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크레이터레이크 국립공원(Crater Lake National Park)

by 조각

우리의 여행이 왜 아웃도어형 인간들이 에너지 넘치게 뛰어다니는 느낌이 (많이는 아니고 살짝) 나게 바뀐걸까? 그 변화의 시작은, 나중의 우리가 생각할 때 너무나 운이 좋게도 여행 초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이루어졌다.


여행 삼일차까지는 언제나의 우리와 같았다. 첫날 밴쿠버에서 포틀랜드의 숙소까지 이동하는데 8시간이 넘게 걸렸고, 첫날부터 고속도로에서 돌이 날아와 앞유리에 그냥 두면 큰일날 것 같은 구멍을 냈고, 대도시에서의 운전으로 지치고 긴장한 남편은 급체를 해서 저녁도 굶고 호텔에 기어들어가 그냥 쉬었다. 이 기력 없음이 너무나 우리 부부의 모습이라 웃음이 났다. 나는 운전도 하지 않으면서 이미 지쳤고, 남편은 아픈 것. 우리는 에너지 수준이 비슷해서 여행을 다닐 때 '서로가 걱정되지만 제대로 놀지 못해 속상하고 화도 나는 감정'을 겪을 일이 없어 여행 메이트로 잘 맞다.

둘째날에는 5시간을 내려가 크레이터 레이크(Crater Lake) 국립공원에 갔다. 남편은 이번 여행이 국립공원 대자연 탐험이라 처음으로 '올트레일'과 '트립어드바이저' 사이트를 참고해서 각 국립공원마다 인기 있는 트레일 코스를 난이도, 소요시간별로 선별해서 정리를 해놓았다. 한국에서도 등산은 것은 절대 하지 않았고, 밴쿠버에 1년 살면서도 겨울의 눈덮인 산 외에는 트레일을 따라 하이킹을 할 생각조차 안했기에 그런 사이트가 있는줄도 몰랐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트레일마다 점수를 매기고 후기를 쓰고 사진과 난이도가 잘 정리되어 있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트레일 코스를 짜는데 효과적인 사이트였다.


5월 중순인데도 고도가 높아 눈이 내 키보다 높게 쌓여 있는 크레이터 레이크는 길이가 10km, 너비가 8km인 화산의 분화구에 물감을 탄 것 같이 깊은 푸른 물이 차 있는, 미국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다. 백두산 천지보다 면적이 5배 이상인 거대한 푸르름은 자동차로 한참을 올라가 주차를 하고, 쌓이고 다져진 눈 계단을 2분만 걸어 오르면 볼 수 있다. 하얀 눈이 높게 둘러쌓인 가운데 그저 파란 호수를 바라보며 바람을 맞으니 순간 모든 고민이 다 날아가버리는 듯 속이 시원했다.


원래였다면 이렇게 차에서 내려 조금 걸어 풍경을 바라보며 한시간 정도 머무르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을텐데 남편이 여기에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올라가면 이 전경을 위에서 볼 수 있는 인기가 많은 트레일을 알아왔다고 했다. 물론 이번 여행에선 그래보자고 했지만 운동도 싫어하면서 참으로 성실하게 알아본 남편이 고맙기도 짠하기도 했다. 그래 올라보자 하고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길을 걷는데, 지금 눈앞에 이렇게 펼쳐진 푸름이 이리도 좋은데 왜 위에 올라가서 봐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높은데 올라가서 멀리서 보는 것보다 코앞에서 가까이 보는게 더 좋은거 아닌가? 높은데 올라가서 뭘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나는 2시간을 하이킹하기 싫은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걸었다. 그런데 트레일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모든 트레일이 폐쇄 중이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기쁠수가! 조금도 아쉽지 않고 기쁜 마음이 드는 스스로의 모습에 앞으로의 여행이 고생길이 될 것 같아 피어오르는 근심 걱정을 고개를 휘휘 저어 털어내고는, 아쉽지만 긍정적인 듯 "에이 어쩔수 없네. 아까 거기 뷰 좋은데로 가서 더 구경하다 가자~"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운좋게 발견한 고요하고 전망이 좋은 돌담 위에 나란히 앉아,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그 전경을 가장 잘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념품 자석을 고심하여 골라들고 내려와 또 1시간을 달려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그러나 평범한 우리의 첫 미국 국립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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