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면 안되었던 인생 첫캠핑, 왜냐면 곰이오니까

캐나다는 캠핑 천국이라며?!

by 조각

밴쿠버에 온지 한달 반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집에서의 취미만으로도 일주일 자가격리쯤은 거뜬한 집순이 집돌이였던 우리 부부는 밴쿠버에 와서 다른 인격으로 살아보고 있다. 해가 쨍쨍한, 그렇지만 무성한 나무 아래 그늘만 들어서면 시원한 환상적인 여름 날씨가 찰나처럼 지나간다니까..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치웨어만 입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맨날 뛰고 있고, 맨날 아무 잔디밭에 누워있으니까 왠지 우리도 그래야만할 것 같고 덩달아 들떠서 평소보다 많이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글 쓸 때의 내 기분도 문장도 '한낮' 같다.


아웃도어 활동을 상상해보면 백패커의 캠핑 이미지가 그려진다. 나의 오랜 친구 중에 진정한 캠퍼가 있는데, 그 친구는 2달동안 스페인에서 자전거 캠핑을 했다. 자전거와 간소한 캠핑짐을 비행기에 싣고 스페인으로 날아가, 자전거로 이동하고 아름다운 호수(일지 강일지 바다일지 나는모른다) 앞에 텐트를 치고, 무심히 치즈를 잘라 빵과 먹고... 물론 자주 고단했겠지만, 가끔 보내주는 사진만으로도 그가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가벼운 삶이 너무도 멋지게 느껴졌다. 그래서 늘 캠퍼를 동경했다.


캐나다에 오니 어딜 가나 캠핑용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렇게 편히 온갖 캠핑장비를 살 수 있다니, 역시 캠핑 천국인가보다..우리도 여기까지 왔는데..캠퍼가 되어볼까?..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으니까 한번 해볼까? 하며 망설이다가 '캠핑을 할 수 있는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밴쿠버의 별명은 레인쿠버다!'라는, 요즘 우리를 밖으로 몰고 있는 문장이 또 힘을 발휘해서 결심했다. 수강신청할 때 처럼 틈만 나면 새로고침을 해서 하늘의 별따기라는 캠핑장 1박 예약에 성공하고, 필수 장비(텐트,침낭,자충매트, 랜턴, 버너 등) 일 것 같은 장비를 샀다.


당장 캠핑을 할 수는 있는 상태가 되고 나니, 한국에서도 캠퍼친구네 놀러가서 밤까지 놀다온 경험밖에 없는 우리가 외국에서 캠핑을 하다니 걱정이 되어 검색을 시작했다. 아니 이럴수가, 불과 지난달에 내가 가려는 골든 이어스 캠핑장에 곰이 나타나 차량 10대를 파손했다는 뉴스가 떡하니 있었다. 그래서 이틀 간 캠핑장을 폐쇄했었다고, 댓글들에는 사람이 차 안에 있었는데도 문을 열려고 했다. 음식을 찾으려고 아랑곳하지 않았다더라 텐트를 흔들었다더라..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위협에 그만 아찔해졌다.


골든 이어스 주립공원 캠핑장은 사이트가 거의 1000개는 되어보이고, 빈자리가 하나도 없어서 자꾸만 새로고침을 해서 취소자리를 겨우 잡은, 도심에서 1시간도 안걸리는, 거의 뭐..경기도 가평 캠핑장같은 곳인데.. 어디 정글에 나 홀로 하는 오지 캠핑 아닌데 곰이라니.. 겁에 질린 내게 밴쿠버에 사는 캠퍼 친구는 괜찮다. 물론 곰이 있지만, 사람 자는 텐트에는 안온다, 20번도 넘게 캠핑다녔지만 곰이 우리 사이트에 온적은 없고, 물론 이번 여름에 곰을 5번정도는 봤지만 그냥 제할일 할 뿐이고, 그렇지만 곰 스프레이는 꼭 사서 들고다녀야한다는, 위로인지 겁주기인지 뭔지 모를 말들을 하며 즐거운 캠핑을 위한 장비를 더 빌려 주었다.


비일상을 산다는게 뭔지,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즐기라는 행복의 모토가 뭔지, 밴쿠버에 이민 온 거 아니고, 곧 여름이 끝나니까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가는길에 마주친 사람이 오 유 아 캠퍼! 라고 해서 와 나는 캠퍼다!!하며 동경해 마지않던 캠퍼가 된것 같아 들뜨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키가 무척 큰 캐나다 침엽수가 빼곡한 길을 달리니 설레기도 했다. 캠핑장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짜 캐나다는 캠핑천국인가보다 하며 안심도 되었다.


그렇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곰의 위협이 너무도 느껴지는 것이 쓰레기장은 곰이 열수없는 구조로 사람 손을 깊이 넣도록 만들어져있고, 철조망으로 된 옷장같은 것이 있는데 자리를 비울 때는 음식을 이 안에 넣고 잠그고 가라고 하고, 자기 전에 테이블의 모든 음식을 다 정리해서 차 안에 넣고 잠가야 한다고 하고, 심지어 치약, 모기기피제, 비누 같은것도 차 안에 넣어야한다고 곰을 유혹하는 것은 아무것도 잠 자는 곳에 두지말라는 주의사항이 곳곳에 있었다.


이미 왔으니 어쩌랴. 그리고 여기에 수백명의 사람들은 다 알고 온거니까 괜찮겠지..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참 걸려 캠핑장비들을 설치하고, 파이어핏(캐나다 캠핑장에는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시설이 모든 사이트에 설치되어 있다. 캠핑천국은 맞나보다)에 장작 넣고 불도 피우고, 타닥 타닥 소리도 듣고,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알루엣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맛있는 꼬치구이도 먹고, 엄청 큰 마시멜로우(캠핑천국 맞나보다)도 구워먹고, 주말의 파머스마켓에서 양조사한테 직접 사온 와인도 마시고, 재즈를 들으며 몇시간동안 불멍하며 이래서 다들 캠핑하는구나..이렇게 노동을 많이해야 해도, 이런 순간들을 위해 캠핑하는구나 느꼈다. 고요한 숲속 각자의 사이트들에서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어린아이들은 뛰놀고, 댕댕이들은 늘어지게 자고 있는 캠핑장의 풍경에, 이곳은 행복이 집약된 공간이구나 느꼈다. 정말이지 행복했다.


그리고는 밤이 깊어졌다. 집에서는 절대 앉지 않고 자주 누워있던 우리가 하루종일 눕지 않고 계속 움직였더니 무척이나 피곤하고, 배부르고 졸렸다. 그렇지만 우리는 부지런하게 깜깜한 어둠속에서 정리를 해야했다. 왜냐하면 그냥 내일 아침에 치우지뭐~ 하기엔 곰이 오니까. 하루쯤 게으르려다가 곰이 오면 무서우니까. 그래서 우리는 캠퍼친구가 빌려준 헤드랜턴을 머리에 쓰고 어둠 속에서 깨끗이 청소를 했다. 천근만근한 몸이었지만 게으를 수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부지런했기에 너무 고단해서 인생 첫 캠핑인데도 뒤척이지 않고 꿀같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첫 캠핑을 하고 나서 우리는 캠퍼가 되기로 했다. 캠핑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무엇때문에 사람들이 사서 고생을 하는지 깨달았다. 캐나다사람들은 대부분 3박4일부터 4박 5박 6박씩 예약해놓고 오래 머문다. 그러면서 하이킹을 하고 수영하고 카누타고 자전거타며 논다. 1박만 하고 텐트를 치우는건 우리뿐이었다. 1박만 하고 이걸 다치우고 있으니 너무 힘들어서, 한번 셋팅할거면 몇밤 더 자는게 나은것같다는 얘기를 하며 다음엔 더 오래 있자는 대화를 하며 캠핑을 마무리했다.


진정한 캠퍼가 되었다고 스스로가 느낄 때쯤에 우리는 이 첫 캠핑때의 걱정과 두려움, 설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궁금하다. 그래서 이렇게 자세히 적는다. 새로운 즐거움의 문을 연 것이 뿌듯해서 이렇게 오래 적는다. 한국처럼 거실텐트를 치고 오래오래 편안히 머무는 캠퍼가 될수도, 내 친구처럼 백패킹 캠퍼가 될 수도 있겠지?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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