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은 인생을 바꾼다는 말

집돌이집순이 부부의 23일 미국 차박 여행기 프롤로그

by 조각

사람들은 여행을 참 좋아한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와는 달리 즐겁고 아름답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일까, 맛있는 것을 먹고 하기싫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까. 나도 스무살 때부터 1~2년에 한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갔던 3박 4일짜리 중국, 일본, 대만, 취직 후 첫출근 전 혼자 떠났던 20일짜리 유럽, 구남친(현남편)과 갔던 괌, 오키나와, 신혼여행이었던 하와이. 일하며 번 돈으로 연차를 내고 떠나는 여행은 달았지만, 여행을 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는 말은 어딘지 옛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져 공감하지 못했다. 방에 앉아 넷플릭스만 켜도 고성능 카메라로 찍고 열과 성을 다해 편집한 대자연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고, 여행유투버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볼 수 있으니 우리는 이미 넓은 세상을 많이 알고있지 않은가.


없는 시간을 쪼개어 떠난다면 깨끗하고 안전하며 몸이 고생스럽지 않은 여행만을 선택해온 나는, 작년 6월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 나와 모두들 비가오나 눈이오나 운동복만 입고 걷고 뛰고 등산을 하고 캠핑을 하는 캐나디언의 분위기에 휩쓸려 전에 없이 바깥으로 나가 평소보다 몸을 많이 움직여왔다. 인생에 다시 찾아올 줄 몰랐던 여름방학에 떠날 여행지를 고를 때에는 직장생활을 하다 캐나다나 미국에 유학나온 한국인들이 대부분 미서부 로드트립을 하기에 이왕 바깥생활을 늘려온 것 우리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아주 아주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 만들어온 예술 작품, 그들이 했던 생활의 자취를 조금쯤 엿보는 것, 책에 담긴 100년전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다를 것 없이 가지고 있던 생각의 결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말하자면 인문학이었기에 미국여행에는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뭔가 좋은점이 있기에 남들이 하는 것일테고 미국이 제일 가까우니 기회가 있을 때 가보기로 하고 알아보니 미국에서는 LA, 캘리포니아, 라스베가스 같은 화려한 대도시에서 놀거나 그랜드캐년, 옐로우스톤, 요세미티 같은 대자연 국립공원을 다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연애 10년 결혼생활 5년 동안의 우리 부부는 사람이 많고 번잡한 곳에 가면 기가 빨려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심심하고 할 것 없다 여기는 평온한 밴쿠버에서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운 정적인 사람들이기에 대도시는 조금도 끌리지가 않아 국립공원들을 여럿 둘러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1박에 50만원을 넘는 국립공원 안에 있는 숙소의 숙박비를 아끼고, 안그래도 하루에 최소 6시간씩 운전해야하는 커다란 땅덩어리를 돌아다니는 시간을 2~3시간씩 아끼기 위해 국립공원 안에서 캠핑을 하는 여행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모든 선택이 우리에게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대학생 때 이후로 장기간 여행가본 적이 없고 대자연 여행 역시 해 본 적이 없는 우리가 1달 가까운 긴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 날씨 좋기로 유명한 밴쿠버의 여름에 5번 정도 캠핑해본 작고 귀여운 경험을 가지고 뜨거운 사막에서도, 눈이 내리기도 하는 산 속에서도 차박을 하기로 한 것. 장기하의 노래 중에 '등산은 왜할까'를 좋아하며 어차피 내려올 걸 알면서 산을 오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던 우리가 한 국립공원에 이삼일씩 머무르며 트레일을 걷기로 한 것.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과 2년 간 운전을 하다 사고를 너무 쳐 아예 보험조차 들지 않고 운전에서 손을 뗀 내가 하루에 6시간, 8시간씩 이동하는 로드트립을 하는것. 우리가 로드트립을 계획한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은 너희가 로드트립을 할 수 있겠냐고 놀랐지만, 아이 없고 아직 젊으니까 살아가며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란 생각으로 이전의 여행과는 다른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고는 체력이 걱정되어 일주일 정도 매일 만 보에서 만오천 보 정도씩 걷다가 주인이 안하던 짓을 해서인지 곧바로 무릎이 나가 이틀동안 걷지도 못하면서, 이런 저질 몸으로 이 여행을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을지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걱정 반 설렘반으로 여행길에 올랐고, 밴쿠버에서 출발해 국경을 넘어 아래쪽으로 내려가 크레이터 레이크(에어비앤비), 나파밸리(1박을 하며 오퍼스원과 로버트몬다비 와이너리에 들렀다), 요세미티(2박 캠핑), LA(남편이 유일하게 가고싶다고 한 유니버셜스튜디오 닌텐도 월드를 위해 머물렀다), 라스베가스 대신 선택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1박 캠핑), 그랜드캐년(2박 캠핑), 앤텔로프캐년(1박 캠핑), 자이온캐년(에어비앤비), 브라이스캐년(에어비앤비), 라바핫스프링스 온천(캠핑카), 그랜드티턴, 옐로우스톤(2박 캠핑, 2박 공원 내 통나무집)까지 9개의 국립공원을 거쳐 무탈히 집에 돌아왔다.


23일을 여행길에서 보낸 우리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걱정했던 것,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면 그런것들은 아스라이 흩어지고, 전에 없던 우리를 발견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기쁨을 느끼고, 그려본 적 없던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여행 중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들었던,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 가슴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앞으로의 삶을 바꿔나갈 것이라는 설렘에 마음이 부푼다. 이번 여행이 우리의 삶에 아주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 30대 젊은 날의 우리가 처음으로 해보며 겪었던 것들이 우리를 이렇게 이끌었구나 추억하게 될 것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라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가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내 것이라 여겨본 적 없던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사소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중하고 눈부신 순간들을 잘 매만져 기록해보려 한다. 그 기록의 끝에는 갑작스럽게 우리의 것이 된 새로운 삶을 향한 문이 활짝 열려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

미서부 로드트립을 계획할 때 캠핑 하기로 마음먹은 자세한 글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runch.co.kr/@21d3b3e7688247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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