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여름을 나면서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수영하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 찼다. 최고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지고, 호수물이 얼음장처럼 차게 느껴져서 남편과 나는 실내수영장에서 수영을 연마하기로 했다. 학교 안에 있는 수영장에 처음으로 가면서, 이렇게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수영장이 있다는것에 즐거워했다. 예전에 수영강습 다닐때는 6개월동안 새벽에 30분씩 걸어서 수영장에 다녔으니까.
학교 수영장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시간표를 보고 내가 참여할 수영 시간을 골라야했다. 경쟁 수영(빠른 속도로 끊임 없이 수영해야 함 50m길이), 레저수영(어린 아이들과 물놀이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고, 제일 기본으로 보이는 수영 시간을 골랐다. 느린 속도, 보통 속도, 빠른 속도 표시를 잘 보고 그 속도에 맞춰서 수영해야 한다고 써있길래 우리는 일단 느린속도 레인에서 해보고 생각해보기로 하고, slow라고 써있는 레인으로 갔다. 9살 정도로 되어보이는 아이가 느릿 느릿 자유형을 하고 있길래, 아 저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하며 가슴이 살짝 두근두근 하는것을 느꼈다. 몇 년 만에 레인이 있는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다시 하려니 떨리기도 하고, 가을 겨울동안 열심히 수영해서 내년 여름엔 호수에서 자유롭게 수영할 미래를 생각하니 설렜다.
몸을 좀 풀고, 수경 쓰고 출발! 호기롭게 남편보다 앞서 출발하며, 자유형이 생각보다 잘 되네? 하고 3번정도 팔을 젓고 호흡을 했을 때, 갑자기 수영장 바닥이 깎아지를 듯하게 멀어졌다. 출발한지 1분도 안되었는데, 엄청나게 깊어진 물을 인식하자마자 숨이 턱 막히고 가빠져서 판단할 새도 없이 허겁지겁 옆쪽으로 돌아 레인 밖 수영장 바닥을 붙잡았다. 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서 팔로 수영장 바닥 턱을 붙잡고 머리를 물 속으로 넣었다. 평범한 25m 레인의 3분의 1인지 4분의 1 지점부터 수영장 바닥이 절벽처럼 깎여들어가는게 다시 보였다. 잘못 본게 아니였다. 깜짝 놀라 밖을 살피니, 깊이가 4.5m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예약할 때 설명에 깊은 물에 익숙한 사람을 환영(welcome)한다고 써있던게 생각났다. 깊은 물이...우리나라 수영장처럼...1.5m 1.6m인줄 알았지.... 4.5m는 평균적인 성인이 3명정도 꼿꼿이 설 수 있는 깊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충격먹고 있는 동안 뒤에서 출발한 남편은, 분명히 몰랐을텐데 25m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있었고, 아까 처음 봤던 9살 정도의 여자아이도 느릿느릿한 자유형을 계속 하고 있었다. 돌아온 남편과 이게 무슨 깊이냐 학교 수영장에 제일 기초 레인이 이럴 수가 있는거냐 충격을 나눴다. 남편은 자기도 너무 깜짝놀랐지만, 어차피 수영할 때 발을 땅에 짚는 거 아니고 25m 레인인것은 한국과 똑같으니까 그냥 갔다고 했다. 이런...... 감정적 동요가 없는 인간... 본인도 수영 그렇게 잘하는것 아니면서 한국의 수영장과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계속 수영할 수 있다니. 일순간 나도 충격먹고 못했지만, 사실 그 말이 맞긴 하고 그래도 나도 6개월이나 주5회 수영장 다니면서 수도 없이 25m 레인을 돌았으니까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다시 출발하고 다시 출발해봐도 갑작스레 깊어지는 물 속이 눈에 보이면 갑자기 호흡이 가빠와서 끝까지 갈 때까지 폐활량이 남아 있을 것 같지가 않고, 공포심에 팔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이 들어서 자꾸만 돌아 왔다. 다행히 이 레인이 제일 못하는 사람들의 레인이라, 사람도 적고 다들 느리게 움직이고 있어서 중간 중간 돌아나올 수 있었지 바로 옆레인부터는 다들 빠른 속도로 줄을 잇고 있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물 밖으로 나와 많은 안전요원들 중 가장 친절한 느낌의 사람에게 찾아가서 이 깊이가 4.5m인줄 몰랐는데 다른 레인이 있는지, 초급 수영을 할 수 있는 레인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아뿔싸. 모든 레인이 다 이렇고, 저 쪽에 어린아이들이 참방 참방 물놀이 하고 있는 풀만 얕다고 했다. 그 쪽을 보니 수많은 엄마 아빠들이 무릎깊이의 물에서 어린이보다 어려 보이는 유아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그 쪽으로 옮기면 !! 나는 내년 여름 자유롭게 호수를 수영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아니 도대체가 이 나라는, 모든 레인이 이렇게 깊으면 난생 처음 수영을 배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거야? 물을 조금이라도 무서워하면 수영에는 발도 들이지 말라는건가! 하고 어처구니 없어 하다보니, 여름내내 만난 호수나 야외수영장에서 맨날 맨날 수영하던 3살 4살들이 떠올랐다. 그렇다. 이 나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이 애기들에게 팔튜브랑 구명조끼를 입히고 수영을 가르치는 나라라는 것을 몇달간 봤지 않은가. 그러니까 좀 커서 레인 수영을 할 때면 느린 레인에서 자유형을 하던 9살 아이처럼 물이 무섭지는 않은 것이다.
포기하고 싶진 않은데 내 마음은 이미 공포에 질렸고, 그 동안 남편이라도 수영하라고 보내놓고 있는데 두명의 성인 여자들이 킥판을 들고 이 레인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킥판을 붙잡고 자유형 발차기를 연습하는 것이 아닌가. 그정도면 물 속도 안보이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킥판들고 와서 발차기를 했다. 끝없이 깊은 물 속이 보이지 않으니 너무나 평온하고 똑같았다. 모든 것이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실내 수영장. 감정의 동요가 없는 남편은 눈으로 보고도 다를것이 없다는걸 알고 수영을 계속 할 수 있었지만, 나는 공포심에 압도되어 더는 갈 수 없던 레인. 물 밖에서는 너무나 똑같아 기분좋게 발차기 연습을 몇번 하고는, 이번엔 킥판을 손에 잡고 물 속에 얼굴을 넣고 자유형을 연습했다. 수영 강습 다닐 때 초급반에서 했던 대로. 또다시 눈 앞에 펼쳐진 깊은 물을 마주했지만 킥판을 손으로 잡고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어 있어서 자유형 팔돌리기를 하며 레인을 돌 수 있었다.
몇 번 킥판 잡고 자유형을 하고는, 이제 깊은 물의 전경에도 익숙해진 것 같아서 킥판을 놓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평영이 제일 자신있으니까 평영으로 출발했다. 세번 정도 발차기와 숨쉬기를 하고 나니. 또다시 깊어 지는 지점에 다다랐고, 난 괜찮았다. 괜찮아서 수영장 끝까지 갈 수 있었고, 수영장 끝에서 잠깐 벽 잡고 있었더니 아까의 안전 요원이 모든 것이 괜찮냐고 물어봤다. 굿!!! 이라 외치고 다시 첨벙! 물속으로 들어왔다.
무척 뿌듯한 순간이었다. 정말이지 무서웠고, 가을 겨울의 수영 계획에 들뜨던게 물거품이 된것 같아 혼란스러웠는데 그래도 그 마음을 이겨내고 세번이나 도전하고, 포기할까 하다가 킥판을 붙잡고 다시 도전하고, 익숙해진것 같아 킥판을 놓고 한번더 도전할 수 있었던 게. 아마 내년 여름 아름다운 물에 자유롭게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금방 포기했을 것이다. 그냥 앞으로 다른 운동 하지 뭐. 달리기나. 빨리 걷기 같은거! 하고 그냥 나왔을 것임을 안다. 그런데 내년부터 앞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자연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 덕분에 용기낼 수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뭐든 할 수 있다는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그랬다. 해야 하기 때문에 무언갈 하면 적당히 하고나서도 힘들고 그만하고 싶고, 금방 그만뒀다. 그렇지만 내가 꼭 하고 싶으면 아무리 피곤한 날이어도 할 수 있었다. 집에 오면 너무나 소진되어 침대에 누워있던 내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전도 못하고 대중교통도 마땅치 않아 밝지도 않은 길을 30분동안 타박타박 걸어 수영장에 갈 힘을 어떻게 낼 수 있었을까? 신혼여행으로 하와이에 가서 물 공포증 때문에 그 아름다운 바다 속을 누리지 못한게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수영장에 다니면서 물 공포증을 극복하고나서는, 바닷속을 구경하는것보다는 수영장에서의 그 온전한 몰입의 느낌이 좋아졌다. 소리가 멀어지고, 온 몸에 집중해야만이 숨을 쉴 수 있는, 나의 호흡과 몸의 움직임만 생각하게 되는 그 순간이 좋아 수영을 했다. 6개월 후에는 정말로 일이 바빠져 수영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캐나다의 여름을 보내면서 다시금 수영에 발을 들이게 된 게 너무 좋다. 이 덕분에 전에는 못 냈을 용기를 내었다는 점도 좋고.
올 가을과 겨울, 내년 봄까지 이 수영장에서 보내게 될 날들이 무척 기대가 된다. 수영이 내 삶에 제대로 들어올 첫걸음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