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골에서 마주한 한국인의 정

로드트립 마지막날

by 조각

해외살이를 준비하고 방학 때마다 여행을 다니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다. '좋은게 좋은 것만은 아니고 나쁜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오래된 말.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고 새롭게 일어나는 일들이 많아서 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더 자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원하는대로 통제하려고 했던 과거의 나는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라거나 '오히려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좋은 일이다.


이번 미국 여행의 마지막 국립공원이었던 옐로우스톤에서의 마지막날이 그랬다. 국립공원 안에서 캠핑 2박, 올드페이스풀인에서 2박을 한 후 마지막 하루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캐년빌리지 캠핑장을 예약해 두었었다. 야생 동물도 많고 색이 다채롭고 아름다우며 연기와 김을 폴폴 피워내는 간헐천이라는 낯선 자연의 모습이 지천이고 캐년이며 볼 거리가 아주 많은 옐로우스톤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려고 준비해두었다.


넷째날, 인터넷이 거의 터지지 않는 국립공원의 비지터센터에는 일기예보가 프린트 되어 안내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에 폭풍우가 온다고 했다. 안그래도 5월말 6월초의 옐로우스톤은 해가 뜨면 무척 더웠다가 금새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져 무척 추운데 폭풍우와 거센 비는 좀 무서웠다. 물을 끓여 보온 물주머니를 2개씩 안고 자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날씨를 견딜 수 있었는데 이보다 더 추워진다면 무리일 듯 했다. 게다가 첫 날 국립공원에 들어설 때 비가 많이 와서 시야가 보이지 않고 긴장하던 게 떠올랐다. 우리는 장비를 최소화 한 차박 캠핑 중이라서 비가 내리면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차에 들어갈 때 비에 젖은 옷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아늑하고 따뜻한 올드페이스풀의 통나무 집에서 넷째날 잠을 청하며 지붕과 벽이 없는 마지막 밤은 취소하고 오늘을 마지막 밤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 화장실이 없어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하는 이 방이 어찌나 쾌적하고 아늑하던지 역시 캠핑은 캠핑 이외의 시간의 만족도도 높여준다.


다섯째 날 아침, 무거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날 보려고 했던 곳들을 가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지만 이미 4박을 하며 즐길만큼 즐겼기에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는 옐로우스톤에서 다음 행선지로 집으로 돌아갈 지 다른 국립공원을 더 돌지 고민하려고 했기에 다음 숙소가 없었다. 인터넷도 안되기에 다음 숙소를 검색할 수 없어 일단 밴쿠버로 목적지를 찍고 길 위에서 인터넷이 터지면 그 때 숙소를 잡기로 했다. 그간 날씨 운이 무척 좋았는데 마지막 날 무서운 비를 만나니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 밴쿠버까지 14시간이 걸린다는 네비게이션을 보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충분히 여행한 것 같았다. 그래서 가는 길의 중간 즈음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내리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급히 에어비앤비를 검색했다. 당일에 숙소를 검색하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 중에 6시간을 더 운전하면 아이다호의 켈로그라는 처음 들어보는 마을에 숙소가 하나 있고, 거기서 자면 다음날 8시간 운전해서 집에 돌아갈 수 있기에 그 곳으로 정했다. 여행의 마지막이 허둥지둥 끝나는 것 같았지만 별 수 없었다.


그렇게 비 속을 달려 지친 채로 밤에 에어비앤비에 도착했다. 집이 몇 채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집 앞에 차를 대는데 집 안에서 사람들이 나오더니 "안녕하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누가 봐도 백인 할아버지인데 뒤따라서 동양인 할머니가 나오셨다. 우리는 깜짝 놀라 "한국분이세요?"라고 물었고 할머니가 30년 전 미국에 이미 온 한국분이시라 했다. 도로에 차도 별로 없는, 오는 내내 본 것이라곤 비와 산과 목장 뿐인 이런 시골에서 한국분을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당일에 숙소 예약을 하는 내 프로필을 보고 한국인이 와서 너무 반가웠다고 했다. 사람들이 경유지로도 들르지 않는 위치라 애초에 예약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신기한 일이다.


그 날은 장시간 운전을 하고 늦게 도착해서 호스트 분들은 편안히 씻고 잘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시고는 다음날 아침을 차려주신다고 했다. 일찍 출발해야 8시간을 갈 수 있기에 7시 식사를 요청 드리고는 예상치 못한 일에 즐거워하며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거실에 나와 우리는 깜짝 놀랐다. 호스트 할아버지가 한식 한상을 차려두셨기 때문이다. 식탁엔 하얀 쌀밥과 김치와 계란말이, 김치전(할아버지는 김치 팬케이크가 자신의 특기라고 했다)과 군만두, 김이 놓여 있었다. 안그래도 옐로우스톤에서 샌드위치와 햄버거만 먹다 나와 너무나 한식이 그립던 참이었는데 기쁨이 밀려왔다. 한국인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허니'라고 부르고, 미국인 할아버지는 한국인 할머니에게 '여보'라고 부르며 우리에게 아침을 대접해 주셨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수십년 전 미군으로 한국에 있었고, 그 다음에는 엔지니어로서 롯데월드를 건설할 때 함께 했다고 하셨다. 그 이후 미국에서 15년 전 할머니를 만나 결혼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직접 김치를 담가 큰 도시의 플리마켓에 나가 팔고 있다고 하시며 김치를 더 내어주셨다. 미국 여행 3주만에 먹는 한식은 정말이지 감동적인 맛이었다.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나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늘 또 먼 길 떠나야 하는데 점심 도시락을 싸주신다고 했다. 아침에 지으신 밥과 김치와 김과 김치전에 한국 과자까지 챙겨주셨다. 우리는 그만 마음이 너무도 따뜻해졌다.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허둥지둥 도망치듯 옐로우스톤을 나왔는데 당일 예약한 시골 마을의 숙소에 한국 사람이 있어 한국인의 정이 무엇인지 느낀다는게 너무도 별 일 처럼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따뜻한 정에 우리는 가슴 깊이 감사했다.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셀카도 찍었다. 8시간을 가야 했기에 더 오래 있을 순 없었지만 그들의 환대와 마음이 충분히 우리에게 남았다.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고 마지막 길을 나섰다.


몇 시간을 달려 점심 시간에 rest area(휴게 공간)에 들렀다. 미국의 도로에는 중간 중간 휴게 공간이 있고 그곳에는 테이블 몇 개와 화장실, 자판기 정도가 있다. 원래였으면 길을 가다가 주유소에 붙어 있는 마트에 들러 샌드위치나 빵 같은 것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했을텐데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한식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을 수 있었다. 3주 간 샌드위치, 컵라면, 햄버거, 타코만 먹었더니 감동이 몇 배로 느껴질 정도로 맛있었다. 폭풍우가 오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한국인의 정이었을 것. 갑작스런 폭풍우에 여행의 마지막 날이 나빠질 수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거리가 우리에게 왔다. 아마도 우리는 가끔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따뜻한 미소와 환대와 한식의 맛을 종종 이야기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기억 덕분에 한국인의 정을 누군가에게 좀 더 베풀 수 있는 어른이 될 것이다. 또, 좀 더 유연해질 것이다. 나쁜게 나쁜것만은 아니라는걸 아니까.


그렇게 우리의 미국 차박 로드트립이 끝이 났다. 23일이라는 긴 여행의 끝이 이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라니, 완벽한 마무리였다. 여행 첫날 밴쿠버를 출발해 시애틀을 지나 포틀랜드에 가는 동안 날아온 돌에 유리창이 깨지고 긴장 속에 급체를 해서 저녁도 먹지 못했던 우리는 무탈히 걷고, 감탄하고, 자고, 느끼고, 깨닫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기쁨을 잘 느끼고, 생각보다 튼튼하고, 불편함과 어려움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넘길 수 있고,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우리를 발견했다. 우리의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미래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여행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 처럼.

내 마음을 뛰게 할 뭔가를 찾아 늘 움직이며 살아가려 한다. 우리가 한계 짓고 있었던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가 된다. 유연한 마음으로 한걸음씩 디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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