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그들의 자식들, 또 그들의 자식들이 모두 즐거울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에서 만난다면 누군가는 가사노동을 해야하고, 아파트에 사신다면 아이들은 집 안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는 없다. 자식들 중 누군가의 집에서 만난다면 집에 온 가족을 초대해야 하는 부부의 부담감이 크다. 친구만 놀러와도 집을 청소하고 특히 화장실 같은데는 더 신경써야 하는데 부모님과 형제들, 자식들까지 온다고 하면 초대한 가족의 노동량은 꽤 많다. 나도 최근 엄마와 동생 둘이 캐나다에 여행을 와 일주일을 12평짜리 집에 함께 지냈는데 작은 집인데도 청소와 정리로 하루를 쓰고 가족들을 먹인다고 대형마트에서 음식을 잔뜩 사와 냉장고를 꽉 채워두었다. 지내는 동안엔 우리집이기에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신경쓰느라 지친 바람에 오히려 가족들에게 꽤 짜증을 냈다. 미안한 일이다. 밖에서 만난다면 어르신들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할 곳이 많지 않기에 방이 분리되어 있어 가족 모임에 적당한 식당에서 식사만 하고 헤어지거나 근교에 나들이를 갔다가 헤어지는 등 비교적 짧은 시간만 함께할 수 있다. 가족 여행은.......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캠핑을 하다보니 캠핑장은 삼 대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미국 캐년 지역에서 위로 14시간 가까이 운전해야만 갈 수 있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중간 경유지로 들렀던 라바 핫 스프링스(Lava Hot Springs)라는 작은 온천 마을의 캠핑장에서 온 가족의 행복을 보았다.
우리는 자이온 캐년 국립공원(Zion Canyon National Park) 다음으로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를 들러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조각 같이 예쁘고 오밀 조밀 아름다운 첨탑들이 빼곡한 장관을 보았다. 이 곳의 아름다움은 사진만으로도 느껴지지만 코랄 색, 상아색, 아이보리색의 모래와 흙으로 이루어진 원형 극장 안을 두세시간 걸으면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온 듯 환상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브라이스 캐년에서의 감탄을 뒤로 한 채 마지막 행선지인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을 향해 긴 운전길에 올랐다. 미국 국립공원 안에 있는 캠핑장에 머물며 차박을 하면서 우리는 텐트보다 많은 캠핑카를 보았다. 미국 땅이 무척 크고 이동하려면 기본 6시간 8시간씩은 운전을 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자연이 숨막히게 아름답기에 많은 사람들이 캠핑카 생활을 선택하는 듯 싶었다. 집돌이 집순이었던 우리도 언젠가는 미국에 다시 와서 1년 캠핑카 여행 같은걸 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 가능해졌기에 캠핑카가 궁금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캠핑카 주인들은 아이들이 어리거나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들이었기에 얼마나 편안한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중간 경유지인 온천 마을에 도착 전날 캠핑카를 예약했다. 미국은 에어비앤비를 검색하다보면 캠핑카가 무척 많이 등록되어 있다.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도착한 캠핑장의 우리 캠핑카는 작고 귀여운 빈티지 캠핑카였다. 버스처럼 생겨서 직접 운전하는 캠핑카가 아니라 자동차 뒤에 메달아 끌고 다니는 작은 컨테이너같은 것인데 그렇게 작은데도 킹사이즈 침대에 탁자와 의자까지 있었다. 수납공간도 짱짱하고 온풍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캠핑장에서 자면 자연과 가장 가까울 수 있고 숙박비를 수십만원씩 아낄 수 있고, 이동 시간을 최소 2~3시간씩 아낄 수 있다. 장점이 확실하다. 다만 오래 텐트나 차에서 자면 불편하고 비가 오면 더 불편하다. 추위와 더위도 문제이다. 그런데 푹신한 침대와 단단한 지붕과 벽을 차에 메달아 가지고 다닌다면 얼마든지 여행을 지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귀엽고 낭만적인 캠핑카에 감탄하고 나왔는데 캠핑장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자리는 넓고 평평한 캠핑장의 구석의 완만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캠핑장이 한 눈에 보였다. 자연 속에 있던 국립공원 캠핑장과는 달리 온천수가 흐르는 하천변에 있는 공터라 가리는 것 없는 캠핑장에는 놀이터가 두 개 있었고 발리볼을 하고 있는 족구장 같은 것이 두개 있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족구장엔 어른들이 발리볼을 하고 있었다. 길에는 사람들이 개와 산책을 하고, 자리에는 8개~10개씩 캠핑 의자가 놓여 있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먹고 마시고 있었다. 즐거운 휴가지의 모습이었다.
길을 따라 캠핑장을 걸어보니 대부분의 사이트에 남녀노소가 섞여 있었다. 노인과 중년, 아이들, 그리고 강아지들까지. 캠핑카가 있는 사람들은 캠핑카를 끌고 오고 텐트도 두개씩 설치되어 있었다. 바베큐 그릴 앞에서 누군가는 고기와 채소를 굽고 누군가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누군가는 정리를 하는 모습. 삼 대가 함께 모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캠핑과 바베큐가 일상인 나라이니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들 할 것 없이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어 각자 자신의 몫만을 챙겨 한 장소에서 만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밖에서 실컷 뛰놀 수 있으니 지루하지 않다. 바로 이 곳이구나 싶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 양가 어른들과의 만남을 생각해 봤다. 시부모님 집에서 모일 때는 어머님이 식사를 다 준비해 주셨는데 맛있게 먹고 차를 마시며 조금 수다를 떨다가 왜인지 TV를 함께 봤다. 잘 해주시는 시부모님께감사했지만 만남의 시간이 특별히 즐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출국 전에 어머님의 고향에 자매분들이 새로 만든 컨테이너 숙소에서 보낸 날은 즐거웠다. 아버님이 그릴에 양고기와 소고기를 맛있게 구워주셨고, 내가 가져간 와인과 함께 먹었다. 우리가 가져간 캠핑의자들을 펼쳐 놓고 피크닉 매트도 펴두니 놀러온 것 같았고 형님네 부부와 아이도 간만에 휴가온 것 같다며 좋아했다. 친정집에서 모일 때는 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엄마랑 아빠가 만들어두셨다. 아빠랑 막걸리를 한 잔 하며 식사를 하고나면 동생들은 방으로 쏙 쏙 들어갔다. 엄마가 식탁을 정리하시는 동안 아빠는 사위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말수가 무척 없는 사위는 어렵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색한 장인어른과 사위의 모습에 나는 자리를 뗄 수가 없어 같이 식탁에 앉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엄마 아빠를 만나는 건 좋지만 이런 어색한 대화가 즐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캠핑장에서 함께 만난다면? 일단 캠핑장에서는 모두의 노동량이 많다. 식탁 바로 옆에서 설거지를 할 수가 없기에 음식을 다 먹으면 뒷정리도 한참이다. 쓰레기를 정리하고 꽤 걸어 개수대까지 가야하고 물도 길으러 가야하고 화장실도 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캠핑 의자에 둘러 앉아 좋은 날씨에 탁 트인 야외에서 평소보다 산뜻하고 특별한 기분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 밖에서 먹으면 그냥 삼겹살도 그냥 라면도 몇 배로 맛있다. 산책로도 있고 놀이터도 있다. 추진하는 사람의 부담도 적다. 1박 2일 여행을 가더라도 누군가가 숙소에 동선에 일정에 식당까지 생각해야 하지만 캠핑장에 가면 캠핑장만 예약하면 끝이다. 일정은 그 곳에서 머무르며 먹고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캠핑을 하면 누군가의 육체노동이 가중되기는 한다. 우리집은 남편이 힘들긴 하다. 그런데 남편은 말하고 있는 것보다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는 것이 훨씬 재밌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캠핑 만남이 좋겠다.
남편과 그런 즐거운 삼대 만남을 이야기하며 캠핑장을 걸어다니다 라바 핫 스프링스에 가서 노천 온천을 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리의 캠핑카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어린 부부가 운영하는 이 캠핑장의 캠핑카는 주인의 감각 때문인지 무척 아늑하고 귀여웠다. 편안한 킹 사이즈 침대에 앉아 창문 밖으로 비 내리는 것을 보며 빗소리를 들었다. 은은한 조명도 켜고 책을 읽었다. 쾌적하고 편안했다.
내 동생은 1년 반째 솔로 캠핑 다니는 유투버의 영상들을 보고 있다고 했다. 캠퍼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운전을 좋아하신다. 일단 친정 식구들을 캠핑족으로 만들기 위해 캐나다에서 캠핑을 경험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캠핑카를 타고 여행할 우리. 가족들과 캠핑장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우리. 내 것이라 여겼던 적 없는 삶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