서웠다. 그런데 심지어 눈 앞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천둥의 신 토르 영화를 볼 때나 봤던 선명한 보라색의 번쩍이는 섬광이 하늘과 바위를 이었다. 종종 뇌우주의보라는 글자를 날씨 어플에서 봤지만 뭘 주의하라는지 알 수 없었는데 벼락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알았다. 그것은 주의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주의하는지 몰라 일단 얼른 차에 타서 보기에 구름이 적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선 하늘 전체가 보여 비구름을 피할 수 있었고, 우리가 머물 캠핑장 방향과 같아서 캠핑장으로 향했다.
황량한 땅에 조슈아트리만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풍경들이 지나가고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보록 캠핑장은 말그대로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때쯤 신기하게 하늘이 걷히기 시작했고, 우리는 안도하는 마음으로 캠핑 자리를 찾아갔다. 늘 빽빽한 침엽수로 둘러쌓인 캠핑장에만 가봤는데 황토색, 베이지색의 커다란 바위들과 낮은 올리브 색의 덤불식물들 사이에 위치한 모래 위에 자리를 잡으니 다시금 설렘이 찾아왔다. 우리가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자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실 여행 내내 매일이 놀라울 뿐이었다. 매일 매일 '우리가 이런 곳을 오르다니, 우리가 이런 걸 하다니, 우리가 이런데서 자다니, 우리가 이런 풍경을 보다니' 하고 감탄하는 것밖엔 달리 무엇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벼락이 떨어지는 사막 한가운데를 구름을 피해 달려와 정말이지 포켓몬 같이 생긴 새들이 걸어다니는 바위 사이에 서있지 않은가.
다음날 맑은 날의 캠핑장 옆 트레일
구름 때문에 35도는 커녕 가을날처럼 쌀쌀해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고 주변을 살펴보니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이 많았다. 씻을 수도 없고 불편한 캠핑장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나라 밖에서는 캠핑카를 타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안에서 뛰놀고 불을 피우는 가족들이 이렇게 많다니, 다른 삶이 있다는건 알지만 역시 눈으로 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오지캠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늘 예약이 꽉 차는 캠핑장에 오면서도 내가 무모한 것은 아닐까 잠시나마 생각했던 것이 부질 없이 느껴졌다.
이 곳은 해질녁의 보라빛, 주황빛으로 물드는 하늘과 밤하늘이 장관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뷰포인트도 체크해 두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구름이 떠나가고 있어 일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처음 보는 조슈아트리가 가득한 도로를 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웠다. 그렇게 Keys View Point에 도착했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 도착해서 바라본 하늘은 어떤 일몰보다도 아름다웠다. 구름이 낀 하늘은 짙은 보라빛이었고, 그 아래 갠 곳은 태양 덕에 밝은 노랑, 주황빛으로 빛났다. 까맣게 그림자 진 조슈아트리의 이색적인 모습은 그림 같았다. 일몰을 특히 좋아하는 나는 맑은 날의 하늘보다 구름 낀 날의 하늘이 해가 질 때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구름 덕에 하늘이 다채롭게 물들기 때문이다. 낮의 비바람과 먹구름은 이 순간을 위한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고, 우리도 그랬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국립공원은 아니기에 이렇게 감동스러운 장면을 조용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때는 그 자체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어떤 목적 없이, 그저 바라만 보면서도 행복감이 부풀어 오른다.
한참을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아주 깜깜해지기 전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30분 정도 달리는동안 태양의 남은 빛이 점점 사라졌고 밤이 내려오는 사막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여운에 젖은 채로 캠핑장에 돌아왔는데 옆 자리 이웃이 다가와 불을 피울 것이냐 물었다. 장작이 없다고 하니 자신들은 지금 떠난다고, 장작이 꽤 남았는데 불을 안끄고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맙다고 하며 이웃들을 배웅하고 옆 자리 모닥불 앞에 캠핑 의자를 옮겼다. 경량패딩을 입어야할 정도로 추웠는데 불가에 앉으니 따뜻했다. 게다가 장작이 무척 잘 탔고, 꽤 많은 장작이 남아 있어 오래 불멍을 즐길 수 있었다.
구름이 점점 더 걷히고 별이 하나씩 떠오르는 것을 이따금씩 바라보며 안나 까레니나를 읽었다. 일렁이는 불과 타닥 타닥 장작 소리, 가끔씩 떠오르다 사라지는 불티, 사막에만 사는 새들의 낯선 울음 소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낯설고도 평화로운 자극들이 마음에 고요를 남기는 듯 했다. 각종 전자기기에 창밖의 가로등이며 집 안에 조명으로 밝은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차분한 순간이 좋았다. 하루에 몇시간씩 이동을 하고 도전을 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여행하다가 처음으로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풀어지는 듯 했다. 행복했다는 말이다.
어두운 캠핑장에서는 전자책이 좋다
밤이 깊어지고 장작은 다 탔고 잠이 쏟아졌다. 은하수는 새벽 두시에 제일 잘보인다는 글을 읽었는데 왜 그런건지는 모르지만 새벽 두시만은 외우고 있어서 일단 자다가 새벽 두시에 다시 나오기로 했다. 캠핑장에선 해가 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장작불에만 의지하다 2시간여 후에 불이 다 타면 잠을 잔다. 별이 제법 많이 보이는 하늘을 보며 기대감을 가지고 차 안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두시, 미리 맞춰둔 핸드폰 진동에 일어나 남편을 깨워 차 밖으로 나왔다. 별 천지였다. 어느덧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은 크고 작게 빛나는 별들이 무수히 박혀 있었다. 조용히 감탄을 하며 캠핑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에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전문가가 찍은 사진처럼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내 눈으로도 은하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몇 안되는 알고 있는 별자리들이 정말이지 선명하게 보였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한참을 고요 속에 별들을 바라보다가, 미리 핸드폰에 받아둔 별자리 어플을 켜 하늘을 비춰보며 별자리들을 헤아렸다. 편안한 세상이다. 인터넷 안터지는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핸드폰으로 하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 방향을 인식해 별자리를 알려준다. 목동자리, 처녀자리, 사자자리..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런 이름들을 입 안에 굴려보며 꼼꼼히 하늘을 헤아렸다. 그러다 한시간 반이 지나 좀 추워져 헤드랜턴을 머리에 쓰고 캠핑장을 걸었다. 별빛으로 밝은 하늘 아래 조슈아 트리의 모습. 아마 아주 오랜 시간동안 다시 보기는 힘들 풍경을 오롯이 느끼며 걸었다. 걷다 보니 이 고요한 새벽에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낭만적이었다. 어떤 고민도, 어떤 복잡한 생각도 없었다. 그저 별들과 나무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시간 넘게 한 밤의 별 구경을 마치고 다시 잠에 들었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은 미서부 여행을 할 때 꼭 들르는 여행지는 아니다. 만약 들르더라도 LA에서 이동해 2~3시간 정도 구경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와 호텔에서 잠을 자거나, 무한도전 이후 생겨난 별밤투어로 밤에 만나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해서 별을 바라보다가 새벽 2시쯤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고 한다. 짧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에서 오롯이 하루를 보내니 그 고요하고 낯선 풍경이 아주 오래 내 기억 속에 남아 마음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려 할 때 잠잠하게 잡아줄 것만 같다. 그저 해가 지고 하늘의 색이 점차 어둡게 물들고, 별이 하나씩 떠오르고, 그러다 하늘을 채우는 모습을 순간 순간 누렸을 뿐인 하루였으나 서른 몇 해를 살면서 처음 보는 풍경들이었으며 어떤 때보다 고요하고 차분한 시간이었다. 내면의 평화를 상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순간을 내 안에 새겼다.
그 이후 몇 번이나 대자연 속에서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은하수 아래 사막에서의 밤과 같은 날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도시 대신 사막을 선택했기에 오래도록 소중할, 별처럼 조용히 빛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었다. 꿈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