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에 게으르면 위험 인지가 현저히 떨어지는 낙천주의를 극복할 수도, 객관적 시선으로 다가설 수도 없다. 원칙으로 정한 선은 투자자의 객관적 시선이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시간가치와 수익을 맞바꾸겠다는 게 확률적 사고이자 시장에 대한 기본적 예의다. 예측할 수 있는 도구는 존재하지 않기에 때로는 져주기도 하고, 누가 밀면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물러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시장의 흐름에 순응할 수 있다. ‘미래의 나’에게 자꾸만 감정에 치우친 잘못된 선택을 물려주어서는 길이 없다.
시장을 통찰해 보면 투자자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건 파동은 등락하기에 싸게 거래되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 파동은 관성을 가지기에 방향을 잡으면 한동안 이어진다는 것뿐이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손실은 짧아야 하고 이익은 길어야 누적되고 복리를 경험할 수 있지만 투자자의 뇌는 손실 결정을 뒤로 미루면서 감정의 개입 여지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태생적인 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투자 지식을 쌓아야 하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낙천적이면서 게으르다. 몇백만 원을 벌기 위해 한 달 꼬박 일하면서도 시장에서는 손쉽게 동냥하려 한다. 긍정적으로 타고난 성격이 낙천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관점이 낙관으로 비슷하지만, 시장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낙천은 긍정을 기대하는 마음이고 낙관은 부정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낙천은 현실을 왜곡하기 쉽고, 낙관은 현상을 받아들이기 쉽다. 기대하는 마음이 강한 낙천주의자는 위험 인지가 현저히 떨어지므로 투자에서는 치명적이다. 마음공부에 게으르면 낙천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투자자는 주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긍과 긍정으로 이어지면서 기대하면서도 대비하는 마음이 강한 낙관주의자여야 한다. 마음 사용 설명서를 읽고 체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결과는 늘 마찬가지가 된다. 마음 사용 설명서는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만 하는 걸 해야 함을, 바라는 것보다는 바람직한 걸 해야 한다는 객관적 시각으로 투자자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해야만 하는 걸 해나가는 시간의 경과가 자신에게 다가섬이다. 또한, 주관의 그늘에서 점차 벗어나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감정보다 원칙이 우위에 있는 시간의 경과가 자신에게 다가섬이다. 여기서 주관은 한방·기도·뇌동·추격과 같은 행위가 되겠고, 객관은 훈련과 소양으로 해야만 함을 알고 있는 원칙을 지키면서 흐름을 따르는 걸 의미한다. 객관적 시선으로 다가섬의 과정들이 결국 건너감이다. 도박적 사고에서 확률적 사고로, 생각의 매매에서 원칙의 매매로, 직선적 사고에서 곡선적 사고로 건너감이다.
주식시장은 인내심 없는 사람의 돈이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 흘러가는 곳이다.
<워런 버핏>
앞고점이나 앞저점에 막혀 공간이 없으면 하더라도 챙겨야 하고, 기다려서 좀 더 공간이 만들어지면 도움닫기를 기대할 수 있고 특히 수렴 이후에 공간이 열리면 크게 기대할 수 있다. 공간 = 기대치로 인식하면 편하다. 경험이 내공으로 쌓이면서 통찰은 예리해진다. 그렇게 감각에 날개가 돋아날 때까지 버티는 게 게임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투자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 본성이란 알에서 깨어나 신에게로 날아갈 수 있다면 이번 생이 얼마나 값지겠는가?
1/6 = 83%의 확률이 러시안룰렛이다. 한 번 아니면 반복할 수 없기에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다. 확률이 높다는 건 반복을 전제로 성립되는 가정이다. 아무리 확률이 80%라고 하더라도 한 번에 전체를 건다면 도박이다. 시장에서 성급함을 참지 못한 채 한방·기도·뇌동·추격하는 게 도박적 사고다. 동전 던지기에서는 50%씩 나누어서 베팅해야만, 시장에서는 33%씩 나누어서 베팅해야만 확률 게임과 동일 선상에 서게 되고 그게 확률 게임을 대하는 투자자의 가본 자세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시간가치와 수익을 맞바꾸겠다는 게 확률적 사고이자 시장에 대한 기본적 예의다. 확률적으로 사고한다는 건 반복해야만 한다는 시간가치를 이해했다는 말과 같고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자본주의를 사는 각자의 안에는 마치 수호천사처럼 돈을 벌어주는 존재들이 많이 있다. 보통의 투자자는 도박적 사고로 인해 그 소중한 존재들을 차례로 러시안룰렛 게임에 내보내면서 절망의 계곡을 헤매게 된다. 왜 lower leverage여야만 하는가? 필연적 심리의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함이고, 파산하거나 퇴출당하지 않고 시장에 남아 필연의 시간을 이해하고 살아남기 위함이다. 투자 대상은 예금, 부동산, 채권 등 다양하므로 전체 여유 자금의 1/3 범위 내에서만 변동성이 가장 큰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투자 자금의 여유로움과 심리의 여유로움은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돈에 눌리게 되면 심리가 흔들리게 되고 심리가 흔들려서는 객관적 시선을 유지할 수 없기에 필패의 게임을 반복하는 쳇바퀴 인생을 살게 된다. 여유롭고 덤덤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시장과 마주해서는 절대 안 되며 그 마음의 출발점이 lower leverage다. 곳간이 차 있어야 다음 수가 여유롭고 최소한 잃지 않아야 다음 수가 덤덤할 수 있다.
전고점과 전저점을 강하게 돌파하거나 붕괴하지 못하면 횡보로 보면 편하고, 앞고점과 앞저점을 기준으로 손절의 길이를 가늠하면 진입점의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다. 손절이 길수록 중간 진입이 되고 추격이 된다. 고점이 높아져야 눌림의 끝자락이 되고, 저점이 낮아져야 반등의 끝자락이 되므로 전고점과 전저점은 파동의 시작점과도 같다. leverage와 매매 횟수를 줄여야 여유롭게 반복하기가 쉽고, 양방향 매매에서는 그날의 흐름에 따라 매수면 매수, 매도면 매도 한 방향으로 매매해야 단순하게 반복하기가 쉽다. (원칙으로 정한 선 위에 있으면 매수만, 아래에 있으면 매도만) 많이 빠졌다 싶으면 오를 것이고, 많이 올랐다 싶으면 내려가게 되므로 등락해야 돈을 벌 수 있다. 나만의 정답을 찾아 흐름을 따라가는 기준이 각자의 원칙으로 정한 선이다. 시장을 예측하려 들지 않고 시장의 특정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언인지를 찾아내기 위함이고, 무엇보다도 원칙으로 정한 선이 없다면 반복할 수 없기에 투자 행위 = 도박적 행위가 된다.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관점을 고정해 둘 확고한 중심이 없이 원칙을 지키겠다는 건 부질없는 헛된 맹세에 불과하다. 원칙으로 정한 선이 투자자의 객관적 시선이다.
추세 추종과 지지저항의 관계는 이렇다. 상승추세라면 지지가 되는 자리에서 매수하고, 하락추세라면 저항이 되는 자리에서 매도하는 게 추세 추종이다. 추세의 관성을 믿고 파동을 그려가는 추세 추종 매매는 절대 예측하지 않는 기계적인 매매가 아니고서는 승산이 없다. 예측할 수 있는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는 기법이나 무언가로 수익을 좇는 수익률 게임이 아니라 잃지 않으면서 버티는 심리 게임이다. 버티는 시간 속에서 감각이 돋아나고, 심장에 굳은살이 배면서 실력이 쌓이게 된다. 시장이 수익을 주는 때가 있다. 시장의 때를 볼 수 있는 안목은 심리의 바탕 위에서만 성장하므로 바탕이 마련되면 때를 알고 기다릴 수도, 수확할 수도 있게 된다.
내 마음이 급해서는 죽어도 이길 수 없는, 시리고 아픈 자신만의 이야기를 끝없이 이어가야 하는 never ending story와도 같은 곳이 시장이다. 자본주의의 꽃이 주식시장이라면 꽃 중의 꽃이 파생이다. 파생에서는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듯이 아무리 강한 파동도 결국에는 등락한다는 파동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이치를 모르고서는 걸음마조차 힘들다. 때로는 져주기도 하고, 누가 밀면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물러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시장의 흐름에 순응할 수 있다. 시장은 절대 쳐서 이길 수 없는 존재임을 명심하고 흐름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온몸을 맡길 수 있는 심리를 갈고 닦아야 한다. 운전자가 앞차와의 간격이 좁아지거나, 전방에서 위험을 감지하면 감각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는 것처럼, 앞고점이나 앞저점과의 간격이 좁아지거나, 가야 할 자리에서 가지 못하고 멈칫멈칫, 갈 듯 말 듯 가지 않으면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자르거나 챙기는 감각이다. 브레이크와 엑셀 사이를 감각적으로 움직이면서 운전하듯 아니다 싶으면 손실은 짧게, 시장이 가주면 이익은 길게 가져갈 수 있는 게 감각의 몫이다.
수익 확률은 33%이고, 횡보 구간을 제대로 다룬다면 잃지 않을 확률은 66%다. 파동에는 상승·횡보·하락 3가지 조건이 존재하므로 수익 확률은 33%다. 파동을 그려갈 때 앞고점과 앞저점을 파동의 시작점으로 보면 편하다. 앞저점 부근에서 저점이 높아지면서 상승 파동이 시작되었을 때 갈 수 있는 확률 역시 상승·횡보·하락 3가지 조건 33%이고, 저점에서 시작된 상승 파동이 앞고점 부근에서 돌파할 확률 역시 failure(쌍을 이루면서 하락)·trap(돌파하는 척하다가 하락)·고치 갱신 3가지 조건 33%다. 개인에게는 앞고점과 앞저점 부근에서 언제든지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치고 빠질 수 있는, 자르거나 챙길 수 있는 개인만의 권리를 마음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만족할 줄 알아야 욕된 일이 없고, 그칠 줄 알아야 위태로운 일이 없어 길고 오래 갈 수 있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의 심리를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미래의 나‘에게 자꾸만 감정에 치우친 잘못된 선택을 물려주어서는 길이 없다.
하워드 막스의 조언대로 시계추의 가운데는 빠르게 지나가므로 투자자는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을 때 크게 상승할 위험, 즉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전체를 좌우할 위험을 통제해야 한다. 여기서 좋은 방법이 바로 원칙으로 정한 선 위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많은 수수료를 지급하더라도 ‘치고빠지면서’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다. 이 비법은 알아도 凡人(범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게, 깊이 있게 내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 참 무서운 세상사 이치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데이트레이딩도 진입하지 않았을 때 강하게 평균 진폭을 찍는 쉬운 파동이 나올 위험을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절의 규칙을 따르면서 원칙으로 정한 선의 각도가 살아 있으면 공을 세워 놓고 기계적으로 배트가 나가야 하고, 에너지를 모은 상태라면 결대로 기계적으로 배트가 나가면 훌륭한 투자자의 반열에 서게 된다. 원칙으로 정한 선의 각도가 살아 있으면 ‘세워 놓고 치고’ 누워있으면 ‘결대로 치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