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 첫날

by 조각

크레이터레이크를 지나 나파밸리에서 오퍼스원과 로버트몬다비 와이너리에 들러 찐행복을 맛본 후, 시골 에어비앤비에서 하루를 쉬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우리가 첫 캠핑을 하는 곳인데 워낙 세계에서 유명한 곳이고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 3시간밖에 안 걸려서 사람이 많아 캠핑장 잡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국립공원의 볼거리가 몰려 있는 요세미티 밸리 지역에 있는 캠핑장 4개는 몇 달간 아무리 새로고침을 하며 찾아봐도 자리가 나지 않아서 중심지와는 1시간 정도 떨어진 서쪽 입구 바로 앞에 있는 호지돈미도우 캠핑장(Hodgdon meadow campground)을 예약했다.


그런데 캠핑장에 도착하기 며칠 전 도로공사 때문에 서쪽 입구에서 중심지로 가는 도로가 막혀 구불구불한 산길을 우회해 3시간이 걸려야만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캠핑장에서 자는 이유 중 하나는 국립공원 밖에 있는 숙소와 목적지 사이를 왕복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있었는데 왕복 6시간을 이동하는데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캠핑 직전 취소 자리를 잡으려고 보니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에 겨우내 쌓인 눈이 너무 빨리 녹아 요세미티에 홍수 경보가 내려지고 중심지인 요세미티 밸리 지역의 캠핑장 3개가 폐쇄가 되었다. 그 캠핑장을 잡으려고 사람들은 몇 달 전 캠핑장 예약 오픈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접속을 하고 성공해서 기뻐했을 텐데 역시 무엇을 열심히 계획한다 해도, 앞날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 6시간 운전 더 하자 하고 마지막으로 새로고침을 눌렀는데 갑자기 중심지에서 꽤 가까운 워워나 캠핑장(Wawona campground)에 딱 우리에게 필요한 2박 3일 자리가 났다. 흥분으로 떨리는 손으로, 하지만 콘서트 예약하던 실력으로 차분하게 자리를 잡아 예약을 했고, 그렇게 폐쇄되지도 않고 홍수의 위협과도 조금 멀며 나름 중심지와 가까운 캠핑장을 잡을 수 있었다. 야호!


들뜨는 기분으로 금방 들어선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홍수 경보가 내려진 곳답게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요세미티는 높고 세찬 폭포와 거대한 암벽으로 유명한데 눈이 너무 빨리 녹아 철철 흐르고 있으니 어디든 세찬 물소리와 시원한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고개를 들면 압도될만한 암벽들이 주위를 두르고, 고개를 아프도록 꺾어야만 위를 볼 수 있는 높고 강한 폭포가 떨어지는 풍경은 그것만으로도 멋지고, 세찬 폭포 아래에서 바람과 물방울을 맞으니 상쾌하고 즐거웠지만 내 눈길을 특히 끄는 것은, 실내에서 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누리고 있는 암벽등반가들이었다. 요세미티에는 '엘케피탄(El Capitan)'이라는, 암벽등반가들의 꿈의 성지 같은 거대하고 희게 빛나는 매끈한 수직절벽이 있다.

엘케피탄


제일 유명한 그 암벽 말고도 국립공원 전체에 암벽이 펼쳐져있으니 클라이밍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걷다 보니 camp4라는 캠핑장이 있었는데 1,2명이 겨우 누울만한 작은 텐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캐나다나 미국의 캠핑장은 보통 자리가 무척 넓어 커다란 내 자리에 차도 두대씩 댈 수 있는데 이 캠핑장은 한국처럼 캠핑사이트마다 자동차를 댈 수도 없고 식탁이나 모닥불용 파이어핏도 없는 작은 캠핑장이었다. 선택권이 없어 이런 열악한 캠핑장에서라도 자는 건가 싶어 살펴보니 이 캠핑장의 한 면에 몇 무리의 사람들이 몸도 풀고 장비도 설치하며 바위를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캠핑장은 오르기 적당한 바위를 품고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실제로는 처음 보는 장면이라 구경을 하는데, 특히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둘이 서로의 줄을 묶고 한 쌍이 되어 한 명이 바위벽을 기어오른 후 기뻐하며 자신의 짝에게 출발하라고 손짓하는 모습에 기묘한 감정이 들었다. 바위를 오르던 팔과 등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근육, 환희에 찬 표정으로 양팔을 위로 쭉 뻗으며 웃던 소리. 줄을 잡고 흔들어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출발하라고 신호를 주던, 여러 번 반복했을 습관. 그 모습을 보며 먼저는 대체 왜 저런 위험한 운동을 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다음으로는 어떤 질투의 감정이 생겼던 것 같다. 생생한 젊음과 기쁨이 멀리서 구경만 하던 내게도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삼십 대 초반의 우리 부부는 출국 직전 여기저기 아프고 원인불명의 두드러기, 대상포진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역시 삼십 대가 되면 노화가 시작된다더니'라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 부부가 특히 약한 것이 아니라 내 친구들도 이맘때 크게 아파 병원 신세를 많이 졌다. 그러니까 원래,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몸은 그렇게 설계된 것이라 생각했다. 서른이 넘으면 이제 노화하여 아파질 일만 남은. 덜 아프기 위해 영양제를 먹고 꾸준히 운동해야 하며, 걷기, 필라테스, 헬스장, 요가, 등산 같은 것을 해야만 노화를 늦출 수 있는.


하지만 캐나다에 와서 매일같이 걷고 뛰고 있는 남녀노소를 봐왔고, 모두가 운동만 하는 도시인가 싶던 차에 요세미티에 오니 암벽을 오르기 위해 아래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람만 수십 명이 아닌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모해 보이는 신체 활동을 기꺼이 즐기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곳에 모여 설렘과 즐거움, 성취감을 내뿜는 모습을 직접 보니 지난날의 내가 십 대 이십 대가 아닌 난 이제 몸을 쓰다 다치면 회복도 더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며 몸을 사리던 것이 안쓰러웠다. 진심으로 그렇게 여겨 스케이트장에서 아주 오랜만에 스케이트를 타볼까 하다가도 관뒀던 나였다. 물론 기타도 배우고, 드럼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해 언제나 부지런하게 움직여왔지만 한편으론 어떤 즐거움과 어떤 삶은 애초에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조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책상에 앉아 10년을 공부하고, 사무실에 앉아 10년을 일하는 동안 그런 삶은 꿈꿀 수도 없는 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아주 생생한 기쁨이 될지도 모르는 어떤 보석을 집어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 보석을 집어드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힘들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면서. 그런데 그렇게 내가 아는 세상만을 계속 알기엔 나는 너무 젊다는 것이 이 암벽등반가들을 보며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위를 오르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남편이 요세미티 폭포도 구경했고, 엘케피탄도 보았고, 터널뷰도 보았으니 혹시 트레일을 오를 생각이 있느냐고 했다. 3~4시간 걸려 요세미티 어퍼 폭포까지 가는 난이도가 높은 트레일에는 첫 번째 뷰포인트인 콜롬비아 락(Columbia rock)까지 가는 왕복 1시간 40분이라 표시된 난이도 초중급의 트레일이 속해 있다고, 그 정도면 할 수 있을 것도 같다고 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폭염 경보가 내려져 눈이 너무 급히 녹아 모든 길에 물이 넘칠 듯이 찰랑거리는, 뜨거운 요세미티에서 2시간을 걸을 수 있을까? 이미 이곳저곳 구경거리를 보느라고 만 보를 걸었는데. 그런데 불현듯 암벽 등반가들의 생생한 모습이 부러워 보고 있던 나를 깨닫고는, 가보자 했다. 남편은 내가 가지 말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듯 등산스틱을 챙겨 왔고 우리는 콜롬비아 락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그늘이 거의 없는 쨍쨍한 바위 길은 가팔랐고 밟은 돌이 자꾸 굴러 미끄러워 배로 힘이 들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나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아 자꾸만 길을 비켜줘야 했고, 덥고, 목이 마르고, 몸이 무거웠다. 정말 힘들어서 그만 내려가고 싶었다. 심지어 눈이 너무 많이 녹아내려 중간 길은 계곡처럼 물이 불어나있었고 사람들은 세차게 흐르는 물도 건너갔다. 무서웠다. 이럴 때 언제나 미련 없이 잘 포기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고, 나는 미련 없이 포기하는 나의 단호함을 조금쯤 좋아하기까지 해 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한 걸음씩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고작 몇 걸음 올랐는데도 더 가깝게 보이고 더 많이 보이는 강함 그 자체인 풍경이었다. 이렇게 강한 바위들, 이렇게 세찬 폭포와 거인들의 산처럼 느껴지는 높은 산의 모습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 잘 보였다. 시야가 트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왜 사람들이 힘든데도 자꾸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인지 한 걸음마다 알 수 있었다. 높이 오르면 더 많이 보인다. 마치 핸드폰 사진을 찍을 때 0.5 배율로 바꿔 더 많은 풍경을 담을 때처럼, 내가 볼 수 있는 화면이 더 넓어지는 것이었다.

자꾸만 멈추게 만드는, 오르는 길의 풍경


그렇게 처음으로, 뙤약볕의 무더위를 이겨내고 도착한 콜롬비아 락에서의 풍경은 가히 말할 것도 없다.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그 풍경은, 내가 한 시간 넘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무거운 발을 들어 올려 올라온 시간에 대한 넘치는 보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려고. 인위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두 시간짜리 트레일을 한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 일상적인 일이 나에게는 이 먼 미국땅에 와서야,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라는 거대하고 유명한 곳에 와서야, 암벽을 오르는 또래를 보고 부러움의 감정이 들어서야 결심하고 도전하는 일이라니, 도대체 나는 무슨 삶을 살아온 것인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게 나인걸, 그런 내가 이곳에 올라 등산을 왜 하는 건지 정확히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그리고는 내려왔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오르막을 오를 때보다 더 집중해서 내려오는 길에도 장엄한 풍경을 계속 누릴 수 있었다. 어디 유명한 포인트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가서 주차를 하고, 30분씩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그 풍경들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벌써 한 달 전 일인데도 그 길을 오르고 내려오던 두 시간 동안의 풍경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곳을 다녀왔다는 뿌듯함까지도.


그렇게 뿌듯함을 안고, 더위에 지친 몸을 씻으러 샤워장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 씻고 나와 샤워가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은 채로 우리의 미국여행 첫 캠핑장으로 향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