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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릴 수 있음에 기대면 겸손해진다.

by 황금지기

겸손하면 과신에 의한 실수의 여지가 줄어들고, 예측하려 애쓰는 시간은 예측을 포기할 때 여유롭게 흐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에서 평상심은 시작된다. 가다가 잠시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정한 선에서 치고받는 평상심이 목적이지 잔재주가 목적이 아니다. 내려놓는 마음에서 꾸준함은 움트고, 의지가 아니라 경험으로 용기는 용감해진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가치를 거의 평가하지 못한 채 본질에 비켜서서 본전과 멀어져가는 군중, 심리에서 시장 사용 설명서를 읽어내야 한다.




기상캐스터에게는 날씨 패턴을 알려 준 뒤 날씨를 예측하도록 하고, 의사에게는 진단 사례를 주면서 환자를 진단하게 했다. 그리고 본인의 예측이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물어봤다. 뜻밖에도 기상캐스터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기 능력을 잘 예상했다. 절반 정도 맞힐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로도 절반 정도 맞혔다. 하지만 의사들의 답변은 많은 사람을 두렵게 했다. 자기 진단이 90퍼센트는 맞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실제로 맞힌 건 15퍼센트에 불과했다.

<투자하는 마음 – 제임스 몬티어>

파동은 날씨의 패턴과 유사하다. 투자자는 작은 동그라미를 미세하게 판단하는 의사가 아니라 직사각형을 그려놓고 큰 흐름을 보는 기상캐스터같이 행동해야 옳다. 크게 보면 틀릴 수 있음도 좀 더 선명해진다. 틀릴 수 있음에 기댈수록 겸손해지고, 과신에 의한 실수의 여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투자하는 마음」에서 작가에 의해 소환된 케인스는 예측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건 알 수 없죠” “나는 정확하게 틀리기보다는 대략적으로라도 맞히고 싶다.” “나는 사실관계가 바뀌면 그에 맞춰 생각도 바꿉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시장은 당신이 지급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보다 더 오랫동안 비합리적인 상태에 머물지도 모른다.”



내가 무시하는 것도 몇 가지 있고, 철저하게 믿는 것도 몇 가지 있다. 경제 예측도 전자에 포함되는데, 나는 이것이 시장에 가치를 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후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기 순환과 그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이다. 당신은 ‘이는 모순되는 얘기다. 경기 순환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예측하는 것인데, 당신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잖은가‘라고, 항의할지도 모른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주장을 약화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투자는 미래와 연관되어 있는데,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런 예측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처할 때의 핵심은 자기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지금 있는 위치만큼은 확실하게 아는 것이다……, 미래를 아는 척하지 않으면서 투자할 때 매우 다른 관점이 생기고, 시간 낭비에 불과한 예측을 거부하면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될 것이다.

<투자하는 마음>

효율적 시장 가설의 본질을 예측하지 말라는 의미로 여기면 된다. 비록 시장이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감정 또한 효율적이지 않기에 시장이 비효율적이더라도 예측 대신 등락하는 파동에 맡기면 된다. 시장 참여자는 예측 불가능성을 뼛속 깊이 경험으로 새겨야 한다. 아니 퇴출당하지 않고 머물다 보면 시장이 문신처럼 ’예측하지 말라‘라는 교훈을 새겨준다. 불행하게도 인간이기에 그것은 대개, 거의 경험으로 새겨진다. 예측하려 애쓰는 그 시간은 예측을 포기할 때 비로소 여유로움으로 흐르게 된다.




시장에서 깨지고 깨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세운 원칙, 비록 그보다는 미숙한 과정을 거쳤더라도 굳세게 원칙을 지켜가는 시간은 유리한 확률에 지속해서 머물게 해 이어지는 시간의 가치를 높인다. 확률에서 유리한다면, 일정 규율을 지키면서 반복할 수 있다면 결국 유리한 확률에 수렴하게 된다. 규율은 천천히, 또박또박 아니 무식하게 지킬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원칙을 지킨다는 건 하지 않기로 깨달은 것을 하지 않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건 자신을 지킨다는 의미가 된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쉬울 때 원칙을 고수할 줄 알아야 하고, 손실일 때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체계적인 과정으로 실력이 쌓일수록, 매매가 거듭될수록, 인문학적 소양이 더해질수록 기법이 아니라 투자 심리에 의지하게 된다. 투자 심리에서 시장 사용 설명서를 읽어내야 한다. “책과 창녀는 잠자리에 갖고 들어갈 수 있다. 책과 창녀는 시간을 헷갈리게 만든다.” 작가 발터 벤야민이 그러했듯 인문학적 소양을 더하면서 원칙을 지켜가는 시간이 헷갈릴 정도의 무아지경에 이르고자 하루하루 그리한다.




적어도 다섯 가지 중요한 심리적 장애물이 우리를 방해한다. 첫째, 우리의 옛 친구인 낙천주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음주 문제를 겪거나, 이혼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될 가능성이 평균보다 낮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면을 보는 이런 경향으로 예측할 수 있는 놀라움이 가져오는 위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잉 낙관주의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통제의 환상에도 시달리고 있다……, 세 번째 장애물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행동하려는 타고난 욕구인 이기적 편향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잘 벌고 있을 때는 자기 행동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네 번째 장애물은 단기적인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근시안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야만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일수록 우리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다는 사실을 자주 깨닫는다……, 예측할 수 있는 놀라움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마지막 장벽은 무주의 맹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는 자기가 기대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사소한 세부 사항과 잡음에 정신이 팔린 투자자들은 큰 그림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투자하는 마음>




워런 버핏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적인 선수 테드 윌리엄스가 쓴 <타격의 과학>이라는 책을 자주 언급한다. 윌리엄스는 이 책에서 3할 4푼 4리라는 놀라운 통산 타율을 기록한 비법을 일부 털어놓았다. 윌리엄스의 놀라운 성공을 뒷받침한 이론은 정말 간단했다(최고의 아이디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는 스트라이크 존을 77개 구역으로 나눴는데, 각 구역의 크기는 야구공만 했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이 들어올 때마다 무조건 배트를 휘두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가장 선호 구역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그냥 다음 공을 기다렸다. 때로는 그렇게 공을 고르다가 스트라이크아웃을 당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투자하는 마음>

세상사 다 좋을 수도, 다 잘할 수도 없다. 야구도, 투자도 치열한 과정으로 세운 자신에게 맞는 원칙을 밀고 나가는 게 최고의 결과를 위한 최고의 비결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에서 평상심은 시작된다. 하지 않을 수 있는 인내 너머의 인내, 손실을 자르고 평상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 그 마음의 합이 여유로움이다. 성급함과 욕심은 더하기의 연속이기에 우려하는 상황은 현실이 되기 쉽고, 무리하면 나빠질 여지가 증가하게 된다. 그렇다. 투자 심리는 더하기가 아니라 지식이 지혜로 정제되는 빼기로 완성된다. 하면 할수록 알아가는 내려놓아야 하는 지혜, 투자 수익 = 추세 – 심리에서 성급함과 욕심을 내려놓는 그 빼기가, 투자자가 내려놓아야 하는 몫이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나의 아저씨>

손실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그런 게 되고, 실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스스로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손실도 짧게 자를 수 있으면 손실은 아무것도 아니고, 거듭되는 실수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사 다 때가 있다. 아직 손실이 이어지면 손실로 배워야 할 때이고, 실수를 거듭하면 바로잡기 위한 시간을 투자할 때다. 적은 손실은 더 큰 손실을 막아주는 방패이고, 작은 실수는 커다란 실패를 막아주는 안전장치라 여기면 그뿐이다. 적은 손실은 성장 과정의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것, 작은 실수는 성장 과정의 가속 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는 것이다. 가다가 잠시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빠른 결과를 바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뭔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좋아한다. 행동에 대한 뚜렷한 편견이 있는 것이다……, 킥은 골문 왼쪽과 중앙, 오른쪽을 대략 3분의 1씩 겨냥했다. 그러나 골키퍼들은 뚜렷한 행동 편향을 보였다. 그들은 골대 중앙에 가만히 서 있기보다는 대부분(94%)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골대 중앙에 서 있었다면 공을 막을 확률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골키퍼가 골대 중앙에 있을 때는 가운데를 노려서 찬 킥의 60퍼센트를 잡을 수 있으므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을 때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골키퍼가 중앙에 서 있는 경우는 전체의 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투자하는 마음>

시장에 참가하는 투자자들은 한참을 깨지면서도, 기다리지 못한 채 자꾸만 성급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역사를 만들려고만 한다. 결과를 좋게 바꾸기 위해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뚜렷한 편향 탓이다. 파동이 등락한다는 관점으로 글을 쓰고 정체성을 세우려 하는 건 등락하기에 기다리면 싸게 살 수 있고, 손실 날 확률이 적은 자리가 고점 매도와 저점 매수이기 때문이다. 파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거에도 군중은 군중이었을 뿐이었다) 끝없이 올라갈 것 같을 자리가 고점이었고, 이제 끝났다고 포기하는 자리가 저점이었다. 과거 파동의 사이클은 고점과 저점을 만들면서 등락할 뿐이었음을 알면서도 매번 만나는 파동에서 이번은 다르다는 듯 행동하는 게, 까맣게 잊은 채 열기에 휩싸이는 게 인간군상이다. 작가의 표현처럼 곰돌이 푸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선 안 돼.” 대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면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가치를 거의 평가하지 못한다. 본질에 비켜서서 본전과 멀어져 간다.




우리는 직접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집착한다. 하지만 투자 과정은 통제할 수 있다. 투자자로서 우리가 집중할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수익률 관리는 불가능하고 리스크 관리는 환상에 불과하지만, 투자 과정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과거에 내린 결정을 그 당시 알고 있던 정보에 기초해 옳은 결정이었는지 판단하기보다, 최종적인 결과로 판단하려고 한다. 이는 결과 편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정과 그 장기적인 이익에 집중하는 것은 단기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적이 떨어지는 동안에는 항상 과정을 바꿔야 한다는 압박이 가중된다. 하지만 잘못된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처럼, 건전한 과정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아마 다들 위대한 존 템플턴 경의 말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자신의 투자법을 되돌아봐야 하는 때는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가 아니라 가장 큰 성공을 거뒀을 때다.” 또 벤 그레이엄이 한 말도 잊지 말자. “가치투자는 본질적으로 건전한 방법이다…… 원칙에 전념하면서 계속 고수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

<투자하는 마음>

결국 돈을 벌어주는 건 자신의 심리이고, 지켜가는 원칙이기에 투자의 정답은 자신의 심리다. 정확하게 거꾸로 용기를 내야만 하는 탐욕과 공포를 마주하는 투자 심리다. 돈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이겨내는 만큼, 원칙을 지키는 시간만큼 복리로 쌓이는 보상이다. 투자자가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원칙을 어기면 많이 잃은 것이고, 원칙은 원칙일 뿐 감정의 개입이 거듭되면 건강을 잃은 것처럼 전부를 잃게 된다. 결국 원칙을 지키는 과정 그것이 돈을 벌게 해 주고, 시장으로부터 혹은 자신으로부터 움틀 엄청난 손실을 지켜줄 단단한 요새의 방호막이다. 의지가 아니라 경험으로 용기는 용감해진다. 일단 원칙을 지키기로 용기를 냈다면, 시작했다면 잘하는 것이다.




명상을 진지하게 시도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분별 있고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일지라도, 알고 보면 대부분 사고 과정이 이리저리 날뛰는 서커스의 원숭이처럼 제멋대로 오락가락하는 생각들로 이뤄져 있다는 걸 말입니다……, 우리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생각일 뿐,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울러 내면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곡예에 주목할 줄 아는 것은 유용한 기술입니다……, ‘아, 희한한 생각이 또 떠올랐군. 괜찮아. 어차피 난 그 생각을 놓아버릴 거니까.’

<투자하는 마음>

투자자가 손실을 자르지 못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어긋난 애착과도 같은 매몰 비용이다. 매몰 비용을 합리화하면서 오락가락하는 희한한 생각 때문이다. 손실이 커질수록 절벽은 깊어지는 법, 아무것도 아닌 적은 손실에서 매달린 손을 놓지 못한 채 계속 매달리다 손실이 커지면 가파른 절벽 아래에 매달린 상황에 이르게 된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면 치명상을 입게 되는 상황에서 오고 가지도 못하는 처지에 자주 놓이게 된다. 원칙이란 이름으로 자신에게 포고령을 내렸다. 정한 선에서 치고받는 평상심이 목적이지 잔재주가 목적이 아니다.




우리 마음은 지칠 줄 모르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결국 또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꾸짖거나 이번에는 어느 정도 해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또다시 흐름을 놓쳤다는 것에 주목한 뒤, 그 생각을 내려놓고 원래 집중하려는 대상으로 차분히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내려놓을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당연히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연습이 필요할 뿐입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 숲」에서 ”인생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투자의 목적도 수익이란 결과 앞에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두어야 한다. 생각을 내려놓아야 ’생각하는 자신‘ 너머에서 바라보는 자신 즉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다. 내려놓은 마음에서, 의지에서 꾸준함은 움트게 된다. 약간의 편차가 천차만별이겠지만,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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