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커다란 공원이 있다. 다운타운에 붙어있는 스탠리 파크(stanley park)는 북미에서 제일 큰 공원 중 하나이고, 공원을 감싸고 있는 바다의 풍경을 구경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를 도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된다고 한다.
밴쿠버에 와서 이곳 저곳 다니면서도 스탠리 파크에는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해가 쨍쨍한 여름날에 걷기에는 공원이 너무 크고, 그렇다고 입구 근처에 피크닉매트를 깔고 누워있기에는 밴쿠버에 여행오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명소를 둘러보고 싶을것 같고, 다른 사람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공원을 느끼기에는 내게 자전거 공포증이 있기에 갈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햇살에 일렁이는 나뭇잎 그림자를 너무도 좋아하고, 커다란 공원인만큼 오랜 시간 그자리에 있었을 아름드리 나무가 보고싶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여행자의 태도로 마음속에 있는지도 몰랐던 용기를 꺼내는 방법을 알게 된건지 갑자기 자전거로 한바퀴를 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또다시 '한낮'같은 기분으로, 주말의 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용기가 사그라들어서 신랑과 2인용 자전거를 타기로 했는데, 자전거 대여소에서는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요구했고, 그날따라 지갑을 두고 와서 2인용 자전거를 빌릴수가 없었다. 포기하자니 운전도 주차도 힘든 다운타운까지 온 것이 아쉬워서 공원 곳곳에 있는 공유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하루동안 이용하는데 12000원이지만, 30분마다 다음 자전거정류장에 내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가져다두어야 하고, 만약 30분 안에 가져다두지 못하면 4분에 1000원이 추가되는,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는 요금제를 보며 따릉이를 그리워하며 자전거를 빌렸다.
아- 눈부신 초록빛,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 한가로이 자전거를 타고 너른 바다와 나무의 풍경을 눈에 담는 사람들. 걸으며 눈에 담는 풍경보다 빠르게 멀어지는 순간의 소중함, 자전거를 타고 외국의 공원을 자유롭게 누리고 있다는 뿌듯함. 왜 내 동생이 어딜 가나 자전거를 탔는지 공감되는 마음.
그 기쁨을 단 10분 느꼈다.
주말의 공원에는 무척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들 자전거로 한바퀴를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잘 못타는 내가 너무 느렸는지 뒤에 있는 사람들이 "네 왼쪽에 있어(on your left!)"를 외치며 나를 계속 지나쳐갔다. 그런데..어찌나 많은 가족들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던지, 그리고 10살 남짓의, 자전거를 무척 잘타며, 생생한 몸의 에너지를 내뿜고 싶고, 호전적으로 나를 제끼고 싶어하는 남자아이들이 어찌나 많던지!!! 엄마나 아빠, 누나, 동생이 나를 제끼고 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남자아이들이 짧은 순간 나를 지나쳤고, 그 때마다 너무 불안하여 오마이갓!! 으으으!를 외치는 나의 얼굴이 궁금했는지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당황을 했고, 그러면 핸들이 휘청거렸고, 캐나다는 우리나라와 달리 길에 안전장치같은것이 없어서 자꾸만 바다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1시간 같은 10분이 지나고 나는 그만하기로 했다. 꼬맹이들도 두발 자전거를 자유롭게 타고 있는 이 공원에서 지난날의 자전거 공포증이 밀려왔다. 십몇년 전 자전거를 잘 타던 나는 친구들과 가파른 언덕에서 스릴을 즐기며 내려오다가 잠깐 핸들 조정을 못해 자전거에서 날아 굴러떨어진 적이 있다. 크게 다쳤던 이후로 자전거를 다시 타보려고 하면, 잘 가다가도 마음이 불안할 때 몸이 굳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30분마다 다음 정류장에 가져다 놔야하는데, 그 30분이 자전거로 30분 걸리는 거리를 의미하는줄 몰랐지.. 다음 자전거 정류장이 걸어서 2시간 거리에 있는줄 몰랐지.. 여행자의 자아를 꺼내어 다시 타보려고 해도, 이제는 다른사람들을 다치게 할까봐 안되겠고, 해는 쨍쨍하고, 무척 무덥고, 20분 간 온몸에 힘을 주어 온 근육이 다 아프고, 자전거는 버릴 수 없고, 대중교통 없고, 꼼짝없이 2시간을 걸어야 했다.
걷는동안 30분마다 자전거앱을 열어 요금을 결제하면서, 아하하 그래도 안다쳐서 걸어갈수 있는 것이 어디야- 하며, 정신승리하며, 걸을 수 있을만큼 체력이 늘었음에 기뻐하다가, 같이 타박타박 걷고있는 신랑 눈치를 보다가, 혼자의 시간을 누리고 싶다며 신랑 먼저 자전거 태워 보내고는 과거의 나를 질책했다.
자전거 좀 미리미리 많이 타둘걸, 뼈가 더 튼튼하고 유연할때 자전거도 많이 타고, 수영도 열심히 배우고, 산도 타고, 달리기도 좀 하고, 그래서 튼튼한 몸좀 만들어놓을걸. 여기 캐나다아이들처럼 나무도 좀 타고 그랬으면 여행자의 자아를 달래가며, 안하던 몸쓰기를 이렇게 한꺼번에 매일 하느라 힘들지 않고 이 시기를 즐겁게만 누릴 수 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타박타박 걷다가, 등산가자고 할때 조금만 올라가고 말고, 수영 학원 등록해줬는데 샤워실에 숨어있고, 산책하자고 할 때 누워있던 것이 다 나였는걸 어째. 그런데 여기와서 두달동안 열심히 몸 썼더니 이 자전거를 끌고도 2시간을 걸을수가 있네...신기하네... 몸을 쓴다는게 이런건가보네. 처음 알았네. 하다보니 어느새 한바퀴를 다 돌았다.
어릴 때 몸 쓰는 것을 많이 해서 지금의 내가 가볍게 움직인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의 내가 편안히 자전거를 타며 공원 한바퀴를 누릴 수는 없더라도 비싸고 무거운 자전거를 산책시킬 체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되었다. 비록 30분마다 추가되는 요상한 요금제때문에 몇만원을 썼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것을 알았으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