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그 길이 쉽다고 하셨어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둘째날

by 조각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들어선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와워나 캠핑장(Wawona campground)은 작은 캠핑장이었다. 빽빽한 침엽수로 다른 사람들이 가려져 프라이빗한 느낌이 나는 캐나다의 평범한 캠핑장과 달리 이곳은 한국 캠핑장처럼 운동장 같은 잔디밭에 사람들이 띄엄 띄엄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가 주로 다니던 캐나다 캠핑장과도, 한국 캠핑장과도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면 모든 자리에 커다란 개별 곰박스가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캠핑장이니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자리를 찾아 들어갔는데 거의 동시에 우리 옆자리에도 밴이 한 대 들어섰다.


뜨거운 날 트레일을 걷고 샤워를 하고 나온 터라 노곤함이 몰려온 우리는 서둘러 차박 준비를 했다. 해가 지면 불빛 하나 없는 국립공원의 캠핑장은 칠흙같이 어둡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바로 전 날 운좋게 잡은 우리 자리는 강 바로 앞이어서 얼른 정리하고 물멍을 할 생각에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 때 옆 사이트 밴에서 내린 노부부가 캠핑의자를 강 앞에 두고 한동안 앉아 계시더니 정리가 제법 끝난 우리에게 인사를 하셨다. 반갑다고 하시며 저 쪽에 칠면조가 지나갔다고 알려주셨다. 우리는 캠핑카는 매일 봤지만 밴은 낯설어서 밴을 타고 캠핑 여행을 하시는 것은 어떠냐고 여쭤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무척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이웃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보냉백에서 빵과 햄, 치즈와 잼을 꺼내 간단한 저녁을 만들어 먹고, 세수하고 양치를 한 후에 모든 곰이 관심을 가지는 물건(음식물, 식기, 화장품, 치약 등)을 곰박스에 넣고 캠핑 의자에 앉았다.


어느덧 해가 지고 하늘은 어두운 보라빛으로 물들어가고, 별이 총총 뜨기 시작했다. 새삼스럽게 미국의 대자연 속에서 캠핑을 한다는게 감동이었다. 불과 1년 전 캐나다에서 첫 캠핑을 시작한 덕에 우리는 개별 곰박스에도 놀라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식탁을 정리하고 물건을 그곳에 넣는 사람이 되었다. 자연 속의 밤은 아무리 한낮이 더웠더라도 급격히 추워지기에 히트텍과 경량조끼와 경량패딩과 바람막이를 겹쳐 입고, 샤워실은 없지만 수세식인 화장실에 감사하며 씻고, 인터넷이 안되는 곳에서 강물 소리를 들으며 일기를 썼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고작 네다섯번의 캠핑 경험을 가지고도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니, 이런 삶이 내 것이 되었다는 게 감사했다. 밤 열시가 되고 사람들이 모닥불을 정리하고 하나 둘 어둠 속으로 들어설 때 우리도 차 안으로 들어갔다. 뒷좌석을 접고 차박용 자충매트를 깔아둔 자리는 생각한 것보다 편안했고, 겨울용 침낭 안에 끓인 물을 넣은 물주머니를 안고 있으니 그 따뜻함과 고단함에 금새 잠이 왔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 차 안이 밝아져 눈이 떠졌다. 남편은 아침잠이 많아서 7시에 혼자 자 밖으로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자리를 정리 중이었고 이미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유명한 국립공원의 캠핑장은 먹고 마시며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7~8시간씩 걸리는 국립공원의 난이도가 높은 트레일을 걷기 위한 사람들이 많이 예약을 하고 해가 지기 전에 트레일을 끝내고 돌아오기 위해 새벽부터 출발을 하는 거였다. 그 때 이웃 할머니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가까이 가보니 우리 밴을 궁금해하지 않았냐며 구경해보라고 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나에게 밴을 보여주려고 정리를 마치고 기다리고 계신 거였다. 나는 너무 감사하다며 밴을 구경했다. 왼쪽 오른쪽에 길게 자리한 의자는 자동으로 펼쳐져 침대로 변하는 소파베드였고, 밴 안에는 냉장고도 인덕션도 싱크대도 있었고 수납 공간도 알차게 짜여져 있었다. 캠핑카는 우리나라에서는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고 아파트에서도 금지를 한다고 하는데, 이 정도 크기의 밴은 주차에 무리가 없으니 한국에서도 캠핑을 하고 싶다면 밴을 고려할 만 하다는걸 깨닫자 설렘이 차올랐다. 노부부에게 이 얘기를 하자, 캠핑카를 주차할 수 없다는 점에 놀라시면서 밴을 추천하시고는 오늘도 이 캠핑장에서 자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그분들도 그렇다면서 버널 폭포 트레일에 가봤냐고, 4박 5일간 요세미티의 트레일을 다 돌았는데 버널 폭포를 추천한다고 꼭 가보라고 했다. 급히 핸드폰도 찾으시더니 무지개가 뜬 아름다운 폭포 사진을 보여주셨다. 버널 폭포는 남편이 미리 정리해 놓은 트레일 중 하나였는데 난이도 중의 3~4시간짜리 트레일이다. 버널폭포를 아래에서 보는 곳까지 가는 미스트 트레일은 어렵지 않아서 가볼까 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폭포의 위까지 꼭 가야한다면서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다 계단으로 되어있어서 쉽게 갈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폭포 옆에 서서 커다랗고 오색 찬란한 무지개 아래에서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을 나도 보고싶었다. 할 수 있을거라고 별로 어렵지 않다고 강조를 하셔서, 그럼 오늘 밤에 돌아와 후기를 들려드리겠다고 하고 아침 일찍 다른 트레일로 떠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우리의 둘째 날 행선지는 버널 폭포가 되었다. 남편은 거기를 갈 수 있을거라곤 생각을 안했다면서 갸웃거리며 출발을 했다. 나는 어제 콜롬비아 락 뷰포인트까지 올라가 사람들이 왜 등산을 하는 것인지 깨달았으니 가보자고 하며 들뜬 걸음을 옮겼다. 이례적으로 많은 눈이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에 많이 녹아 폭포 소리는 세차고, 길에 물이 찰랑거리는 높고 넓은 숲 속을 걸어 올라가는데 고개를 들면 언제나 거대한 암벽들이 보여 힘이 났다.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고, 나도 사진 속 할머니처럼 무지개를 만나고 싶었다.


얼마간 걸었을까, 생각보다 금방 아래에서 버널 폭포가 보이는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올라오는 길이 더웠는데 역시나 폭포가 부서져 퍼지는 물방울 덕에 시원했고 더위를 식히자 더 올라가는게 조금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멀리 아래에서 보는 폭포의 모습은 어딘가 시시했다. 그래서, 하루 새에 눈은 부쩍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겨난 채로 높은 곳으로 걸음을 계속했다. 그렇게 한시간 가까이 더 걷자 갑자기 다른 온도가 느껴졌다. 폭포가 가까워질수록 물방울이 세차게 부서져 운동복 한장으로는 추워서 허리춤에 메고 있던 등산자켓을 풀어 입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무지개도 떠있었다. 나도 할머니처럼 무지개 아래 폭포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적당한 위치까지 올라가려고 하는데, 이상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길에는 물이 그야말로 폭포처럼 흐르고, 무지개와 폭포를 찍고 싶어 핸드폰을 들면 물방울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급기야는 내 얼굴에도 물이 폭포처럼 흐르고 바람이 휘몰아치고 귓구멍에 물이 세차게 들어 꽂혔다.


눈도 뜨기 어렵고, 바람 때문에 숨 쉬기도 어렵고, 귀에 물이 들어오고 폭포 소리가 너무 컸다. 마치 폭포에 빠진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어 옆을 보니 남편도 안경이 물방울로 가득 차 시야를 잃은 채 걷고 있었다. 나는 그저 할머니가 쉽다고 한, 강력 추천한 길을 걷고있었을 뿐인데 문득 인식을 해보니 온 몸이 젖어 있었다. 물벼락을 인식하고나서 더 올라야 할 길을 올려다보니 폭포 위에 다다르는 길이 멀지 않게 느껴졌다. 이미 온 몸은 젖었고, 두시간이나 걸었기에 포기하기는 좀 그랬다. 누구보다 포기를 잘하는 나였는데 도대체 포기하기가 좀 그런 기분이 왜 내게 찾아온건지 원망스러울 정도로 춥고, 발 밑은 넘치는 물이 너무 고여 발목까지 물이 찼다. 이미 물에 빠진 생쥐 꼴 자체가 되서 돌아갈 수도 없어서 계속 걷는 수밖에 없었다. 세찬 폭포 바람이 너무 세서 다른 사람들도 우비를 휘날리며 젖은 머리에 시야가 가려지며 그저 한걸음씩 올라갈 뿐이었고 얼른 꼭대기에 도착하길 바라며 나도 그들처럼 몸을 움직였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인 길을 한참 오르자 조금 평평하며 폭포에서 살짝 비켜서서 물이 휘날리지 않는 곳이 나왔다. 그곳에 멈춰서 위를 보니, 세상에. 무척 가파르고 좁은 바위 계단길이 펼쳐지고 그 길을 오르고 나면 떨어질 것 처럼 위험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은 물에 젖어 미끄러워 보였다. 이미 두시간을 넘게 걸었고 물보라를 뚫고 오느라 온 몸이 젖어 그 곳에 멈춰서서 위를 바라보고 있는데, 몸을 위로 옮기는 근육의 사용을 멈추자 체온이 내려가고 이가 딱딱 부딪혔다. 너무 추운데 앞으로 남은 길은 그늘 속이었다. 올라가자니 너무 무섭고 미끄러질 것 같고 추웠다. 내려가자니 한참을 이 물보라를 뚫고 내려가야하고, 돌아가려면 2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이도 저도 못한 채, 올라갈 용기도 내려갈 결단도 못하고 있는데 더 이상 추위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낭패감이란 이런 것일까? 속옷까지 젖은 상태로 폭포 옆 그늘에 있다간 몸살이 날 것 같았다. 오늘도 차에서 자야하는데 말이다. 캠핑장에 돌아가 차에서 잘 생각을 하니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면 할머니한테 버널 폭포 꼭대기까지 가는 길 하나도 안쉬웠다고, 폭포 바람에 날아갈 뻔 했다고 말씀을 드려야만 했다. 전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고 자연 재해였다고 사진을 찍어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우린 계속 오르기로 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지난 겨울의 요세미티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눈이 왔고, 우리가 요세미티에 도착할 때 즈음 기온이 급격하게 올라 폭염경보가 내려진 상황이라 눈이 급히 녹아 폭포 수량이 유일무이한 때였다고 한다. 10년간 가이드 하던 사람들도 이런 상황은 처음 보았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기온이 급히 오르기 전 이곳을 다녀가셨다. 우리가 걸은 트레일은 난이도 상의 익스트림 코스로 변해 있던 것이다.



올라가는 길은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물이 철철 흐르는 바위 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한걸음 한걸음 디뎠다는 것밖에는. 문득 뒤를 돌아보면 너무 높아서 내가 올라온 길이 바위 옆에 살짝 나있는 듯이 보이고 그 길을 나처럼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아찔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다시 돌리고 위만 바라보고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꼭대기에 도착했다.



이런 풍경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아주 좁고 가파른 길을 오르자 갑자기 아주 넓고 평평한 바위가 펼쳐졌고, 해가 내리쬤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말리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내려온 넓은 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다 시선을 멀리 두니 앞에는 엄청난 바위들이 보이고 아주 낮은 곳까지 흐르는 물을 따라 아래를 보면 내가 세시간동안 올라온 길이 얼마나 길고 높았는지 느껴졌다. 쌍무지개가 폭포 위로 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잠시 말을 잊은 채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런 풍경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햇빛을 받아 몸 속에 온기가 퍼지고, 한참을 웅장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이런 길을 오를 수 있다는게 감격스러웠다. 만 보씩 일주일을 걷다가 무릎이 아파 파스를 붙이고 누워있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추위를 너무 많이 타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인지. 올라오는 마지막에 추위 때문에 너무도 괴로웠는데 결국 이렇게 금방 체온이 오르고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 오늘 반드시 몸살이 나 앓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금방, 아주 건강한 기분으로 대자연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 나라니. 그것이 늘 누워서 지내던 우리 부부라니. 우리는 우리의 변화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손을 맞잡고 있었다.


힘든 순간은 결국 다 지나가고, 나는 그것을 이겨낼 힘이 있었다. 지금껏 내가 생각한 나의 힘은 작고 보잘것 없었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있었고, 스스로의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낸 후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황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시간을 통과한 지금, 우리는 전과 같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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