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사는 게 힘들지?
엄마는 단어공부시키라는 영어선생님의 문자를 받고 너 노트를 열었을 때 '설마 0점은 아니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단다.
너를 키우며 자꾸 내 어린 시절을 돌아봐.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엄마도 단기기억이 좀 약했어. 그래서 반복훈련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정보가 넘어갈 수 있도록 노력했지. 한 번도 0점은 받아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너를 그렇게 낳아줘서 미안해. 네가 사는 게 얼마나 힘들까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눈물이 난단다.
너에게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는 사람. 나 말고 너의 아빠가 있겠지?
그래서 너의 아빠에게도 간혹 물어본단다. 어떤 아이였냐고. 학교수업은 따라갔냐고.
너의 아빠는 막냇동생이 좀 느렸는데 지금 젤 잘 산다고 걱정 말라는데 너는 삼촌아들이 아니라 아빠 아들이라 사실 좀 걱정돼.
너희 아빠를 안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단다. 가보지 않은 길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그도 나도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거 같거든.
삶이란 참 모를 일이야.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살자고 매일 감사일기를 쓰고, 기도를 하고, 난리를 쳐도 누군가의 피드백에 자꾸 무너져. 나의 일이라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극복해 보겠는데 자식일이라... 사실 자식도 타인이기에 부모가 노력하는 게 한계가 있잖아?
요즘 엄마는 똑 부러지는 딸을 키우는 작가의 책을 자주 읽는단다. 아마 대리만족인 거 같아. 그녀의 남편은 다정하고, 딸은 한글도 줄줄 쓰고, 잘 먹고,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찰떡같이 알아듣고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너희 아빠는 엄마말이라면 청개구리처럼 듣지 않고, 그의 아들인 너희들도 그렇잖아. 4학년인 너의 형은 글씨는 둘째치고 맞춤법도 얼마나 틀리는지. 하긴 한글을 못쓰는 너 앞에서 할 하소연은 아닌 거 같다만.
삶이라는 게 언젠가 끝은 있잖아? 엄마는 그때 좀 더 해볼 걸 하는 후회를 안 하려고 오늘을 살아. 눈감을 때 '할 만큼 다 해봤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하며 눈을 감고 싶거든.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구나. 오늘은 숙제를 좀 더 열심히 해보자꾸나. 엄마가 45년을 살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그럼에도 노력하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낫다는 거야. 인생이란 게 새옹지마라고 기대와 달랐던 삶이 지나고 보니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
이따 만나자. 사랑하는 내 아들.